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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브라운 Dec 07. 2022

아빠의 은퇴식 #4

마지막 이야기




지난주 일요일.

부모님이 다니시는 교회에서 아빠의 장로 은퇴식이 있었다. 전날 처가 식구들과 대천으로 여행을 떠났던 나와 아내는 일요일 아침식사 후 10시쯤 숙소를 출발했다. 장인, 장모님과 한 차로 움직였기에 두 분을 모시고 출발해야 했는데 남은 처형네라도 조금 더 놀다 오기를 바랐건만 처형네도 차 막히기 전에 가는 게 좋겠다며 우리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결혼 후 처음이었던 처가 식구들과의 여행이 나 때문에 서둘러 마무리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고 다음에 날씨 좋을 때 더 예쁘고 좋은 곳으로 여행을 잡아봐야겠다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오후 1시 30분쯤 집에 도착해 옷만 갈아입고 그대로 나왔다. 차를 가져가려다 어제오늘 계속 운전을 했더니 살짝 피곤함이 느껴져 지하철을 타기로 했는데 지금 가도 살짝 늦을 것 같아 걱정이었다.


아빠의 은퇴식


교회에 도착해 서둘러 3층 본당으로 올라갔다. 5분 정도 늦어서 이미 오후 예배가 시작된 이후였는데 아내와 예배당에 도착해 보니 저 앞에 오늘 은퇴식의 주인공인 아빠와 한복을 곱게 차려입으신 엄마가 앉아 계신 게 눈에 들어왔다. 엄마가 한복을 입으신 모습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형들을 찾았더니 저기 오른편 앞쪽 자리에 형수님, 조카들과 함께 있는 게 보였다. 우리도 황급히 허리를 낮추고 들어가 그 자리에 합석했다. 많이 늦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교회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아빠의 은퇴식은 오후 예배 끝자락에 있는 작은 행사일 거라 생각했는데 와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오후 예배 자체를 은퇴식으로 진행하는, 생각보다 훨씬 큰 행사였고 오늘 은퇴하시는 분은 장로님 아빠 한 분, 권사님 한 분 이렇게 총 두 분이었다. 이 두 분을 위해 전 교인이 오후 예배에 모두 모인 것이었다.


'이래서 아빠가 그렇게 오라고 하신 거구나.'


예배는 대략 한 시간 동안 이어졌다. 은퇴하시는 두 분을 위한 중창단의 찬양, 목사님의 설교, 선배 은퇴장로님의 축사에 이은 은퇴자 대표 아빠의 소감까지. 이 은퇴식은 오롯이 그간 교회에 헌신하신 두 분을 위한 시간이었고 예배에는 많은 교인들이 참석해 두 분의 은퇴식을 빛내주고 있었다. 보고 있으려니 30년간 이 교회를 다니셨고 그중 장로로서 10년을 헌신하신 아빠의 은퇴식에 참석하지 못하겠다 말씀드렸던 게 생각나 아들로서 참 죄송한 마음이 커졌다. 참석하지 않았다면 오늘은 아빠에겐 참으로 서운한 날로 남았으리라. 아빠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게 너무 죄송스러웠다.


은퇴식의 모든 순서가 끝나고 사진 촬영이 이어졌다.

계속 뒷모습만 보이고 계시던 엄마가 촬영을 위해 드디어 앞으로 돌아서셨는데 오늘따라 머리와 메이크업에 한 껏 멋을 내신 게 분명해 보였다. 근 10년간 봤던 엄마의 모습 중에 오늘이 단연 최고였다. 담임 목사님과의 촬영, 예배에 참석한 교인들과의 촬영에 이어 마지막으로 가족들과의 촬영이 있었다.


먼저 은퇴하시는 권사님의 가족부터 촬영을 했는데 권사님 부부와 그 집 딸 식구들이 와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권사님네는 아들도 하나 있는데 오늘은 사정상 참석하지 못한 것 같았다. 확실히 식구가 적으니 뭔가 허전해 보이긴 했다. 우리 형제들도 다 참석하지 못했다면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아들들이 참석하지 못했다면 부모님의 서운함이 사진 속에 그대로 남았. 오늘 이 자리에 형들과 함께 있음이, 손주들까지 모두 모여 사진을 찍는 이 시간이 부모님껜 큰 기쁨이 되었으리라.


