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웨딩덕후 Aug 07. 2016

우리 결혼식 문화,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가정의례준칙 그리고 버진로드, 화촉점화, 주례 문화의 기원

직업의 특성 상(스몰웨딩 스타트업 웨딧 CEO) 수 많은 결혼식을 만들고 지켜봅니다. 스몰웨딩이 기존의 결혼문화에 대한 반발 심리에서 기인하였다고 한다면, 예식장에서의 결혼식 문화는 과연 언제부터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고 왜 이렇게 되었을까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곤 합니다. 그래서 이번 글은 그 동안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해 찾아본 결혼식 그리고 결혼문화의 문제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스몰웨딩 트렌드와 관련하여서 가장 많은 이야기는 하객 수를 줄이자, 예식장을 벗어나자, 자기만의 개성을 담자 등등 사회적 의미와 결혼식의 외형, 모습의 변화에 많이 치중되었습니다. 이번 글을 통해서는 결혼식이 하나의 예식, 의식, 그리고 인생에서 중요한 통과 의례라는 점에 집중해서 지금의 30분 만에 끝나는 인스턴트 결혼식이 어떻게 구성되어 사회적으로 자리잡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가정의례준칙을 아시나요? 


우선 일반적인 결혼 의례의 순서를 한번 되짚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아는 결혼식은 대체적으로 위의 그림과 같은 기본 골격입니다. 물론 예식 이전에 벌어지는 함, 예단 등의 절차가 있고 예식 이후에 폐백이라는 의례도 있지만 우선은 결혼식 자체에 좀 더 집중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뭔가 허전하고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고 누구나 하고 있기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마치 '전통'과 '문화' 중 하나라고 까지 생각하는 이 의례의 순서와 구성를 정부에서 규정하고 있고 현재까지도 대통령 시행령의 준칙으로 정해놓고 있다는 점을 알고 계신가요? 위 순서는 “건전가정의례준칙 [시행 2008.10.14.] [대통령령 제21083호, 2008.10.14., 전부개정]" 에서 제시하고 있는 결혼식의 순서 입니다.  도대체 왜 이러한 예식 의례까지 국가가 관여를 하고 있을까, 그 이유가 궁금해져 자료를 찾아본 결과 그 기원은 1973년에 공표된 ‘가정의례준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1973년 가정의례준칙 by 프레지던트 JH 팍 featuring JP 킴


결혼식 순서마저 정해주는 국가 = 새마을 정신?


이 1973년에 공표되어 ‘가정의례준칙’ 지키지 않으면 처벌까지 받는 이 '규제'가 등장한 배경은 당시 허례허식 문화가 만연하고(답례품, 축의금), 식량도 부족한 국가에서 잔칫상에 남기는 음식이 이렇게 많아서 되겠냐라는 문제의식에서 생겨났습니다. 1969년 박정희 대통령 담화에서 시작된 이 담론은 1973년 대통령령으로 확정, 공표되었습니다. 이 준칙은 직장인 월급의 몇 십배에 달하는 벌금을 물리는 상당히 강력한 규제였습니다.


가정의례준칙 '계몽' 강연회


이 준칙을 알리고 시행하기 위해서 전국에서 강연회가 열렸고 홍보영화도 제작되었고 합니다.

그럼, 그 홍보 영화를 한번 보고 갈까요?(의외로 꿀잼)



가정의례준칙은 무엇을 어떻게 바꿨을까?


