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은퇴식 #3

가족이니까

by J브라운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속절없이 흘러간 엄마의 시간.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마주하게 된 엄마의 외로움.


그건 엄마가 그렇게 말씀하시던 딸이 없어서라기보다 엄마를 향한 마음이 부족했던 우리 가족 모두의 책임이었다. 생각해 보면 남들 다하는 자식들과 목욕탕 한 번 가본 적 없는 엄마. 무심한 네 남자들 틈에서 얼마나 큰 외로움을 느끼셨을까. 그렇게 엄마의 시간은 흘러갔고 등산을 좋아하시던 엄마가 이젠 오래 걷는 것조차 힘겨워하신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내 가슴은 쿵 내려앉는 듯했다.


언제 이렇게나 세월이 흘렀고 우리 엄마도 나일 드신 건지. 어쩌면 부모님과의 시간이 생각만큼 많이 남은 건 아닐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자 갑자기 겁이 났다.

아직은 부모님이 없는 세상을, 두 분이 없는 나를 상상할 수 없으니까.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확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엄마에게 더 잘한다고 하고는 있는데 아직은 당신 성에 차지 않으시는 듯하다. 물론 내가 많이 부족한 게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자주 연락드리고 주말에 한 번씩은 교외로 모시고 나가 드라이브 겸 맛있는 식사도 하곤 하는데 이런 시간보다는 서운한 것들이 마음에 많이 남으시는 것 같았다.


이번 아빠의 은퇴식에 잡힌 처가 여행에 대해서도 그랬다. 우리 가족이 마지막으로 함께 여행을 간 건 내 결혼식을 두 달쯤 앞두고 있던 2012년도 추석 때였다. 작은형이 회사 리조트를 예약해서 정말 오랜만에 가족 모두가 함께 여행을 가게 됐었다. 그 이후 내가 결혼을 하고 나서는 명절 때마다 다 같이 여행 한 번 가자고 얘기만 몇 번 나왔을 뿐 아직까지 못 가고 있었는데 엄마는 내가 처가 식구들과 함께 여행을 간다 하니 그게 그렇게 부러우셨던 모양이다. 여행을 간다는 내 얘기에 대뜸 아들놈들은 다 필요 없다며 역정을 내시던 엄마.


그날 오후에 걸려온 아빠 은퇴식에 참석하라는 엄마의 전화는 부모님과 나, 모두의 마음에 생채기만 남기고 끝이 났다.


가족이니까


그렇게 끊어진 전화로 종일 마음이 불편했던 그날 오후.

전화를 끊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엄마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는데 이전 통화에서 높아졌던 엄마의 목소리 톤은 다행히도 이미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엄마가 말씀하셨다. 아까는 당신이 너무 흥분을 하셨다고. 차분하게 어떻게 된 건지 물어보고 했어야 하는데 처가 여행이라는 소리에 부럽기도 하고 아빠도 옆에서 목소리가 커지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서로 큰소리로 통화하다가 끊게 됐다고. 엄마의 목소리는 언제 역정을 냈었냐는 듯 평소와 다름이 없었는데 그 목소리에 나도 마음이 놓여 엄마에게 자세히 사정을 말씀드렸다.


"이번 여행은 처형네서 먼저 얘기가 나온 거고요 숙소도 처형네서 알아보고 예약한 거예요. 그리고 말씀드렸다시피 저 결혼 후 처음이기도 하지만 처가도 식구들끼리는 진짜 오랜만에 가는 여행이라 바로 은퇴식에 참석하겠다 말씀드리기가 좀 그랬어요. 저도 자영이랑 얘길 좀 해봐야 어떻게 할지 말씀드릴 수 있는 건데 아빠는 뭐 그냥 대뜸 화부터 내시면서 무조건 은퇴식에 오라는 말씀만 하시니까 죄송하게 저도 목소리가 좀 커져버렸네요. 자영이 하고는 아까 통화해서 그날 저만 먼저 올라와서 참석하는 걸로 했어요"


그러자 엄마가 말씀하셨다.

