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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르페디엠 Aug 25. 2022

C포자, 스스로 코딩을 시작하다

 담당자의 귀차니즘이 초래한 의외의 업무 성과

고등학생 시절, 윤리 선생님께서 꿈이 뭐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공학적인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때 선생님은 그럼 네 꿈은 '공학도'구나 하셨고 잘 못 알아듣자 단어의 뜻을 설명해주셨다. 돌이켜보니 청소년 시절 내게 꿈을 물어보신 선생님은 그분밖에 없었던 것 같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30대가 된 지금에야 그런 질문을 던져주셨다는 사실에 참 좋은 분이셨구나 하고 돌이켜 본다.


대학에서는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수능점수에 맞춰서 전공을 버리고 학교 간판을 선택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4년간 관심도 없는 공부를 해야만 한다니? 애초에 나는 원하지 않는 것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전자공학을 선택한 이유는 아빠가 기계공학을 전공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기계공학에 진학하지 않았냐고? 기계공학보다는 전자공학이 더 전망이 밝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난 08학번이다.) 그냥 아빠랑 같은 계열인 공학대학이면 되겠다고 생각했었다.


어렸을 적 집에 선풍기가 고장 났는데 아빠가 분해 후 PCB에 납땜을 해서 고쳐주셨던 장면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아빠가 셀프로 뭔가를 고치거나 만들 때마다 나는 항상 옆에 붙어있었다. 당시에는 나이를 먹으면 나도 자동적으로 아빠처럼 이런 일들은 당연히 할 줄 알겠구나 했었다. 그러나 당시의 아빠보다 나이가 더 많은 지금, 집에 선풍기가 고장 나면 나는 새로 산다.ㅋㅋㅋ 아빠 사랑해요~


다시 대학생 시절 이야기로 돌아가서, 1학년 2학기 과목 중 C언어가 있었고 무려 3학점짜리 필수과목이었다. C언어란 'Computer'언어의 약자로 흔히들 사용하는 Java, C++, Python 등 Computer Science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총칭이라고 이해하면 되는데, C언어도 엄연한 언어인 만큼 자주 사용해서 익숙해져야 잘 구사(코딩)할 수 있다. 수업시간에 이런저런 코딩을 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걸 좋아하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당시의 나는 수업시간이 끝나면 친구들이랑 얼른 술 마시러 나가는 게 훨씬 재미있었다. 그리고 공업수학 시험을 더 잘 보면 되지 뭐.라고 생각했고 결국에는 C학점을 받고 씨포자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C언어는 2학년 이후에도 시스템 계 및 실습 과목을 수강할 때 여러 번 사용되었는데 어찌어찌 졸업까지 잘 버텼다. 당시 교수님은 전자공학도가 C언어를 쓸줄 모르면 졸업 후에 아무것도 못할거라고, 망할거라고 확신에 차서 말씀하셨는데 나를 비롯한 내 동기들은 다들 잘 먹고 잘 산다.(교수님 말씀이라고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


그러다가 13년이 지난 지금, 수만 행의 data를 이용해 일정한 양식의 엑셀 파일로 만들어야 하는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약 3개의 엑셀 raw파일에서 vlookup함수 등을 조합하여 결과물을 만들어야 했는데 이건 뭐 너무 단순한 엑셀 노가다 작업이라 번거롭기만 하고 배울 수 있는 것도 없어서 하기가 싫었고, 부사수에게 이 업무를 설명하던 중 현타가 세게 왔다. 훌륭한 역량을 가진 내 후배에게 이런 원시적인 일을 가르치고 있다는 게 비참했다. 그때 결심하게 되었다. 이 업무를 코딩으로 자동화해버튼 하나로 끝내버리겠다고.


파이썬으로 구현해보려 했으나 내 친구 양은 VBA를 추천했다. VBA의 가장 큰 장점은 내가 코딩 용어를 모르더라도 컴퓨터가 나의 엑셀 프로그램상의 action들을 코드로 기록해주는 '기록하기' 기능이 존재하는 것이다. 기록하기 기능을 활성화시켜놓고 작업을 하면 컴퓨터가 (원시적으로)코딩을 한다. 그럼 나는 그 코드를 보고 문법을 이해해서 효율화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오늘 코딩을 완료하긴 했지만 문법이 무거워서 그런지 렉이 많이 걸리고 때때로 계산이 누락되는 상황이다. 그래도 약 이틀만에 생각보다 빠르게 완료했다. 다음 주까지 본 업무를 100% 효율화, 자동화하는 게 내 목표다. 수술 전에 성과 하나는 가져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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