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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르페디엠 Aug 24. 2022

벌써 다음 주라고?

꿈인지 생시인지

갑상선 수술을 위한 입원이 다음 주로 훌쩍 다가왔다.


싱숭생숭한 마음에 여럿 정보들을 검색해보니 대체로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분위기였다. 사실 인생이라는 게 그렇잖은가, 대학교 합격 메시지를 확인했을 때도 꿈인가 생신가 싶었고, 신입생 시절 전국 각지에서 온 친구들과 새롭게 만나 신나게 놀 때에도 뭔가 신기한 기분이었다(나는 사투리를 대학 들어가서 거의 처음 들어봤다). 입대하여 신병훈련소에서 수류탄을 건네받았을 때에는, 생각보다 묵직-해서 놀라웠다. 서든어택에서나 보던 건데... 수류탄을 호수 속으로 저 멀리 포물선을 그리며 던지니 꽝!!!! 하고 산이 울리며 물길이 30m 정도 솟아올랐다. 사격할 때에도 신기한 건 매한가지였다. 그 이후로는 취업에 성공했을 때였다. 뭐랄까 마치 취업을 위해서 초/중/고등/대학교 교육을 다 마친 것 같았고, 드디어 진정한 어른이 되어 돈을 번다는 느낌이었지.


돌이켜보니 즐거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뉘는구나. 어쩌면 인생에 모든 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아닐까? 자의로 태어난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명상을 배우고 종종 숨에 집중할 때가 있는데,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도 신기하다. 아마 생을 마칠 때에도 이게 끝인가... 싶지 않을까.


인생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을 좋아한다. 이 말은 내가 힘들 때, 지쳐서 노력하고 싶지 않을 때 만난 말이라서 더 좋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나 나이가 들수록 느끼는 건 남한테 피해 끼치지 않고 조용히 살다가 가면 그것으로 훌륭하다는 거다. 요즘에는 누가 더 많이 소유하냐가 아니라 누가 더 만족한 삶을 사느냐가 관건인 시대라고 믿는다.


자신감과 자존감의 차이에 대해 말해 본다. 자신감은 기준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어떤 100억대 부자가 있다. 음~ 그래. 내가 이 정도 부를 쌓았으면 남들보다 아주 훌륭하지. 라며 자신감을 가진다. 람보르기니를 타며 다른 사람들 앞에서 뽐낼 수도 있다. 그런데 뽐내는 걸 좋아하는 경우 부가티를 타는 1천 억대 부자를 만난다면 자신감을 내비칠 수 있을까? 반대로, 자존감은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는 마음이다. 내가 100억대 부자이면 음~ 그래 나는 참 열심히 살았어. 그리고 돈도 많아. 하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거다. 그리고 만약 1천 억대 부자를 만난다면? 아 부자시군요, 저도 부자입니다~ 하고 여유롭게 미소 지을 수 있다면 이는 건강한 자존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요즘에는 내가 처한 상황 그대로를 받아들이려고 노력 중이다. 갑상선암의 원인은 의학적으로 아직 밝혀진 것도 별로 없고, 그냥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어디 전이된 곳은 없을까, 수술 후 재수술을 해야 하거나 몇 년 후 재발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자꾸 솟는다. 이에 갑상선 네이버 카페에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가곤 한다.


카페 게시물 내용 중에는 남들과 같은 갑상선 암 판정이었다 하더라도 더 큰 어려움에 처한 경우들이 많다. 반절제를 예상하고 수술을 시작했는데 임파선 전이가 있어 전절제를 했다는 분, 반절제만 하고 수술을 끝마쳤는데 수술 후 현미경 검사에서 피막 침범이(갑상선 표면을 암세포가 뚫고 나온 경우) 발견되어 나머지 반을 모두 절제하는 수술을 단지 몇 개월 만에 다시 시행했다는 분 등 안타까운 사연들이 참으로 많다.


이 시점에 안 좋은 이야기를 많이 접하다 보니 불안감이 증폭되어 멘털이 흔들렸다. 실제로 정보의 비율을 따져보면 수술 후 경과가 좋아 걱정 말고 다녀오라는, 서로 응원해주는 댓글도 아주 많으나 아무래도 폰을 닫았을 때 자꾸 생각나는 건 부정적인 사례들이었다.


아내에게 이야기를 하니,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카페에 글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남기지 않겠냐며 지금은 스트레스가 몸에 좋지 않으니 너무 자주 찾는 건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 않겠냐고 했다. 현명한 아내의 말에 동의했다. 수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과한 검색은 지양하고자 한다. 받아들이기 싫어서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걱정이 수술 결과 및 예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당장 다음 주 일요일이면 입원인데 아직 동료들에게는 알리지 않았고 리더께만 말씀드린 상태다. 동료들에게도 말을 하는 게 좋을까? 혹시나 상처받을까 봐 고민이 된다. 뭐 근데 9월에 병가를 내야 하고, 그러면 결국 다들 알게 될 텐데 다음 주 중으로 말을 하려고 생각 중이다.


요즘은 회사에서 평소처럼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나 자신을 바라볼 때 한편으로는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암일지도 모르는 나름 큰 수술을 앞두고 있는데 이렇게 태연하게 출근해서 일하다가 퇴근하고 자기 할 일을 한다고? 심지어 저번주 토요일에는 테니스 동배대회도 참가했다! 자아도취적이지만 쿨한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 그래, 하루하루 잘 살아가자.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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