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은 웬일인지 사무실에 있어도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딱히 별다른 일이 없음에도 괜히 마음만 붕 떠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요즘. 기분 탓일까? 잠깐 엉덩일 들어 사무실을 둘러봤는데 다들 일은 안 하고 나처럼 딴짓들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연말은 정말 어쩔 수가 없나 보다.
2022년올 해는 나에게 어떤 기억을 남기고 저물어 가는 중일까.
여전히 진행 중
올 해도 역시나 코로나와 함께했다. 2020년부터 3년째 함께 하고 있는 이 지긋지긋한 바이러스. 그나마 실외 마스크착용 의무가 해제돼서 올여름은 좀 버틸만했다. 마스크를 쓰고 처음 여름을 맞이했던 2020년엔 무더위에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면 숨이 턱턱 막히는 듯했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올여름은 정말 천국이었다.
코로나에 걸리지 않으려 손소독을 밥먹듯이 하고 실외에서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던 나와 아내도 4월 말에 감염이 돼서 1주일간 격리를 했었다. 이럴 거면 왜 그렇게 유난을 떨었나 싶기도 했는데 3차 접종까지 마쳤음에도 감염이 되자 한 편으로는 마음이 조금 편해지기도 했다. 감염이 안될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항상 언제쯤 걸리려나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심정이었으니까.
난 고열 때문에 이틀정도 고생을 했고 그 후로는 아내와 나 둘 다 목이 많이 아팠었는데 후유증이 남진 않을까 싶어 걱정이 많았었다. 다행히 잘 회복은 한 거 같은데 처음 생각과 달리 이젠 이 바이러스가 없어질 거란 기대는 하지 않게 됐다. 그저 빨리 감기 같은 풍토병으로 자리 잡게 되길 바랄 뿐이다.
주말엔 Go Go!!
40대가 되고 나니 새해가 다가오면 무엇보다 한 살을 더 먹게 된다는 불편함이 먼저 느껴지곤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나일 먹는다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지난달 했었던 건강검진 위내시경 검사에서 십이지장궤양이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심각한 상태는 아니지만 이것도 나일 먹으면서 생기는 것 같아 조금 씁쓸했다. 앞으로 내 신체 기능들은 조금씩 조금씩 더 떨어지겠지. 이렇게 생각해니 급 우울해진다.
이런 나이 듦의 불편함으로 시작했던 2022년. 핸드폰 갤러리를 보니 올 한 해도 아내와 난 여기저기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연애 때부터 돌아다니길 좋아했던 아내는 아직도 목요일 오후 쯤되면 내게 묻는다.
"이번 주말엔 어디 갈까?"
물론 나도 나가면 좋다. 맛있는 거 먹고 예쁘고 좋은 것들도 보고. 단지 나만 운전을 하기에 조금 피곤할 뿐이다. 올 해도 우리는 서울 구석구석과 경기권은 물론이고 강원도, 제주도(두 번이나 갔다), 충청도, 부산까지 다녀왔다.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주말에 장거리 운전을 했던 것 같은데 아직까진 그래도 체력이 받쳐줘서 다행이다. 50대만 돼도 이렇게는 못 움직일 것 같으니 그전까지 지금처럼 부지런히 돌아다녀야겠다. 나중엔 가고 싶어도 못 갈 테니까. 아내 말대로 갈 수 있을 때 많이 가야겠다.
자격증 도전
올 해는 자격증에 도전을 해 보고 싶었다. 나이 40 중반을 향해 감에도 여전히 불안한 내 앞날에 대한 대비가 필요했고 무얼 해볼까 고민하다 공인중개사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친한 친구 중에도 이 자격증을 딴 녀석이 있는데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엔 어떻게든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내가 직접 사무실을 차려도 되는 거고.
연초부터 인강으로 공부를 시작했는데 회사를 다니면서 공부를 한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퇴근 후 식사와 운동까지 마치면 저녁 9시가 넘었고 그 이후에 공부를 하는 게 쉽지가 않아 올 해는 1차(두 과목)만 합격하는 것으로 목표를 잡았다. 시험은 10월 말에 있었는데 결국 떨어졌다. 핑계지만 너무도 오랜만에 공부를 했더니 집중력이 떨어졌고 무엇보다 강의만 보면 미친 듯이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지 못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게 눈꺼풀이라고 졸음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을 또 한 번 뼈저리게 실감했다.
하지만 이왕 시작한 거 내년에도 다시 도전해보려 한다. 그래도 한 번씩 공부한 과목들이니 조금은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내년엔 정말 1차 합격이라는 목표를 달성해 봐야겠다.
