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 그 익숙해지지 않는 감정

by J브라운




새해가 된 지 벌써 한 달 하고도 보름이 지났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내 나이에 또 한 살을 더해야 한다는 유쾌하지 않은 기분과 여전히 함께 하고 있는 코로나로 큰 기대감 없이 맞이했던 2022년. 하지만 그것보다 새해에 대한 큰 감흥이 없었던 건 아마도 연말에 있었던 헤어짐 때문이었으리라.


헤어짐... 그 첫 번째 이야기


2021년 12월 17일 금요일 오전.

출근 후 오전 업무 시작 전 차 한잔을 마시려는데 친구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간이 아직 아침 9시가 되기도 전이었다. 경험상 이맘때 걸려오는 업무 외적인 전화는 뭔가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살짝 걱정되는 마음을 뒤로하고 전화를 받았더니 친구가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용건을 말했다.

"저기 있잖아, 오늘 아침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초등학교 4학년, 11살에 서울로 이사를 온 후 그때부터 친구가 된 이 녀석.

11살 때부터 내 삶 속에 항상 함께 해준 이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얘기에 시간이 멈춘 듯했다. 말문이 막히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친구 녀석은 일단 내게 다른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선 전화를 끊었다. 친구의 부탁에 알았다고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을 때까지도 머리가 멍했는데 녀석과의 전화를 끊고 다른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하고 나서야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돌아가신 아버님은 내 기억 속에도 선명하게 남아 계시다. 어린 시절 나를 포함한 우리 친구 무리는 유독 이 녀석 집에 자주 가곤 했었는데 우르르 몰려와서 집안을 한바탕 뒤집어 놓고 가는 우리를 아버님은 언제나 밝은 웃음으로 맞이해 주시곤 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 농구에 푹 빠져버린 우리들에게 집 앞에서도 농구를 할 수 있도록 농구골대를 직접 만들어주시기도 했고 스무 살이 된 어느 여름날에는 더울 때일수록 잘 먹어야 한다며 한방 오리탕을 사 주시기도 하셨던 아버님.


그런 아버님께서 2004년 중풍으로 갑자기 쓰러지셨는데 안타깝게도 회복을 하지 못하시고 그 이후 병원에만 계시다 이번에 코로나가 아버님이 계신 요양병원에도 번져 코로나 확진 후 1주일 만에 가족 곁을 떠나시 됐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친구의 얼굴은 그래도 생각했던 것보다는 나쁘지 않았다. 친구가 아버님을 마지막으로 뵌 게 3달 정도 전이라고 했다. 아버님은 쭉 요양병원에 계셨는데 코로나로 인해 면회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가족의 마지막조차 함께 할 수 없게 되어버린 지금. 코로나는 정말 여러모로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하고 있다.


도와줄 건 없느냐는 내 물음에 상조회사에서 다 해준다고, 할 게 없다고 말하는 녀석의 눈에 많은 감정이 뒤섞여 보였다. 17년이란 긴 세월을 누워만 계셔야 했던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아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가시는 마지막 순간조차 곁에 있어드리지 못한 친구의 마음이 어땠을지 아직도 난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괜히 멋쩍게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어깨를 토닥여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장례식장에서 밤을 새우고 발인까지도 함께 했을 텐데. 30년을 함께 한 친구들이니 이번만큼은 말하지 않아도 우리의 마음이 잘 전달됐으리라 믿어본다.


그러고 보면 언젠가부터 전해지는 친구들의 부고가 더 이상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닌 아버지, 어머니의 부고로 바뀌고 있다. 그만큼 나도 나이를 먹었다는 뜻이고 내가 나이를 먹은 만큼 부모님도 조금씩 늙어가고 계시다는 거겠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르는 시간이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면 왜 이리 마음이 짠하고 울컥하게 되는 걸까.


친한 친구의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게 이번이 세 번째다. 처음 친한 친구의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땐 28살 때였다. 신입사원 연수 때문에 합숙을 하고 있었던 터라 찾아뵐 수가 없어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며 미안한 마음에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4~5년 전쯤 또 다른 친구의 아버님이 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땐 상황이 지금과 같지 않아서 장례식장에 꽤 오랫동안 머물렀었고 발인날 화장터까지도 따라갔었다.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다. 그럼에도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는 부모님과의 이별. 친한 친구의 부모님이고, 언젠가 나에게도 일어날 일임을 알기에 이 이별은 너무나 슬프고 마음이 아프다.


헤어짐... 그 두 번째 이야기


회사에서 돌봐주고 있는 길고양이 두 마리가 있는데 그중 한 녀석이 작년 연말부터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젖소냥, 치즈냥 두 녀석이 있는데 나중에 함께 하게 된 치즈냥이 작년 12월 중순쯤부터 갑자기 보이지 않더니 지금까지 들어오고 있지 않다.

워낙에 어린 고양이라 회사에 자리를 잡은 뒤 좀처럼 이곳을 벗어나지 않는 녀석이었는데 12월의 어느 금요일에 퇴근을 하면서 밖에 있는 녀석에게 월요일에 보자며 건넨 인사가 마지막이 되어 버렸다.


처음엔 며칠 있으면 집에 돌아올 것으로 생각했다. 함께 지내는 젖소냥도 종종 2~3일씩 모습이 안 보이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와 있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1주일이 지나도, 2주일이 지나도 치즈냥은 돌아오지 않았다.

회사 동료분은 치즈냥이 안 보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함께 지내던 젖소냥이 며칠 동안 집에만 꼭 붙어있었다며 아무래도 치즈냥이 잘못됐을지도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그 이후로도 치즈냥을 기다려왔지만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다.


초록창에 검색을 해봤더니 길고양이가 발정이 나면 그럴 수도 있다는데 함께 있는 젖소냥은 집에 멀쩡히 있는 반면에 치즈냥만 돌아오지 않는 걸로 봐서는, 그것도 이제 2달이 되어가는 지금엔 어쩌면 동료분 말씀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은 주택가가 거의 없고 큰 차들이 많이 다니다 보니 길고양이가 살아가기엔 정말 힘든 환경이다.
(로드킬을 당하는 녀석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작은 녀석이 그래도 이곳까지 와서 이제 밥과 잠자리만이라도 조금은 편해지겠구나 싶었는데 인사도 없이 이렇게 갑작스러운 이별이라니 음 한 구석이 참 허전하다.

부디 어디에서라도 건강히 지내고 있기를

겁이 많아 손을 타지 않다가 츄르에 정신이 팔려있을 때 가까스로 처음 만져본 아이의 감촉이 아직도 생생하다. 털이 어찌나 부드럽던지. 그 이후 가까이 다가가면 배를 보이며 눕던 녀석의 모습은, 그 배를 만지면 작은 이빨로 내 손가락을 살짝 깨물던 녀석의 모습은 정말 사랑스러웠다. 집으로 데려가서 키울까 말까를 많이 고민했지만 스스로 생명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 회사에서만 돌봐주는 걸로 했던 이 녀석이 지금은 어디에 있는 걸까. 너무나 미안하면서도 제발 이곳보다 좋은 어딘가에서 건강히 지내고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헤어짐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감정이다.

사람과도 그렇고 동물과도.

연말에 있었던 이 두 번의 헤어짐은 나에게 또 많은 생각과 질문을 던져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결론은 하나다. 언젠가 있을 헤어짐에 대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그저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이다.

가족으로서, 친구로서, 동료이자 선후배로서 그리고 사람대 사람으로서.


그럼에도 헤어짐에 대한 낯섦은 여전하겠지만 헤어짐 뒤에 남을 후회는 분명 덜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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