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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딩덕후 Jun 28. 2016

참을 수 없는 결혼식의 가벼움

스몰웨딩 트렌드에 대한 단상

대학교 1학년 시절 왠지 멋있어 보이는 책 제목이었던 밀란 쿤테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친구의 자취방에서 밤새 사랑은 가벼운가, 무거운가에 대해 핏대를 세우며 논쟁을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20살의 나이에 얼마나 사랑꾼이라고 사랑의 의미에 대해 그렇게 밤새 떠들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20살의 사랑의 의미를 논하던 치기 어린 대학생이 34살의 웨딩 스타트업의 대표가 되어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한 결혼식을 만들어주는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표현의 유효함에 감탄하게 된다.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다.

"영원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니체의 영원회귀라는 철학적인 의미와 사상은 지금도 정확히 잘 이해가 안 되지만 '나의 하루가 똑같이 반복된다면'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넘어갔다. 내일 아침 눈을 떴는데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아침에 일어났던 일들이 똑같이 반복된다면 반복되는 그 날 일어나는 수많은 일 듯은 엄청난 의미와 무게, 무거움로 다가올 것이다. 내가 전날 치우기 귀찮아서 식탁에 올려놨던 과자 봉지는 다음날 눈을 뜨면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이런 설명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빌 머레이 주연의 명작 "사랑의 블랙홀"을 보시길 권해드린다.

눈뜨고 일어났더니 어제? 아니 오늘!


대한민국 결혼식 = 영원회귀의 좋은 예

영원회귀라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전국의 주말에 펼쳐지는 결혼식들의 풍경은 마치 영원회귀의 현실적 재현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하얀색 예식장에 결혼식 참가용 정장을 차려입고 모여든 사람들은 하얀색 봉투 여러 장에 오늘 오지 못한 친구들의 축의금을 나눠서 넣으며 신랑 또는 신부의 얼굴을 한번 보고 얼굴도장을 찍기에 바쁘다. 예식이 시작되고 신랑, 신부가 입장을 하는 모습을 보자마자 아래층에 있는 뷔페를 찾아 질긴 갈비찜을 뜯다가 친구들 사진 찍을 시간에 맞춰 자신의 존재를 사진 한편에 표시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 광경은 대한민국 어디든 매주 똑같이 반복된다. 영원회귀의 좋은 예 아닌가? 그리고 이런 우리의 결혼식은 밀란 쿤테라의 세계에서는 극도의 '무거움'의 상징이 될 것이다.


집안간의 결합이라는 무거움을 더하다 

우리의 결혼식이 더욱 무거워지는 이유는 대한민국 결혼식은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하나 되어 하나의 가족을 이루는 것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자리가 아니라 집안 더 나아가 가문의 결합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처음 보는 수많은 이모님, 고모님, 삼촌, 조카들의 시선의 무게와 이들에게 밑 보이지 않아야겠다는 부담감이 압박해오기 시작한다. 이미 결혼 준비 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예물과 예단, 집과 혼수 장만 과정은 결혼이 가문 간의 결합이 아니라 스타그 vs 라니스터 같은 가문 간의 전쟁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가짜 미소를 띠고 연신 인사를 하다 보면 내가 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에 잠시 빠지게 된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하지만 현실은 한없이 가벼운 코미디 영화

반면 우리의 결혼식의 모습 속에는 미국의 킬링타임용 B급 코미디 영화에서 볼 것 같은 자본주의의 천박한 가벼움이 넘쳐흐른다. 기본은 5만 원 친하면 10만 원, 3만 원 내면 욕먹는다는 축의금 공식이 마치 제사상차림은 홍동백서라는 규범처럼 당연시되고 내 쪽 하객이 없으면 초라해 보이거나 상대 집안에 기죽을까 봐 일단 3만 원의 아르바이트를 구해 처음 보는 사람이 와서 친한 척하며 함께 사진을 찍는다. 아버지가 퇴직하기 전에 결혼을 시켜야 축의금의 회수율이 높다는 미명 하에 아버지의 정년과 나의 결혼식 시점이 수렴하는 것은 당연시된다. 인생 과제이자 달성하지 못하면 패배자가 되는 어마어마한 퀘스트인 결혼의 보상은 30분의 예식과 텅 비어버린 지갑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결혼은 왜 하는 것이며 결혼식은 왜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진정성 있는 질문을 던져보지 않으며 수능을 봐서 대학 가고 졸업하면 취업하고 어느 정도 돈을 모으면 당연히 달성해야 하는 인생의 테크트리의 한 단계로 결혼을 생각한다. (자! 다음은 출산이다)


스몰웨딩 = 결혼식의 경량화?