결혼 10주년
2012년 11월 아내와 난 10년 간의 연애를 마치고 부부가 됐다. 그리고 10년이 흘러 2022년. 결혼 10주년을 맞은 우리는 제주도로 기념여행을 갔다. 해외로 갈까 하다가 아직은 코로나가 신경이 쓰여 제주도로 향했다.(남들은 잘만 가는데 우린 둘 다 겁이 많다.)
아내 나이가 41인데 나와 함께 보낸 시간이 무려 20년이다. 인생의 절반을 나와 보낸 셈인데 이걸 복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물론 우리 사이는 언제나 맑음이다.)
이번 여행에선 삼각대까지 준비해서 사진을 많이 남기기로 했다. 따로 전문가에게 맡길까 하다가 그냥 우리가 알아서 찍어보자 하는 생각으로 갔는데 사진의 양에 비해 잘 나온 사진이 많지 않았다. 문제가 뭘까 하고 봤더니 원인은 바로 내 얼굴이었다. 표정과 웃음이 어색해서 봐줄 수가 없었다. 이런 나에 비해 아내는 가히 프로급이었다. 표정과 웃음이 세상 자연스러웠다.
생각해 보니 결혼식 전 스튜디오 촬영 때도 그랬다. 세상 잘 웃어대던 아내와 달리 긴장 때문에 종일 썩소만 날리던 난 촬영 내내 웃음이 잘 지어지지 않아 작가님께서 엄청 고생을 하셨더랬다. 말 그대로 웃는 법을 잊어버렸던 그때. 지금 찍힌 사진 속 내 얼굴이 딱 그때 그 얼굴이다. 인화할 사진이 없다는 아내의 말에 크게 반박을 하지 못하는 내가 원망스럽다. 이 자릴 빌려 다시 한번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복학생 아저씨와 재학생으로 만난 우리가 이렇게 20년을 함께 하게 될 거라고 그땐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평소에도 마음을 자주 표현하는 편이지만 언제나 내 곁에서 큰 힘이 되어주는 아내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과 많이 사랑한다는 말을 전한다.
월드컵
올 해의 마지막은 역시나 월드컵이다.
16강 진출을 위해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포르투갈 전을 반드시 이겨야 했던 우리나라는 기적과 같은 2:1 승리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이후 12년 만에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비록 16강전에서 최강 브라질에 패해 대회를 마감해야 했지만 선수들이 보여준 투지와 열정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번 월드컵 결승전 또한 역대급 경기였다. 세계 최고의 선수지만 월드컵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던 메시의 '라스트 댄스'는 결국 그의 염원대로 우승이라는 꿈을 이루며 마무리됐다. 조별 예선에서 복병 사우디아라비아에 일격을 당했지만 이후 경기력을 점점 끌어올리며 결승에 진출한 메시의 아르헨티나. 두 개 대회 연속 우승을 노리며 결승까지 달려온 프랑스. 두 팀의 대결은 역대급이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은 최고의 경기였다. 3골씩을 주고받으며 결국 승부차기까지 이어진 경기는 말 그대로 결승전 다웠다. 월드컵은 역시 월드컵이었고 새벽까지 안 자고 본 보람이 있었다. 4년 뒤 북중미(멕시코, 미국, 캐나다)에서 개최될 월드컵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안녕 2022
이렇게 2022년이 지났다. 시간은 언제나 지나고 나면 금방인데 더 아쉬운 건 언젠가부터 1년이라는 시간이 점점 더 짧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뭔가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고 들었는데 어찌 됐건 아쉽다. 정말 뭐 한 것도 없이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버린 것 같아서. 아내와 신년 계획을 세우며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졌던 그 시간들이 무색할 만큼 1년이 후다닥 지났다. 목표로 했던 일들 중 실제 해낸 것도 한 손에 꼽을 정도고.
그럼에도 이 순간, 어김없이 또 새해 계획을 하나 둘 세워본다. 언제나 해야 할 것들은 많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내년엔 이 계획들 중 몇 개나 해낼 수 있을까? 그래도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싶어서 약간의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2023년을 그려본다.
무엇보다 아내와 나, 사랑하는 가족들 모두 건강하길 바란다. 정말 건강만큼 중요한 건 없다. 그리고 계획한 것들을 많이 이루진 못하더라도 매일매일이 기억에 남을 만큼 행복한 날들이었으면 좋겠다. 앞날을 대비하는 것도 좋지만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지금이니까. 그렇게 하루하루가 의미 있는 시간들로 채워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