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그날 있었던 엄마와의 이야기다.
아빠의 장로 은퇴식날 처가 여행이 있다는 내 얘기에 격앙된 목소리로 "아들놈들은 평생 여행 가잔 얘기도 한 번 안 하는데 딸이 있으니까 저렇게 여행을 가는구만. 아들놈들은 다 필요 없다니까." 라며 성을 내시던 엄마.
그리고 바로 엄마 옆에 계시던 아빠와 통화가 이어졌고 이 통화는 그대로 끝이 났다. 물론 마지막에 다음에 통화하자며 전화를 먼저 끊으신 건 엄마였지만 그전까진 아빠와의 팽팽한 대화가 계속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일까?
아빠가 화를 내시는 것도 좀 당혹스러운데 엄마는 거기서 얘기가 저렇게 빠진다고?
아빠의 은퇴식으로 시작된 얘기는 뜬금없이 딸이 없어 가족여행 한 번 못 간다는 엄마의 푸념으로 이어졌다.
이게 정말 무슨 일인 걸까 싶어졌다.
우리 엄마
24살에 큰형을 낳으셨고 서른 전 이미 삼 형제의 엄마였던 우리 엄마.
우리 집은 직업군인이셨던 아빠를 따라 이사도 참 많이 다녔는데 집안일에 삼 형제 육아까지 엄마 혼자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물론 아빠도 누구보다 성실하셨고 우리 가족을 위해 많은 희생을 하셨다. 하지만 엄마를 생각하면 짠한 마음부터 든다. 우리가 어렸을 적 아들들을 위해 당신의 삶은 뒷전으로 밀어두셨던 엄마. 아빠가 두 번째 직장생활을 시작하시고 우리 삼 형제도 모두 대학을 가고 나서야 비로소 엄마도 집안일에서 조금은 해방되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였을까? 여유가 생기신 엄마는 언젠가부터 딸이 없어서 외롭다는 말씀을 하시기 시작했다. 엄마 마음은 딸이 알아주는데 엄마는 딸이 없으니 누가 내 마음을 알아주겠냐고. 그래서 외롭다고.
처음 몇 번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없는 딸을 이제 와서 찾아본들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나 싶어서.
하지만 엄마의 외로움은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다 큰 아들들은 결혼 전부터 각자의 사정으로 집을 떠나기도 했고 언젠가부터 동호회 활동을 시작하신 아빠는 휴일이면 교회에 가시거나 동호회 모임으로 바쁘셨다. 나 역시도 학교에 다니느라 그리고 졸업 후엔 바로 취업해서 직장생활로 내 시간을 보내느라 엄마의 외로움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했다.
다섯 식구에서 세 식구로 줄면서 비좁게만 느껴지던 집도 가끔 허전함이 느껴지곤 했는데 그 틈을 비집고 엄마에게 파고들어 온 외로움이 조금씩 커지고 있었음을 난 왜 알지 못했을까.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엄마의 외로움을 마주하게 된 건 내 결혼을 몇 달 앞두고 떠난, 참으로 오랜만에 있었던 가족여행에서다. 부모님, 큰형네, 작은형 네와 함께 곤지암으로 여행을 다녀왔던 날, 어쩌다 엄마와 그런 얘길 나누게 됐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는 나와 대화를 나누시다 딸이 없어서 너무 외롭다고, 아들들은 엄마 마음을 모른다며 눈물을 보이셨다.
내 기억으론 엄마가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 신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엄마의 외로움
엄마와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그날 엄마의 눈물에 크게 당황을 했던 건 생생하게 기억난다.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그저 엄마를 바라보고만 있었는데 엄마는 좀처럼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셨다. 물론 아빠도 계셨지만 평소 무뚝뚝하고 잔정이 없으신 아빠는 엄마에게 위로가 되어주지 못하시는 듯했다. 처음 마주하게 된 엄마의 외로움.
이 외로움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이었을까.
아들 삼 형제가 성인이 된 이후 엄마에게도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게 되면서 엄마의 외출이 잦아졌다. 친구분들, 교회 사람들과의 약속으로 밖에 나가시는 일이 많았는데 엄마들이 모이면 주로 하는 얘기가 자식들 얘기라 하셨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엄마 지인분들 중에 딸이 없는 분은 우리 엄마뿐인데 다들 모였다 하면 그렇게 딸 자랑을 많이 하신다 했다. 누구네 딸은 엄마랑 맛있는 걸 먹으러 갔다더라, 누구네 딸은 엄마랑 여행을 갔다더라, 누구네 딸은 엄마랑 쇼핑을 자주 다닌다더라, 또 누구네 딸은 그렇게 매일 엄마한테 필요한 게 없는지 물어보고 챙긴다더라.
그 당시 난 엄마가 이런 얘기들을 하실 때마다 딸이라고 다 그런 것도 아니라고, 뭘 그걸 그렇게까지 부러워하시냐며 가볍게 넘기곤 했다. 엄마가 어떤 심정으로 그런 얘길 하셨는지 짐작도 못한 채.