"그래, 너도 사정이 있을 거라 엄마가 미리 얘길 좀 해줬으면 좋았을건디. 지금도 좀 일찍 알려준다고 한 건데 니가 그날 약속이 있을 줄 알았겄냐. 그래도 아빠 은퇴식이니까 자식들이 와야제. 너한테 전화하기 전에 큰형한테 엄마가 전화했었는데 큰형도 처음에 못 올 거 같다고 하니까 아빠가 한 숨을 쉬시더라. 형이 결국 온다고는 했는데 그래 놓고 막내한테 전화했더만 너도 못 온다고 하니까 아빠가 화가 나셨제."

"그랬어요? 몰랐네.. 아니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고 전화받은 저한테 갑자기 그렇게 화를 내시니까. 일단 얘기나 좀 들어보시고 아니다 싶으시면 그때 화 내셔도 되는 거 아니어요?"

"요즘 느그 아빠가 화를 잘 내더라.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고집도 세지고 화를 잘 낸당께. 옆에서 말해도 듣지도 안 해."

"그래요? 어째 그러시는고~아빠한테는 제가 이따가 다시 전화드릴게요. 죄송하다 말씀드리고 은퇴식 간다 말씀드려야죠. 근데 엄마는요? 엄마도 아까 처가 여행 간다니까 겁나 서운해하시더만요."


내 얘기에 엄마는 깔깔 웃으셨다.


"서운한 거보다 부러워서 그랬제."

"죄송해요 엄마. 우리 가족도 다 같이 여행 한번 가야 하는데 아들내미들이 말만 하고선 안 가고 있네요."

"다들 바쁜데 어쩌것냐? 엄마는 괜찮애. 그냥 부러워서 그런거제. 신경 안 써도 돼."

"죄송해요 정말. 그래도 엄마랑 통화하니까 좀 낫네요. 아까 전화 그렇게 끊고 맘이 너무 불편해가지고요."

"그랬냐? 느그 아빠도 그럴 것이다. 이따가 아빠한테 전화해서 죄송하다 하고 은퇴식에 올 거라고 말씀드려. 그래도 가족이니까 아빠도 크게 마음에 담아두고 그러진 않을 것이여."

"네 그럴게요. 이따가 아빠한테 전화드릴게요. 쉬세요."


엄마와의 통화로 그나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있을 때 잘해 드리기

퇴근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작년 말 지병으로 오래 누워계셨던 아버님을 보내드려야 했던 녀석. 역시나 마음 울적하고 답답할 땐 친구가 좋다. 그것도 30년 넘는 시간을 함께 했기에 딱히 내 마음을 감추거나 숨길 필요 없는 동네 친구들. 서로 안부를 전하기가 무섭게 녀석이 내게 물었다.

"뭐야? 무슨 일인데?"

내 목소리만으로 뭔가 있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다.

오늘 있었던 부모님과의 일에 대해 얘길 했다.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아빠의 통화, 부쩍 외로움을 많이 느끼시는 엄마, 그리고 이런 두 분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는 나. 내 얘기에 친구는 말했다.


그냥 있을 때 잘해 드리라고.

나중에 안 계시면 정말 별거 아닌 것까지도 다 생각나서 후회되니까 크게 힘든 일 아니라면 부모님 원하시는 대로 해 드리라고.


있을 때 잘해. 참 많이 듣는 얘기다.

아직은 부모님과 함께 하기에 그리고 너무나 당연한 말이기에 마음속에 잘 담아두지 않고 있었던 얘기. 하지만 얼마 전 아버님을 떠나보낸 친구의 입에서 나온 말이어서일까. 그날따라 이 말이 마음 깊은 곳까지 와닿는 듯했다.


있을 때 잘해드리기.