1973년에 개정된 ‘가정의례준칙’에서는 장례는 3일장으로, 청첩장 발송 금지, 함잡이 금지, 단체명의의 신문 부고 금지 등의 규정과 양식을 내놓았습니다.  이 준칙에는 결혼식 뿐만 아니라 장례식, 제사, 회갑연 까지도 포함하는 규제가 포함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결혼식 관련한 규제를 살펴보면

① 청첩장 등 인쇄물에 의한 하객초청 금지 

② 답례품의 증여

③ 화환·화분 기타 그와 유사한 장식물의 진열·사용 또는 명의를 표시한 증여

④ 약혼식 금지 
⑤ 합잡이 금지
⑥ 경조기간 중 주류 및 음식물의 접대 등 금지

⑦ 신행(신혼여행 X, 결혼식 후 신랑이 신부집에서 3일 정도 머무는 전통관습)의 축소 


전통적인 우리나라의 혼례는 상당히 긴 시간과 절차를 필요로 하였는데 위와 같은 가정의례준칙의 '절약', '과소비 금지','근대화'라는 명분의 국가적 강제로 예식 자체는 빠른 시간, 약 30분 이내로 축소 되는 변화가 생기게 됩니다. 예식후 잔치를 하면서 3일 정도 머무르는 모습은 사라지고 예식 후 바로 신혼여행을 가는 식으로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길게 시간을 가지고 결혼식을 잔치로 생각하는 문화가 그나마 남아있는 곳이 제주도입니다. 제주도에서는 대체적으로 결혼식을 하루종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법대로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브앤테이크의 본능이 있는 것인지 일단 잔치를 베풀면 하객들이 자꾸만 돈을 쥐어줬고, 돈을 주면 다시 답례품이나 성냥갑에 지폐를 숨겨서 다시 돌려주는 등 몰래몰래 이루어지는 거래는 여전했다고 합니다. 


우리 결혼식의 의례와 순서는 어디서 온 것일까?


이렇게 국가에서 지정해준 결혼식 순서와 이후 여기에서 추가되고 변형된 강종 의례들이 매주 주말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예식장에서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드는 의문은 이 의례들의 기원은 어디이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우리가 과연 그것을 따라야 하는가? 입니다. 우리의 전통혼례의 방식 가운데 남아있는 부분은 예식 후에 하는 '폐백' 정도 입니다. (폐백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알아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큰 틀에서는 서양의 결혼식 문화가 반영이 되었지만 그 중에는 서양에서도 우리의 전통문화에서도 없는 '괴상한' 행위들이 의례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특색 있는 몇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버진 로드(Virgin Road), 처녀의 길?


신랑이 먼저 씩씩하게 입장하고, 신부가 아버지 (또는 집안의 남성 어른)의 손을 잡고 행진하는 식의 구성은 서양을 따라한 것으로 보입니다. 신부의 아버지가 신랑에게 신부를 넘기는 것이 가부장 사회의 단면을 담고 있다는 상징성 때문에 요즘은 신랑 신부 동시 입장을 하시는 신랑신부도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입장과 관련하여 이야기 하고 싶은 포인트는 신부가 입장하는 길을 버진로드(Virgin Road)라고 부른다는 점입니다. (숫처녀의 길이라니...)그런데 놀랍게도 버진로드 라는 이 말은 영어가 아니라 일본어입니다! 영어에서는 이 길을 Wedding Aisle, Aisle 등 입장로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는데, 쟁글리시(일본에서만 쓰이는 이상한 영어합성어)의 대표적인 사례가 이 요상한 숫처녀의 길, 버진 로드 입니다.

이 쟁글리시가 한국에서 사용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70~80년대 우리나라에 우후죽순으로 건설된 예식장들은 그 인테리어나 외부 모습을 어떻게해야 할까하고 해외사례를 많이 참고하였습니다. 서양의 경우 이러한 우리의 개념의 “예식장”이라는 문화가 없기 때문에 따라 할만한 것이 없었고, 당시 일본과 대만에서 성행하던 화려한 예식장의 양식을 받아들이면서 생겨난 단어가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말로는 “꽃길”이라는 좋은 단어가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꽃길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어떨까요? 


화촉점화 : 기원은 혼란의 카오스


일반적으로 신랑, 신부의 어머님들이 예식이 시작될 때 입장하여 초에불을 붙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국주례협회의 예식 순서를 보면, 어머님들이 입장한 뒤 신부어머니는 빨강 초에, 신랑어머니는파란 초에 불을 밝힌다고 되어 있습니다.

