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은퇴식 #1

불효자

by J브라운




우리 집은 평범한 가정이다. 구보다 성실하신 아빠, 전업주부 엄마, 그리고 형 둘과 나.


아빠는 직업군인 생활을 20년 가까이하신 후 금융권에 입사하셨고 거기서 또 20여 년을 근무하셨다. 어떻게 보면 참 운이 좋았다 할만하다. 군 전역 후 재입사까지 얼마간의 공백이 있었는데 이미 큰 형이 중학생이었던 그 시절, 얼마나 많은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셨을까. 그래도 능력 있으셨던 아빠는 당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으셨고 그렇게 두 번째 직장생활을 시작하실 수 있었다.


엄마는 전업주부다. 아들 셋을 키우시느라 참 많은 고생을 하신 우리 엄마. 아빠가 아직 직업군인이시던 시절 낯선 서울로 이사를 오고 1년 정도 주말부부로 지내시며 우리 삼 형제를 홀로 감당하시기도 했던 엄마. 엄마의 삶엔 가족 외에 다른 게 끼어들 틈이 없었다.

내 또래의 엄마들 대부분이 그러했듯.


아빠의 은퇴식


얼마 전 아빠와 할아버지 제사를 위해 고창을 다녀오고 며칠 후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와는 그래도 전화통화를 자주 하는 편이다. 대부분 아들인 내가 연락을 드리기 전에 엄마가 먼저 전활 하신다는 게 문제지만.


안부를 묻고 난 뒤 엄마가 12월 4일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으셨다. 이유를 묻는 내게 그날 부모님이 다니시는 교회 오후 예배 때 아빠의 장로 은퇴식이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날은 결혼 후 처음으로 처가 식구들 모두와 1박 2일로 여행을 가기로 한 날이었다. 엄마에게 사정을 설명드리고 아무래도 못 갈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엄마 옆에서 버럭 화를 내시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은퇴식을 와야지, 너는 처가가 중요하냐?"

그리고 엄마의 격앙된 목소리도 들려왔다.

"아들놈들은 여행 가잔 얘기도 한 번 안 꺼내는데 딸이 있으니까 저렇게 여행을 가는구만. 아들놈들은 다 필요 없다니까."


평행선


먼저 그날 있었던 아빠와의 이야기다.


처가가 중요하냐며 목소릴 높이시는 아빠의 모습에 난 무척이나 당황을 했다. 밑도 끝도 없이 화부터 내시는 아빠. 다시 차분히 말씀드렸다.


"아니 이게 결혼하고 처음 가는 처가 여행이라서요. 장인, 장모님이랑 처형네 그리고 저희까지 세 식구 함께 가는 게 이번이 처음이에요. 게다가 전부터 잡혔던 거고요. 가족 다 가는 건데 저희만 빠지기 좀 그렇잖아요."라는 내 얘기에 아빠는 여전히 화가 잔뜩 나신 목소리로 "그러니까 넌 처가만 중요한 거냐고. 아빠 은퇴식에 와야지. 그럼 너는 교회 오고 자영(가명)이만 가라고 해."라고 말씀하셨다.


"아니 아빠, 가족 다 같이 가기로 했는데 어떻게 자영이 혼자만 가라고 해요?"

"그럼 내가 자영이한테 직접 얘기할란다."

"아빠 그럼 자영이가 뭐라고 하겠어요? 아빠한테 못 간다 하겠어요? 아니 제 입장도 좀 생각을 해주셔야죠. 제가 그날 집에서 놀면서 안 간다는 거 아니잖아요?"

"그럼 둘째 날 일찍 너네만 먼저 올라와서 은퇴식에 참석해."

"이틀 가는 여행인데 둘째 날 아침부터 바로 올라간다고 말씀드리기가 저도 좀 그렇지 않겠어요? 아빠, 입장 바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 가족 다 같이 처음으로 여행 갔는데 자영이가 친정에 일이 있어서 먼저 간다고 하면 어떠시겠어요?"

"이틀 여행에 둘째 날 간다고 하면 보내면 되지. 나 같으면 그런다. 아무튼 넌 처가만 중요하다는 거 아니냐."

"아니 아빠 지금 그 얘기가 아니잖아요. 처가 때문이 아니라 그날 선약이 있다는 거잖아요. 이 여행이 아니라 다른 일이 있었을 수도 있는 거고요. 그리고 몇 번 갔던 거면 저도 빠지겠는데 이게 처음 가는 여행이라니까요."


무조건 오라는 아빠와 내 입장을 좀 이해해 달라는 나. 이렇게 우리 두 사람의 대화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고 결국 옆에서 듣다 못한 엄마가 나중에 얘기하자며 전화를 먼저 끊으셨다.


