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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제이쿠 Oct 22. 2020

아빠의 초당옥수수


지난여름, 햇수로 농부 7년 차가 된 아빠는 처음으로 초당옥수수를 재배했다.

상품으로 만들 생각보다 먹어보니 맛있어서 한번 심어보고자 했던 것.

엄마 아빠 표현으로는 일반 옥수수보다 속도 덜 부대끼고, 맛도 좋고, 가볍게 먹기 좋다고 하더라.


먼저 수확물을 먹어 본 아빠가 추석 때까지 저온 창고에 보관을 해놓겠다고 했다.

내심 기대가 됐다. 아주 노랗고 알이 빼곡히 박힌 초당옥수수를 떠올리며.  


드디어 실물 영접의 순간!

'엥? 옥수수가 생기다 말았네?'

길이도 짜리몽땅한 데다 알도 다 차지 않은 녀석들이 얼마나 많던지.

친구에게 사진을 보여줬더니, 그래도 비싼 초당옥수수가 이만큼 많은 거잖아라고 했다.

쪄도 쪄도 또 찔 수 있을 만큼 있다고 생각하니 먹는 재미가 있는데,

왠지 재배에 실패한 것 같은 모양에 우리 가족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빠가 덧붙였다.

올해는 시험 재배이고, 내년에 본격 재배해보겠다고.

감자 심었던 곳에 심었더니 영양분이 부족해서인지 크기가 고만고만하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빠의 지금 일은 '농부'.

그러니 이것저것 재배해보고, 아빠가 일궈놓은 땅에서 잘 자라고,

아빠가 농사를 짓는 재미가 있는 작물을 찾는 게 당연한 과정이지 않을까라고.


꼭 좋은 결실을 맺는다는 보장이 없어도

그동안 심지 않았던 작물도 심어 보면서

고되지만 새로운 발견의 과정을 즐기는 것.

아빠는 지금 농부로서의 삶에 충실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다행인 건,

"거봐 안 될 건데, 힘들게 왜 심었어?"라고 말하는 가족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

동생은 "아빠 너무 잘 키웠네"라고 했으며,

엄마는 하루에도 몇 개를 먹었는지 모른다.

나는 유행한다는 초당옥수수 버터밥을 해먹자고 했으나 결국 말로만 끝났다. ^^


결국, 내 업에 대한 태도, 나로서의 자세도 이와 같지 않을까.

결과가 보장되지 않더라도 도전하고 한 발 내딛어 보는 것.

새로움이 낯설더라도 지금에 적용해 보는 것.

(이 얘길 엄마한테 했더니 엄마가 자식 얘기라 그런지 실패하면 안되지라고 했다.)

무슨일이든지 긍정적 방향을 설정하는 것.

그 과정에서 이루는 것이 있을 것이고,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이 있을 것이다.

(사실, 사는 날 동안 얕은 감정 보다 깊고 묵직한 감정들을 알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커서.)


아빠의 초당옥수수가 내년에는 좋은 토양에서 빛깔도 곱고, 알도 꽉 찬 열매로 맺어지길 바라는 마음처럼.

나와 우리의 일도, 삶도 단단하게 여무는 과정이 즐겁길!

결코, 멈춰 있지 않길. 오늘은 감자를 심던 땅이 내일은 초당옥수수를 심는 땅이 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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