인터넷에 따르면.... 글쎄요...


전통적인 의미에서 살펴보면 결혼식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화촉을 밝힌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여기서 화(樺)라는 것은 자작나무를 뜻합니다. (자작나무를 말아서 불을 밝히면 오래 간다고 하네요) 아무튼 화촉과 관련한 핵심 표현은 “동방화촉(洞房華燭)”이라고 첫 날밤에 신방에서 불을 켜던 것을 의미합니다. 아울러, 혼례 시 실제로 불을 밝혔는가도 의문이거니와, 밝혔다고 해도 혼주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은 혼주가 할 일이 아니었다고 하는데, 이유는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주인장이 그런 하찮은 일을 해서 되겠냐라는 뉘앙스였던 것 같습니다. 애초에 불을 밝힐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날이 어둑해져야 되는 것인데, 중국의 경우 혼례(婚禮)의 혼(婚)이 저녁 혼(昏)에서 파생된 글자임을 생각해보면 저녁에 확실히 한 것 같습니다만, 한국은 지역마다 혹은 시기마다 낮/저녁으로 달랐기 때문에 낮 예식이라고 하면 별도로 불은 밝히지 않은 것으로 이해됩니다. 


전통문화에도 없는 이런 이상한(?) 의례는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요? 화촉점화를 영어로 하면 Unity Candle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데요, 이 문화는 미국에서 많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 시작도 오래된 것이 아닌 1970년대 정도에 생겨났다고 합니다. 도대체 이 문화가 어디서 왔느냐에 대해서는 미국에서도 의견이 분분한데, 대체적으로 미국에서 빅 히트를 친 미국 드라마 General Hospital에서 최초로 결혼식 때 초에 불을 붙이는 장면이 방영 된 뒤 본격적으로 퍼져나갔다는 썰이 가장 유력하다고 하며, 마치 빼빼로 데이처럼 양초회사들이 상술로 기획한 것이다, 심지어는 포토그래퍼가 사진을 다이나믹하게 찍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다라는 썰들이 분분합니다. 


초 때문에 논란. 제너럴 하스피털


미국 카톨릭은 공식적으로 이 화촉점화를 인정하고 있지 않고, 원래는 불가하다고 했으나 하도 하니까 그냥 봐주는 식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대중화된 이 문화가 한국에 전파되면서 신랑측은 파랑 초, 신부측은 빨강 초, 그리고 예식에서 역할이 없는 양가 어머니에게 역할을 주기 위해서 동시 입장으로 초를 밝힌다는 요상한 의례가 추가된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을 해봅니다.


주례 문화 - Officiant 와 사회자 사이


‘주례없는 예식’ 요즘 많이 유행하는 예식 문화인데요. 아무도 듣지 않는 형식적인 주례사는 수 많은 하객들을 참을 수 없는 지루함으로 이끌었고 때로는 사회적으로 권위있는 지인이 없거나 마땅한 주례를 찾지 못하는 경우 주례를 고용하는 세태를 생각해보면 긍정적인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예(禮)를 주관하는 주례가 없어도 되는 문화로 바뀌는 이유는 다시 생각해보면 현재 우리나라 결혼식에서 주례의 역할은 사회적 권위를 가진 어른이 당부의 말씀을 해주는 역할이었고 어떠한 법적, 종교적 권위를 가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혼식, 장례식 같은 대표적 의례가 가지는 기본적인 속성은 의례에 참가하기 전의 인간과 의례에 참여하여 일정한 절차를 마친 인간은 다른 인간, 또는 새로운 인간이며 이를 표현하는 말로 통과의례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결혼식에 적용해 보면 결혼식이라는 의례 이 전에는 그냥 좋아하는 남녀 사이였지만, 의례를 통해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부부'로 탄생하는 스토리가 인류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결혼식의 공통적 속성일 것입니다.


