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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르페디엠 Aug 21. 2022

부모가 된다는 것

30대 부부, 아내의 임밍아웃

삼십 대 중반으로 회사에서도 8년 차가 된 지금은 일과 취미, 친구 및 가족과의 안정된 관계 속에서 부족할 것 하나 없이 즐거운 시절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종종 집에 혼자 있을 때면 가슴 한 켠이 텅 비어버린 것만 같았다. 아주 맛있는 고기로 배는 두둑이 채웠으나 배부름 뒤에 현타가 세게 오는 느낌이랄까, 내가 진심으로 혼을 갈아 넣을 만큼 중요한 무언가가 삶에서 쏙 빠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임신 테스터기의 두 줄을 보여주었다. 그 순간 심장이 두근두근거리고 가슴과 목, 코, 머리를 뭔가 넘실거리는 이상한 기운이 왔다갔다거렸다. 우리를 꼭 닮은 2세라니, 영화보다 더 영화 같던 순간이었다.(영화는 남의 이야기지 않은가) 나는 입이 귀에 걸려서 포스트잇에 '6/25일 지태가 온 날'이라고 적어 벽에 붙였지만, 아내는 착잡해 보였다. 지금 시기에 임신할 거라고 생각조차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요즘 우리의 2세가 생길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을 갖고 있었는데 나만의 생각이었나 보다.


올해 광화문에 필라테스 스튜디오를 개업해서 아주 바쁜 스케줄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아내는 당연히 여러 가지 고민이 생길만한 상황이었다. 임산부로서의 신체적 힘듦은 전적으로 아내의 몫이었고 출산 이후에도 처가인 울산에 아이를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이는 지극히 현실적인 반응이었다. 나 자신만 생각했던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렇지만 분명 우리의 2세가 생긴 일은 당연히 기뻐할 만한 일이었다!


부모가 된다는 건 내게는 굉장히 특별한 일이다.  부모님과의 말 못 할 갈등이 있었고 아직까지도 나에게는 상처로 남아있기 때문에 내가 부모가 되어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싶었다. 또한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는 부모로서 아내와 함께 내 아이를 행복한 아이로 키워내고 싶었다. 엄마는 나를 24세에, 내 동생을 26세에 낳아 아빠와 함께 아주 열심히 우리를 훌륭하게 키워내셨다. 다만 당시 어린 나이만큼 인생의 경험이 많지 않았고 초기에는 경제적으로도 힘들어서였을까, 엄마는 일종의 강박에 시달렸고 인생을 힘들어하시곤 했다.(24세에 부모님의 돈으로 대학을 다니고 있던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부부간에 소통이 많지 않았던 부모님 세대의 시대적 배경도 한몫했던 것 같은데, 이러한 상황은 장남인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사실 아직도 부모님을 만날 때면 불안하고 뭐라도 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예를 들면 할 말이 없으면 가만히 있어도 될 것 같은데 (내가 이 분위기를 책임져야 할 것만 같은)마음에 괜히 날씨 얘기라도 꺼내곤 한다. 뭐 여하튼 이 세상에 완벽한 부모가 어디 있으랴! 엄마 아빠가 우리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잘 알고,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들임에는 틀림없다.


이에 나는 조금 늦더라도 경제적/인격적으로 충분하게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되는 시점에 낳아 후회 없이 키워보고 싶었다.(나는 윤종신 씨 가족이 그렇게 멋지더라) 기존에는 삶이라는 게 마치 물아래로 가라앉지 않기 위해 쉬지도 못하고 수영을 해야만 하는 것처럼 꽤나 힘들게 느껴져서 혹시라도 결혼을 한다면 자식을 낳는 것이 맞을까?라는 의문도 가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처럼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냈고, 그러다 보니 지금의 아내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밝고 귀엽게 춤을 추다가도 힘들 때에는 함께 머리를 맞댈 수 있는 믿음직한 내 편. 아내를 만나고 나서 나도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가 조금씩 변하게 되었다. 어떻게 변했는지는 차차 써나가고 싶다. 2주 후에 갑상선 수술을 앞두고 있어 걱정도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ps.

초등학생 시절 존경하는 사람을 적어 내라고 하면 부모님을 써서 냈다. 에디슨이나 뉴턴을 책 속에서 만났지만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책에 쓰여있더라도 존경하는 마음까지 생기지 않았다. 어떤 사람인지 알 길이 없어서 그런가, 그리고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해서 인류에게 빛을 선사했다는 사실에 감사하긴 하나 그게 존경할 일인가 싶기도 하다. 단지 실험을 무진장 좋아했던 사람이어서 전구를 발견해낸 것은 아닐까? 개인의 성격적 특성을 존경한다는 건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인류 역사상 수백억 명의 인간이 지금까지 태어나고 죽었는데 에디슨이 아니었더라도 결국 전구는 발명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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