나의 결혼식


10년 전 내 결혼식을 준비할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아빠는 교회에서 장로님, 엄마는 권사님이셨다. 나도 교회를 다니긴 했지만 믿음이 그렇게 깊은 편은 아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부모님은 결혼식을 교회 예배식으로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예배식으로 해야 한다고요?"라는 내 물음에

"아빠, 엄마가 교회 장로, 권사님인데 당연히 그래야지."라고 말씀하시던 부모님. 사전에 내게 말씀하신 적도 없었고 결혼식을 함께 치르는 사돈댁과도 한 마디 상의 없이 두 분이서 그렇게 정하신 거였다.


일단 아내는 무교였고 아내 쪽 가장 어른이신 외할머니는 절에 다니고 계셨다. 아내 쪽 친척들 중 기독교 신자는 딱 한 가족이었고 나도 믿음이 그리 깊지 않은 터라 예배식은 내키지 않았다. 아내에게 얘기했을 때도 아내가 상당히 곤란해하던 게 기억난다. 그 후 결혼식을 준비하는 내내 이 문제로 부모님과 몇 날 며칠을 싸웠는지 모른다.


아빠 엄마가 교회 장로, 권사니 무조건 예배식으로 결혼식을 치러야 한다는 부모님과 신부 가족 중에 기독교 신자가 거의 없고 무엇보다 결혼식 당사자인 신랑과 신부가 원하지 않는데 왜 예배식으로 치러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나. 결국 결혼식은 예배식으로 하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결혼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바로 이 문제로 부모님과 날을 세워야 했던 시간들이었다.


부모님의 입장


그때도 지금도 아빠 엄마 두 분께 남들의 시선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내 결혼식 때도 그랬다. 난 아직도 이해를 하지 못하겠는 게 결혼식 당사자인 신랑 신부의 생각보다 두 분의 입장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였을까 싶은 점이다.


교회에서 장로님, 권사님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나도 안다. 그리고 장로, 권사님의 자녀들은 기독교 집안끼리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아 종종 결혼식을 예배식으로 치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양가가 모두 기독교 집안일 때 얘기고 교회에서 장로, 권사 아들이 예배식으로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그게 그렇게 큰 흠이 되는 것일까? 난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데 아직도 그때 두 분이 말씀하셨던 게 생생하게 기억난다.


장로, 권사 아들 결혼식인데 예배식으로 하지 않으면 목사님이나 교회 사람들이 뭐라 하겠냐고.


이번 아빠의 장로 은퇴식도 그렇다.

물론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아빠는 은퇴식에 상당히 큰 의미를 두고 계셨다. 일생에 한 번 있는 행사라고. 그리고 나에게 연락하시기 전에 큰형한테 먼저 전화를 하셨는데 큰형도 처음엔 바빠서 참석 못할 거처럼 얘길 해서 기분이 언짢아지신 상황이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결국 아빠의 기분을 알아챈 큰형이 참석하겠다고 전화를 끊긴 했지만 두 번째로 연락을 한 나도 못 갈 것 같다고 대뜸 얘길 해버렸으니 아빠가 서운해하실 만도 했다. 하지만 이건 나중에 알게 된 거고, 아무것도 모른 체 전화를 받은 내게 다짜고짜 화를 내시는 아빠의 모습에 난 크게 당황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선약인 처가 여행도 그렇다. 이번 여행은 처형네가 가족여행을 한 번 가자고 해서 성사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미 숙소 예약까지 해 놓은 상황이었는데 처형과 아내 모두 결혼 후 식구들과 함께 가는 첫 번째 여행이었다. 처가 쪽은 외가 친척들이 다들 가까이 살아서 여행을 가도 외조부모님을 모시고 친척들이 함께 가는 경우가 많았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처가 식구들만 따로 여행을 간 건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했다. 그랬기에 장인, 장모님도 이번 여행에 기대를 많이 하시는 눈치였고 나 역시도 결혼 후 처가 식구들과 함께하는 첫 여행이기에 큰 의미를 두고 있었는데 아빠는 이런 내 입장은 전혀 생각지 않으시고 무조건 은퇴식에 참석하라는 말씀만 반복하셨다.


물론 나도 잘한 건 없다. 처음부터 못 갈 거 같다고 말씀드리지 말고 아내와 얘길 좀 해보고 다시 연락드린다고 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대뜸 화부터 내시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는 아빠의 모습에 나도 감정적으로 대응을 하면서 일을 더 어렵게 만들어 버렸다.


죄송해요


아빠의 은퇴식 문제로 엄마에게 전화가 왔던 게 오후 2시쯤이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니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했다. 일단 나에게도 아빠에게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성적으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진정이 좀 되고 나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정을 얘기하고 아무래도 여행 둘째 날 나만 일찍 올라와서 아빠의 은퇴식에 참석해야 할 것 같다는 말에 아내는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않겠냐며, 그래도 갈 거면 같이 가자고 말을 해줬다. 하지만 난 아내라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게 하고 싶었다. 아내에겐 그냥 나만 참석하겠다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퇴근 후 집에 와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 마음 좀 가라앉으셨냐는 내 얘기에 멋쩍게 웃으시는 아빠. 아빠도 조금은 민망하셨었나 보다.