그리고 참 우습게도 난 이 정도면 엄마에게 어느 정도 잘하고 있는 아들이란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적어도 친구들을 포함 내 주위에선 부모님과, 그것도 엄마와 살갑게 지내는 아들들을 본 적이 없었기에 집에 있을 땐 엄마와 이런저런 얘길 많이 나누고 마트도 곧 잘 따라나서는 내가 괜찮은 아들이라 생각됐던 거다. 다시 생각해 봐도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정말 모르겠다. 겨우 그 정도를 가지고.
무관심
엄마의 외로움이 깊어지기까지 나를 포함, 나머지 가족들은 무얼 하고 있었던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유는 이것 한 가지인 듯했다. 바로 무관심. 가족들의 무관심이 엄마의 외로움을 깊게 만든 것 같았다.
표현에 인색하고 잔정이 없으신 아빠. 한 마디로 다정다감한 성격은 아니시다. 아들들에게도 엄하신 적이 많았던 아빠. 하지만 이건 개인의 성향이기에 좋다 나쁘다 얘기할 부분은 아니다.
어느 날인가부터 아빠는 퇴근하신 후 내 방에 있는 PC에서 시간을 보내시기 시작했다. 대체 무얼 하시는 건가 싶어 봤더니 온라인 동호회 활동을 하고 계셨는데 매일같이 저녁식사 후 PC를 붙잡고 보내는 아빠의 시간은 점점 길어져만 갔다. 그리고 휴일엔 자주 오프라인 모임을 나가시곤 했는데 아직 나와 작은형이 집에 있던 시절엔 엄마에게도 이 부분이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겠지만 나까지 결혼을 하고 본가에 부모님 두 분만 남은 상황에서 자주 집을 비우시는 아빠의 이런 모습은 엄마에겐 결코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으리라.
엄마가 어디 아프다고 하셔도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으신다는 아빠. 어쩌면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셨던 아빠는 지금도 당신은 예전과 같을 뿐인데 이제 와서 이에 대해 불만을 표하시는 엄마가 이상하다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다.
군 전역 후 갑자기 사법고시를 준비한다며 따로 살기 시작한 큰형. 시험기간만 집에 와서 지낼 뿐 사실상 큰형은 이때부터 집안 대소사를 크게 신경 쓰지 못했다. 부모님도 큰형이 공부하는데 방해될까 봐, 장남이 큰 일 하려는데 괜히 신경 쓰게 하면 안 된다 하시며 평소 별 연락을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형은 자연스럽게 얼굴 보기 힘든 가족이 되어버렸다.
조금은 오랜 시간이 걸려 꿈을 이루긴 했지만 그 과정이 내가 보기에도 너무나 힘들었기에 당사자인 형이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이나 있었을까. 그래도 지금은 큰형이 엄마에게 가장 잘한다. 엄마 말로는 1주일에 한두 번씩은 꼬박꼬박 연락하고 시간을 내 본가에도 종종 들른다 하는데 역시나 장남이구나 싶다. 하지만 형이 목표를 이루어가는 그 긴 시간 동안 엄마에게 무관심할 수밖에 없었던 건 사실이다.
대학 졸업 전 지방에 있는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된 작은형. 어쩔 수 없이 회사 기숙사로 들어가야 했던 형은 그 이후 매주 금요일 밤에 올라왔다가 일요일 저녁에 내려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집에 오면 피곤해서 자거나 친구를 만나느라 가족과는 별 얘기도 많이 못하고 내려가곤 했던 작은형. 게다가 공대 출신 연구원이라 평일엔 회사에서 야근이 잦았고 주말엔 서울에 있는 집까지 왔다 갔다 하느라 바쁜 형에게 아마도 엄마는 관심 밖이지 않았을까 싶다. 나라도 그랬을 테지. 당장 내가 바빠서 마음의 여유가 없는데 아무리 가족이라도 돌아볼 틈이 있었을까.
33살이 되어 결혼을 하기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지냈던 나. 그래도 주말엔 집에서 시간을 보내던 작은형이 2007년에 결혼을 하자 그 이후론 집에 부모님과 나만 남게 됐다. 내가 결혼을 하던 2012년까지 그렇게 5년을 보냈는데 그땐 나도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시기였기에 정신이 없기도 했다.
대학 졸업반이던 2006년 하반기부터 수많은 회사에 입사지원서를 냈던 난 다행히도 그 해 12월 취업에 성공했고 2007년 1월부터는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바뀐 삶을 살아가게 됐다. 사회생활이 처음이라 모든 게 어색하고 실수투성이었던 그 시절. 당연히 평소 나의 모든 신경은 회사를 향해 있었고 쉬는 날이면 여자 친구(지금의 아내)와 데이트를 하거나 친구들을 만나느라 엄마를 크게 신경 쓰지 못했다. 집이라는 그 무엇보다 든든한 울타리 안에 함께 있었음에도 엄마의 일상은 내게도 관심 밖이었던 것이다.
엄마를 제외한 우리 가족 모두는 어쩌면 가족이기에, 돌아보면 언제나 당연하다는 듯 그 모습 그대로 곁에 있을 엄마일 거란 생각에 더 무관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