가족사진을 찍는 건 10년 전에 있었던 내 결혼식 이후로 처음이었다. 어찌하다 보니 가운데에 서게 된 난 실로 어색한 미소를 있었는데 앞에서 보다 못한 목사님께서 다들 화가 난 거냐고, 좀 밝게 웃어보라 말씀하셨다. 썩소를 띄우고 있었던 건 나만이 아니었나 보다. 목사님의 그 한 마디에 긴장이 좀 풀렸는지 제법 자연스러운 웃음을 지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사진 촬영까지 은퇴식의 모든 순서가 끝나자 엄마는 저녁을 사신다며 우리 가족 모두를 고깃집으로 데리고 가셨다. 온 가족이 이렇게 밖에서 식사를 하는 게 얼마만일까.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가족모임은 부모님 댁에서만 했었는데 그것도 코로나가 심할 땐 다들 조심하느라 형제들이 서로 다른 날에 오기도 했었다. 아빠의 은퇴식 덕분에 오랜만에 가족들이 밖에서 다 함께 밥을 먹게 됐다.


식사 중에 엄마에게 오늘 미용실이라도 다녀오신 거냐 여쭤봤더니 아침부터 미용실에 가서 화장까지 받고 오신 거라고, 예쁘냐고 물어보셨다.

"근 몇 년간 본 엄마 모습 중에 오늘이 최고여요. 그대로 집에 가기 아까워서 어쩐대요~."

라는 내 말에 뭐가 그리 좋으신지 싱글벙글이신 엄마.


그리고 아빠에게도 말씀드렸다.

"이렇게 큰 행사인 줄 알았면 처음부터 못 온다는 말씀은 안 드렸을 건데요. 죄송해요."

"이 은퇴식이 교회에선 큰 행사여."

"그러니까요. 오후 예배 자체를 은퇴식으로 하는 줄 몰랐요. 그냥 예배 마지막에 작게 하는 줄 알았거든요. 안 왔으면 엄청 서운하셨겠네요."

"왔으니 됐다."

"네. 리고 교회 분들 다 같이 축하해 주셔서 더 좋던것 같아요. 그간 고생 많으셨어요. 일요일마다 장로회 일 때문에 아침에 나가셔서 저녁 다돼야 오셨는데 이제 조금 편해지시겠네요. 진짜 고생하셨어요."

"그, 고맙다."

아빠가 웃으며 말씀하셨다.


우리 장로님


아빠는 우리가 서울로 이사를 오고나서부터 32년간 이 교회를 다니셨다. 처음엔 믿음이 그리 깊으시다 생각하지 못했는데 언젠가 집사님이 되시더니 11년 전쯤엔 장로님이 되신 아빠. 내가 어렸을 때 본 교회 장로님들은 신앙이 깊으신, 뭔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졌었는데 아빠가 그런 장로님이 되셨다는 게 정말 신기했다. 언제 그렇게 아빠의 믿음이 깊어지신 걸까. 남들 다 아는걸 가족인 나는 몰랐다.


그리고 난 장로님들에겐 교회에서 뭔가 금전적인 지원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교회 운영진으로서 매주 일요일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회에 묶여있고 1년 내내 교회의 대소사를 챙겨야 하는 장로님들이기에 단순히 봉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거다. 하지만 그건 내 큰 착각이었고 아빠에게 장로라는 직위는 단순한 봉사가 아닌 교회에 대한 헌신이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다. 무슨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열정과 책임감을 가지고 항상 교회일에 앞장서셨던 아빠. 헌신 말고 교회 장로로서 아빠의 모습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이제 교회 일선에서 한 발 물러나신 아빠. 그간 장로라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고생하셨던 아빠가 이제 조금 편하게 교회 생활을 하시길 바란다. 그리고 그간 고생하신 아에게 신앙이 깊지 않은 아들이지만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길 진심으로 기도해 본다.


우리 장로님,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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