"아니 왜 그렇게 화부터 내고 그러세요? 제 사정을 좀 들어 보시고 그때 화를 내셔도 되잖아요."라는 내 얘기에 "내가 언제 화를 냈냐? 그냥 목소리만 커진거지."라고 말씀하시는 아빠.

일단 먼저 아까 그렇게 꼬박꼬박 대들어서 죄송하다고, 은퇴식엔 저만 참석하겠다 말씀을 드렸더니 아빠는 끝끝내 올 거면 같이 오라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그래도 가족끼리 진짜 오랜만에 가는 여행인데 자영이는 가족이랑 시간 좀 보내게 해야죠."

"이것 봐, 너는 처가만 중요하게 생각한다니까."

"아니 아빠 그게 아니고요 상황이 저만 혼자 오게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일단 저만 가는 걸로 하고 상황 봐서 같이 올 수 있음 올게요."

"너 말하는 본새가 딱 너만 올라고 그러는구만 뭐."


휴.. 아무래도 또 쳇바퀴 돌듯 같은 얘기가 반복될 것 같아서 "알았어요, 자영이도 데리고 갈게요. 아깐 정말 죄송했어요. 쉬세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불효자라 그런가?


전화를 끊고 나니 어쩌면 내가 불효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의 한 번뿐인 장로 은퇴식에 참석하는 게 뭐가 그리 어려운 거라고 이렇게까지 문제를 크게 만들었을까. 하지만 나도 내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다. 그것도 나만의 문제가 아닌. 차라리 그날 아무 일도 없었다면 그냥 '네, 갈게요' 이 한 마디로 끝날 문제였는데. 내가 정말 처가만 생각하고 있는 거였나. 아직도 그때 내가 어떻게 했어야 는지 잘 모르겠다.


엄마 말씀에 의하면 아빠가 요즘 이렇게 버럭 화를 내시는 일이 빈번하다는데 이번에도 아빠가 처음부터 화를 내지 않으셨다면 뭔가 달랐을까. 엄마는 이런 말씀도 하셨다. 다른 장로, 권사님 은퇴할 땐 그 집 가족, 며느리, 손주들까지 다 와서 축하해 주는데 없으면 모를까 있는 자식들이 안 오면 되겠냐고. 물론 참석해서 축하해 드리는 게 당연한 도리라는 건 잘 안다. 하지만 사정이 있다면 참석하지 못할 수도 있는 거 아닐까. 무조건 오라시는 아빠의 말씀은 이제 다 커서 가정까지 이루고 있는 내게 그날따라 유난히도 꽉 막힌 벽처럼 느껴졌고 여전히 두 분에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신가 보다 싶었다.


그래도 가족이니까


내가 불효자여서 부모님의 생각을 존중해 드리지 못하는 걸까. 물론 어른들에게 타인의 시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안다. 하지만 가끔 어느 부분에선 타협이란 있을 수 없다는 듯 강경하신 모습을 마주할 때면 답답함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혹 마흔이 넘은 내가 아직도 철없는 막내아들로 보여서 그러시는 걸까? 아님 내가 나를 이해해 달라 말씀드리듯 부모님도 두 분을 이해해 달라고 그렇게 하시는 걸까?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당연히 부모님과 이렇게 언쟁을 하고 싶진 않다.


물론 이 부분은 내가 잘못하고 있는 부분이 크다. 어렸을 땐 부모님이 큰 소리를 치시면 바로 '죄송해요'하고 말씀을 드렸는데 나도 어른이 되고 결혼까지 하고 나니 내 기준에서 이건 아니다 싶은 문제에선 부모님의 목소리가 커지더라도 내 의견을 끝까지 말씀드리곤 한다. 그 과정에서 커지는 부모님의 목소리를 따라 종종 내 목소리도 덩달아 커지기도 하는데 부모님께 따박따박 대드는 아들이라니, 분명 이건 내 잘못이긴 하다.


그래도 한 번쯤은 내 생각을 들어봐 주시고, 조곤조곤 얘기하면서 풀어가실 수는 없는 걸까? 가끔 이렇게 버럭 화를 내시면서 내 얘기엔 귀 닫고 당신 말씀만 하시는 아빠를 마주할 때면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어떻게 하는 게 맞는 걸까? 다른 집들도 이런가?


곧 본가 김장이 있다. 그날, 겉절이에 수육 한 점 싸 먹으면서 아빠와 처음으로 이 부분에 대해 얘길 한 번 해봐야겠다. 가족이니까. 서로에게 상처 주고 상처받는 일은 없어야 할 세상에 하나뿐인 가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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