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브라운 Dec 09. 2022

포기할 용기, 포기하지 않을 용기

포기해도 괜찮아




포기할 줄 아는 용기와 포기하지 않을 용기.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때 과감히 포기할 줄 아는 사람과 노력이 부족했다며 끝까지 가보겠다는 사람. 누가 더 대단하고 박수받을 만한 사람인 걸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참 어려운 문제다.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흔히 이런 얘길 한다.

포기는 배추를 셀 때나 쓰는 말이라고. 그만큼 사람들은 끈기와 끊임없는 노력을 강조한다. 나도 어렸을 땐 이게 맞는 거라 생각했다. 어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안 되겠다며 바로 손을 놓아버리는 사람들을 볼 때면 왜 이렇게 빨리 포기를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적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은 해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지금은 어쩌면 빠른 포기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곤 한다.


역시 세상에 정답은 없고 내 생각도 언제든 바뀌기 마련이다.


내가 말이야


직장생활을 잘하고 있던 난 2018년에 갑자기 자영업을 시작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불안한 월급쟁이의 삶에 더 이상 비전은 없다 생각했고 더 늦기 전에 내 일을 시작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있는 돈 없는 돈 탈탈 털어 마련한 작은 수제맥주집. 2018년 1월, 이걸 시작으로 2호점 3호 점도 낼 거라는 큰 꿈에 부푼 체 내 생애 첫 장사를 시작했다.


첫 해는 장사가 잘 됐다. 그 상권에 수제맥주집이 없기도 했고 인테리어도 소위 갬성 넘치는 곳이라 반응이 괜찮았다. 하지만 낮과 밤이 바뀐 생활에 내 몸은 점점 지쳐갔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자 주위에 다른 수제맥주 매장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때문인지 2년 차에 접어들면서 매출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회사생활을 하던 아내나와 생활패턴이 달라져 함께 보내는 시간이 거의 없음에 자 불만을 나타내곤 했는데 그때부터 내 고민이 시작됐다. 과연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맞는 걸까 아니면 아내 말대로 지금이라도 접고 다시 회사 들어가는 게 맞는 걸까. 포기하느냐 포기하지 않을 것이냐 정말 그것이 문제였다.


포기와 계속, 그 사이


돈을 잔뜩 끌어온 탓에 아직 투자금도 회수하지 못했고 게다가 이제 월급쟁이는 끝이라며 큰 맘 먹고 시작한 장사를 이렇게 관두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게 맞는 것일까. 생각보다 힘든 밤 장사에 쳐가는 몸과 마음, 계속 떨어지는 매출에 더해 점점 줄어드는 아내와의 시간. 여기서 관두는 게 맞는 건지 조금 더 해봐야 하는지 정말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걸 하겠다고 쏟아부은 돈을 생각하면 안타까움에 그저 한숨만 나오곤 했다.


그렇게 오랜 고민 끝에 결국 난 다시 월급쟁이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투자대비 수익률을 생각한다면 내 생애 첫 장사는 처참한 실패였다. 하지만 매일 새벽까지 일해야 하는 생활에 몸 너무나 지쳐버렸고 아내와 함께 보내는 시간 거 없어서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2019년 10월, 내 매장에 관심을 보이던 분께 매장을 양도했고 운이 좋게도 11월부터는 다시 회사로 출근을 할 수 있었다. 1년 9개월의 내 자영업 생활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막상 가게를 넘기려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가게를 하는 동안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자부한다. 한 달에 하루 쉬면서 매일 오후부터 다음날 새벽 3~4시까지 일했으니까. 식재료는 절대 유통기한을 넘긴 적이 없었고(유통기한 전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폐기했다.) 특히나 마감 청소는 하루도 빼먹은 날이 없었다. 매일같이 튀김기와 생맥주 케그를 세척하고 주방과 홀 바닥 청소까지 했다. 마감 청소만 해도 1시간은 족히 걸렸는데 가게를 넘기 전 날까지도 한 번도 빼먹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가게를 넘기는 날이 되자 뭔가 아쉬움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정말 최선을 다 했었나. 조금 더 열심히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벤트도 이것저것 더 해 볼걸 그랬나. 단골손님들도 더 챙겨줬어야 했는데. 거기에 아직 회수하지 못한 투자금 아쉬움을 더 크게 만들었지만 어렵게 선택한 이상 뒤는 돌아보지 말자 다짐했다. 아내 말대로 '비싼 경험 했다' 생각하자고, 아쉬움은 남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니 좋은 추억으로 남기자 생각했다.

앞날은 아무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 다음 해 1월.

한창 회사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는 와중에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가 발병했다. 급속도로 퍼진 이 전염병으로 인해 자영업자들은 매장 내 영업금지, 영업시간제한 등 큰 피해를 입게 됐는데 불과 3개월 전에 가게를 넘긴 내게는 그야말 천운이었다. 매장 임대차 계약을 3년으로 해서 가게를 넘길 당시에도 계약기간이 1년 2개월이나 더 남은 상태였는데 계속 장사를 하고 있었다면 자금 회수는 커녕 빚만 더 쌓여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으리라.


사람일은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고 그때의 아쉬움 가득했던 그 선택은 나에게 신의 한 수가 되어 돌아왔다. 그때 포기하길 정말 잘했다 싶었다.


친구들이나 지인들도 같은 얘길 많이 했다. 그때 넘기길 잘했다고. 계속하고 있었으면 하루하루가 얼마나 힘들었겠느냐고. 물론 가게를 양수한 분에게는 죄송하게 됐지만(코로나가 발병할지 누가 알았겠는가) 나에겐 정말 최고의 선택이 된 셈인데 포기도 때론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음을 실감 값비싼 경험이었다.


포기해도 괜찮아


포기하 마라, 조금만 더 노력하면 좋은 날이 온다.

이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난 힘들 땐 포기하는 것도 괜찮다 말해주고 싶다. 포기하지 말라는 건 누군가에겐 희망고문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너무 쉽게 포기하는 건 반대다. 본인이 그 길을 선택하기까지 했을 수많은 고민의 시간들이 무색해질 정도로 몇 번 찔러보고 포기하는 건 말 그대로 시작하지 않은 것만 못하니까.


대개 사람들은 본인이 투자한 시간, 돈, 그리고 노력이 아까워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투자한 돈을 회수하기 위해서,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을 보상받기 위해서. 노력한다고 모두가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건 아니니까. 시험에 붙는 사람이 있다면 떨어지는 사람도 반드시 있는 거니까. 그리고 난 절대 떨어지는 쪽이 아니라고 확신할 순 없으니까.


한 가지에만 집중하고 있을 땐 보이지 않다가 포기하고 나면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꽤나 많다. 세상엔 참 다양한 길이 있다. 그러니 충분히 노력했음에도 안된다면 쿨하게 포기하자.  길은 내 길이 아닌가 보다 하고.


포기한다고 내가 틀렸거나 잘못한 건 절대 아니다. 그렇기에 그땐 툭툭 털고 일어나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 된다. 포기와 실패라도 분명 지난 경험은 나를 더 단단하게 지탱해 줄 힘이 될 테니까.


우리에 가끔은 포기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작가의 이전글 아빠의 은퇴식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