그런 의미에서 최근 스몰웨딩 트렌드는 무거웠던 결혼식이 조금씩 가벼움을 회복하는 긍정적인 신호이다. 스몰웨딩은 수 백 명 규모의 하객의 수를 줄이고 값 비싼 예식 비용도 덜고 예물과 예단은 생략해 집안 간의 갈등을 감소시키며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런데 최근 스몰웨딩 트렌드가 변질되어가고 있다. 하우스 웨딩홀이라는 공간이 등장하고 좀 더 여유로운 시간, 디자인을 더한 공간을 내세우면서 오히려 비용의 무게를 더하는 웨딩 공간과 상품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하우스 웨딩홀이 증가하는 추세라면 3~4년 후에는 앞에서 언급했던 어느 주말이나 볼 수 있는 결혼식장의 풍경이 예식장에서 하우스웨딩홀로 바뀌어 있을 뿐 우리의 결혼식 문화에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변질되어 가는 트렌드에 대한 필자의 일갈


스몰웨딩 트렌드에 숨은 욕구 : 근대적 개인주의와 탈근대적 개성의 표출

신랑 신부들이 작게 결혼식을 하려고 하는 이유 가운데 경제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몰웨딩으로 결혼하는 많은 신랑 신부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 본 결과 이들이 스몰웨딩을 택하는 가장 큰 두 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내가 모르는 손님만 잔뜩 와 있는 결혼식이 싫어서 그리고 둘째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 한 예식장 결혼식이 싫어서였다. 이를 분석해보면 가족도 중요하고 사회적 시선도 중요하지만 내가 주인공이 되고 싶은 욕구와 대량 생산된 공산품을 거부하고 나만의 개성과 우리 두 사람의 정체성과 개성을 드러내고 싶다는 욕구로 정리할 수 있다. 어쩌면 아직 농경사회적인 사회 윤리와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빠른 산업화를 통해 정신없이 근대를 경험하였고 21세기 정보통신 혁명 속에 탈근대 속에 깊이 들어가 있는 아노미적인 우리의 역사적 발전 단계의 관점에서 보면 이 두 가지 욕구의 표출이 필연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스몰웨딩은 가족과 가문이 주는 무게에서 벗어난 두 독립된 개인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면서 두 사람의 개성을 표출하고 인생에 대한 두 사람의 선언을 담아내는 이벤트이자 계기인 것이다.


프라하의 봄, 68 혁명 그리고 대한민국 결혼문화의 혁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공산주의와 권위주의의 그늘에 갇혀있던 체코의 프라하에 개인주의와 자유주의가 봄날의 벚꽃처럼 짧지만 화려하게 만개한 '프라하의 봄'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프라하의 봄은 프랑스에서 시작된 68 혁명의 영향을 받았고 68 혁명은 전 세계 수많은 젊은이들을 저항과 해방이 열망으로 들끓게 하였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68 혁명과 같은 반체제적이며 기성세대에 대해 통렬히 비판하는 격렬한 사회 운동이 일어나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깃든 개인주의와 개성 표출의 욕구는 조용하지만 우리의 예상보다는 빠르게 우리 결혼 문화를 바꿔나갈 것이다.


정말 작은 결혼식을 올리는 토마스와 테레자
결혼식에 참석한 귀여운 애완돈 메피스토
권위주의의 상징인 공산당 간부 = 돼지?
히피 시대의 위엄.jpg


다양하고 의미 있는 그리고 때로는 하늘을 날아가는 헬륨이 가득 든 풍선보다 즐겁고 가벼운 결혼식이 우리의 주말 풍경을 점점 다채롭게 바꿔나가길 바라본다.(는 사람이 WEDIT이라는 스몰웨딩 스타트업의 대표라는 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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