참 쉬운 말이면서도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엔 쉽지 않은 얘기다. 특히나 부모님껜. 언제까지고 부모님이 곁에 계시는 게 아니란 걸 잘 알면서도 아직은 시간이 많이 남아있을 거라는 착각 때문일까. 부모님과의 시간보다 다른 일들을 먼저 앞세우게 되고 이해해 주시는 부모님의 모습에 또 그게 당연하다는 듯 습관이 되어간다. 부모님은 무엇보다, 당신 자신보다도 나를 먼저 생각하셨는데 그 따뜻한 사랑과 희생을 먹고 자란 난 왜 이것밖에 안 되는 것일까.


내 모자람에 화가 나고 너무도 죄송스러울 뿐이다.


아빠 엄마, 사랑해요!!


아빠의 장로 은퇴식을 계기로 있었던 부모님과의 일들을 기록한 두 편의 글을 다시 보니 감정선이 너무나 다운되고 무겁게 느껴졌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큰 문제나 불화가 있는 가족인가 싶을 정도로. 하지만 우리 가족도 여느 가정과 마찬가지로 매우 평범하고 화목한 집이다. 그리고 아무리 화목한 가정이라도 크고 작은 문제들은 한 두 개씩 있기 마련이고.

물론 내가 부모님께 목소릴 높였던 건 정말 잘못된 일이다. 사회생활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겠지. 그래도 대부분 부모님이 져 주시는 경우가 많다. 엄마도 먼저 전화를 주셨고 아빠도 아마 내색은 안 하셔도 맘이 많이 불편하셨겠지.


며칠 후 본가에 들러 아빠와 얘길 나눴다.

살짝 어색한 분위기였지만 솔직하게 내 마음을 전했다. 아빠의 입장을 이해하지만 갑자기 화를 내셔서 당황을 했었고 처가에 양해를 구해야 하는 나름 곤란했던 내 입장, 그리고 아내와 함께 참석할 거라는 얘기까지. 묵묵히 내 얘길 듣고 계시던 아빠는 알았다고, 당신도 서운한 마음에 그렇게 화를 낸 거라고 말씀하셨다.

나 역시도 죄송하다고, 처음부터 못 간다고 할 건 아니었는데 아빠가 그렇게 서운해하실 줄 몰랐고 나중엔 목소리까지 높여서 너무나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내 얘기에 아빠는 살짝 웃으시며 알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짧은 한마디에 그간 내 마음속에 남아있었던 감정들(죄송스러움, 걱정 등)이 다 사라지는 듯했다.


조금 더 일찍 찾아뵐걸 그랬나. 부자(父子)의 세상 어색한 화해는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다.


엄마는 그때 일을 다 잊으신 듯 막내아들 온다고 한우 비싼 걸로 사다 놨다며 맛있게 먹고 가라 하셨다. 내가 좋아하는 엄마의 된장국에 고길 구워 먹으며 부모님과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눴다. 며칠간 마음속에서 날 무겁게 누르던 불편함이 사라져 너무나 편안했고 그렇게 있으려니 언제나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부모님이 너무도 고맙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역시나 가족이 최고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짐했다. 앞으로 있을 부모님과의 시간은 서로 얼굴 붉히는 일 없이 언제나 웃고 행복한 시간으로만 채워가겠다고.


얼마 전, 아빠와 할아버지 제사를 위해 가족묘에 다녀왔던 날이 생각났다. 아침 일찍 출발해 저녁 7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던 그날. 아빠와 넷째 큰아버지를 지하철역에 내려드리고 조심히 들어가시라 인사를 드릴 때 아빠가 내 팔을 쓰다듬으시며 말씀하셨다.


"우리 아들, 오늘 너무 고생 많았다. 고맙다."


표현에 정말 인색하신 아빠가 좁은 차 안에서 긴 시간 고생하셨음에도 웃는 얼굴로 내게 하신 말씀이다.


부모님, 언제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작가의 이전글아빠의 은퇴식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