선언자, 증인, 그리고 당사자


그렇다면 이 '인정'의 주체는 누구일까요? 서구권 문화에서는 당연히 ‘신’일 것입니다. 신의 인정을 받아야 공인된 부부로서 재탄생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서양에서는 기본적으로 교회나 성당에서 결혼을 하였고 신의 대리인인 성직자가 주례를 담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근대 이후 ‘신’ 중심 문화가 와해되고 근대적 세속주의와 종교분리가 근대정신의 근간을 이루면서, 그렇다면 결혼식에서 인정의 주체를 누구로 해야 하느냐의 문제에 대해 미국이 내놓은 답안은 ‘법’이었습니다.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미국의 헌법을 기반으로하는 세속주의의 원칙에 따라 미국에서 주례인(Officiant)는 반드시 법적 자격을 갖추도록 되어 있습니다.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By the power invested in me by the state of New York" (뉴욕 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같은 표현이 사용되는 것도 이 결혼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법적인 권위를 가진 자이며 하객들은 이 '법적 사건'에 증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직자가 아닌 사람도 '법적' 자격을 얻어서 주례를 볼 수 있는 미국

 

우리나라 전통 혼례에는 말로 성혼을 선포해주는 서구적 개념의 주례가 없었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전통 예식은 순서를 알려주는 것을 제외하고는 말 자체가 거의 없습니다. 마을에서 경험 많은 어르신이 의례의 순서를 알려주고 이끌어가기는 하지만 그 역할은 대략 신랑신부가 해야 하는 행동, 즉 절하고 술먹기, 절하고 술먹기의 차례를 인도하는 역할에 그칩니다. 예를 이끌어간다는 의미에서 주례자 또는 집례자 라는 표현이 사용되어 왔는데 이를 현대적인 의미에서 해석해보면 현재의 '결혼식 사회자'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오른 쪽에 있는 저 분!


현재 우리나라의 주례문화는 서구적인 의미의 'Officiant'와 경험많은 어르신이 담당했던 '사회자'의 역할이 짬뽕(?)된 문화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전반적으로 서구 결혼식의 의례 순서를 따르고 있지만 서양의 Officiant가 하는 의 핵심적인 기능인 ‘인정’이라는 과정 “I now pronounce you as husband and wife”(남편과 아내로 선언합니다)라는 선언을 하는 주체의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여기에는 사회적으로 권위있는 사람을 주례로 한다는 것이 사회적 영향력을 과시하는 방법으로 변질되면서 주례가 사회적으로 명먕이 있는가, 유명한가 등 외부적으로 보이는 “스타성”에만 주목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리하자면, 우리의 결혼문화의 큰 틀은 1973년 공표된 가정의례준칙에 기반을 두고 있고 버진로드, 화촉점화, 주례 문화 등은 문제는 형태는 서양의 것을 받아들이기는 하는데 우리의 사정과 그 의례의 의미를 대충 눈으로 훑고 형식적 모습만 가져다가 썼지 그 안에 담고 있는 의례의 존재 이유나 의의 같은 것들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근본없는(?) 결혼식 문화가 생긴 것이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번 글을 작성하고 계속 이런 저런 자료를 찾아보니 더 쓰고 싶은 주제가 상당히 많더군요.


앞으로 더 써보고 싶은 주제는 이렇습니다.

- 폐백 문화

- 우리가 아는 '결혼 상식'은 상식이 맞을까? 누가 만들고 유포하는걸까? 

- 결혼식에서의 사진사의 권력

- 우리가 알고 있던 결혼식에 대한 상식은 누가 만드는가?

- 다른 동아시아 국가는? (특히 일본의 사례는 완전 문화컬쳐)

- 그렇다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


감사합니다 (많은 댓글과 응원은 다음 글을 쓰게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 1. 원판사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