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엔 내가 중학교 때부터 쓰기 시작한 다이어리와 낙서장이 종이박스 하나에 담겨 그대로 남아있다. 결혼을 하게 되면서 신혼집으로 가져오고 싶었으나 혹 아내가 발견하게 될까 신경이 쓰여 그대로 두고 온 나의 지난 얘기들. 혼자 본가에 갈 일이 생기면 한 번씩 그 박스를 열어보곤 하는데 어디서부터가 시작이었을까 궁금해 찾아봤더니 내 글쓰기는 첫사랑과 함께 시작되고 있었다.
맞다, 중학교 1학년 때 교회에서 시작된 나의 첫사랑 덕분이었다.
보내지 못한 편지
난 내향형이다. MBTI도 ISFJ인데 생각해 보면 내가 어렸을 때 어른들은 내성적인 성격을 뭔가 좋지는 않은 것으로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땐 MBTI라는 개념이 생기기도 훨씬 전이었고 외향적인 게 마냥 좋다고만 인식하던 때였으니까. 개인마다 가진 성향의 차이라는 걸 인정해주지 않았던 시절.
하지만 타고나길 내향적인걸 어떻게 하겠는가?
그리고 이건 14살 더벅머리 소년이었던 내게 나타난 첫사랑을 대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다니게 된 교회. 어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초등학생들과는 달리 중학생부터는 지하 예배실에서 따로 있었던 중고등부 예배에 참석해야 했는데 거기서 첫사랑을 만나게 됐다. 성가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에 말 그대로 첫눈에 반해버렸던한 학년 위 누나(나중에 알았지만 빠른 년생이라 나이는 동갑이었다).
중학교 3년 내내 나를 설레게 만들었던 그 누나를 난 한 번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인사를 할 때도, 얘기를 나눌 때도 땅을 보거나 혹 눈이 마주친다 싶으면 급히 시선을 돌리곤 했다. 교회 성가대에 앉아있는 누나를 멍하게 바라보다 갑자기 눈이 마주친 적도 있었는데 그땐 얼마나 당황을 했었는지 모른다. 아마 귀까지 빨개져 있었겠지.
그런 나였기에 고백을 한다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고 그 답답한 마음을 낙서처럼 쓰기 시작했는데 그게 바로 내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누나에게 고백을 하게 된다면, 그리고 혹 그 고백을 누나가 받아준다면 그간 전하지 못한 마음을 보여줘야겠다 싶은 마음에 혼자 편지도 쓰기 시작했다. 결국 보내지 못한 편지들이 되었지만 언젠가 누나가 보게 될 거란 생각에 얼마나 정성을 들여 썼는지 모른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소년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던, 지금은 손발이 오그라들고 바로 이불 킥이 나올 얘기들이 수많은 편지지에 빼곡히도 적혀있다.
나의 이야기
그리고 그때부터 내 글쓰기가 시작됐다.
중학교 시절 함께 전람회를 좋아했던 반 짝꿍과 노래 가사를 써 보자며 말도 안 되는 작사에 도전했던 기억.
고등학교 시절 괜한 감상에 젖어 밤늦게까지 노랠 들으며 다이어리에 내 마음을 써 내려가던 시간.
마냥 행복했던 스무 살과 앞날이 까마득해 보이던 군 복무 시절.
전역 후 미래에 대한 걱정과 졸업반이 되어 취업 스트레스로 힘들었던 시간들.
직장인이 되고서도 끝나지 않았던 불확실한 앞날에 대한 두려움.
첫사랑으로 시작된 내 글쓰기는 직장인이 되어서까지 계속 이어졌고 그 안에는 나의 지난 시간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브런치 작가로
그렇게 내 생각과 마음을 끄적거리는 걸 좋아하게 된 내가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게 됐다.이유는 간단했다. 글 쓰는 게 재미있으니까. 그리고 창작의 능력은 없지만 이 평범한 내 이야기에 혹 누군가는 공감을 해주고 다른 누군가는 작은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도전을 하게 됐다.어떤 이에겐 쉬웠을지 모를 이 도전이 나에게는 몇 번의 고배를 마시게 한 난관이었는데 그래도 어찌어찌하다 보니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게 됐다. 어쩌면 너무 많이 도전해서 집념과 끈기를 인정받은 걸지도 모르겠다.
브런치 작가로서인지도도 없고 내 글이 특별히 뛰어나지 않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이 좋다. 물론 가끔 조용한 사무실의 정적을 깨는 이 키보드 소리가 살짝 신경 쓰이긴 하지만문득 떠오른 생각들을 바로 써 내려가면서(이럴 때만 조급해진다.)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시키고 나면 뭔가 뿌듯하고 쾌감(?) 같은 게 느껴진다. 물론 급하게 쓴 글이라 나중에 조금씩 수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금 느끼는 이 감정과 생각들이 잊혀지기 전에 하나의 메모처럼 남겨두는 게 난 여전히 너무나 좋다.세상에 둘도 없는 나만의 이야기라서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