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부산 서면의 한 오피스텔에서 무차별 폭행 사건이 일어났다. 피해자는 20대 여성이며 가해자는 30대 남성인데 두 사람은 일면식이 전혀 없는 사이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건 속으로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가해자인 30대 남성은 전직 경호업체 직원으로 당일 새벽 5시쯤 부산 서면에서 귀가하던 피해자와 길에서 마주쳤고 피해자가 자신을 째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는 이유로 뒤쫓아갔다. 그리고 피해자가 오피스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이 뒤에서 발차기로 머리를 강하게 가격했다. 이 모습은 당시 현장에 설치되어 있던 CCTV에 고스란히 찍혔는데 발차기를 맞고 쓰러진 피해자를 무차별하게 폭행하는 모습도 그대로 찍혔다.
피해자가 의식을 잃은 듯 하자 그대로 피해자를 둘러업고 CCTV사각지대로 사라져 버린 가해자. 그는 8분 후 다시 CCTV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주민들이 나타나자 서둘러 오피스텔을 빠져나갔다. 주민들의 신고로 병원에 이송된 피해자는 이 끔찍한 범죄로 인해 외상성 두개내 출혈과 뇌손상, 다리 마비 영구장애를 갖게 됐으며 단기 기억상실로 그날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렸다. 성범죄 정황까지 있는 상황이기에 피해자의 기억이 사라진 건 더 안타깝다.
가해자는 이후 자신의 여자친구 집에 숨어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강도상해죄로 6년을 복역한 뒤 공동주거침입으로 또다시 2년을 복역하고 출소한 지 석 달째인 누범 기간에 다시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
1심 재판
검찰은 가해자를 살인미수로 기소했고 징역 20년을 구형했으나 1심 재판부는 범인이 폭행을 인정했다는 이유로 이보다 8년이 감형된 징역 12년형을 선고했다.
1심 판결 후 검찰과 가해자 양측 모두 항소했다. 검찰은 형이 가볍다는 이유로, 가해자는 살해 고의성이 없었고 술에 취해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이유다.
말이야 방귀야
처음 이 사건을 접하게 된 건 몇 달 전 TV프로그램에서였다. 방송에선 범죄 현장에 설치되어 있던 CCTV 영상을 보여줬는데 그 폭력성 때문에 편집된 영상만으로도 얼마나 끔찍한 범죄가 발생한 것인지 너무나 잘 알 수 있었다. TV를 보는 내내 속에서 분노가 터져 나오던 이 사건. 하지만 더 개탄스러운 일은 1심 판결 내용이다. 재판부는 범인이 폭행을 인정했다는 이유로 검찰이 구형한 징역 20년에서 무려 8년이나 감형해 줬다.
이게 무슨 말일까? 범인이 본인의 죄를 인정하면 이렇게 감형사유가 된다는 말인가?
폭행의 객관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인정한 것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하겠지만 이미 사건 현장의 CCTV에 고스란히 찍혀서 발뺌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당연히 인정할 걸 인정한 것이 어떻게 감형사유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살인의 의도가 없었다는 것도 개인적으론 납득하기 어렵다. 무방비 상태로 있던 피해자를 뒤에서 강한 발차기로 가격했고 피해자가 쓰러진 이후에도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혹시라도 욱하는 마음에 발차기를 한 것이라면 충격으로 쓰러진 피해자의 모습에 겁이 나서 도망가는 게 일반적이지 않을까. 하지만 뉴스 매체에 올라온 사건현장 CCTV 무편집본은 평범한 사람인 내 눈엔 도저히 살인의도가 없는 것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내 눈엔 그저 잔인한 한 명의 살인자만 보일 뿐이었다.
(무편집본은 가해자의 폭력성을 알리기 위해 피해자와 합의하에 올린 것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난 재판부의 판결 내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아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누범기간이었다. 사회에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라도 더욱 강력한 판결을 내려야 했던 거 아닐까? 그럼에도 검찰의 구형보다 8년이나 감형을 해줬다니 이게 정말 말인지 방귀인지 모르겠다.
범죄.. 그리고 현실
우리나라는 유난히 범죄자에게 관대하다.
참 희한한 일이다. 없는 자에겐 피도 눈물도 없는 법이 범죄자에겐 왜 이토록 관대한 것일까.
취했다고 감형해 주고 범죄 사실을 인정했다고 감형해 준다. 이뿐만이 아니다. 범죄자의 인권보호엔 또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지.
범죄혐의가 입증된 피의자라면, 더구나 그 혐의가 강력범죄라면 바로 신상공개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무엇이 사회적 이익을 위함인지 다시 한번 잘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20대의 젊은 피해자는 이 사건으로 삶이 송두리째 망가져버렸다. 평생을 안고 가게 될 마음의 상처와 신체적 장애 그리고 무너진 삶.
누가, 무엇으로 이것을 보상해 줄 수 있단 말인가.
법만이 이 잔인하고 끔찍한 범죄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내려줄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겨우 12년형을 선고받았을 뿐이며 가해자는 반성의 기미도 없이 형이 너무 무겁다고 항소까지 한 상태다. 가해자가 1심 판결대로 형이 확정되어 12년간 복역한다고 가정해도 출소하면 겨우 40대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우리나라의 법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정말 모르겠다.
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며칠 전 영화채널에서 '쇼생크탈출'을 봤다.
많은 분들이 아실 테지만 아내와 그의 정부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 주인공이 감옥에서 탈옥을 하는 이야기인데 영화 초반부엔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는 주인공의 모습이 나온다. 물론 누명이긴 하지만 두 사람을 살해한 범죄에 대해 재판부는 이런 판결을 내린다.
'피해자 한 명당 종신형 한 번, 총 두 번의 종신형을 선고한다.'
사형선고와 집행이 사라진 우리나라.
언젠가부터 강력범죄에 대한 판결이 조금씩 사람들의 기대치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나처럼 가진 게 많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 강력범죄의 피해자가 된다면 믿을 건 법 하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이 이렇다면, 그때의 난 너무나 절망스러울것 같다.
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나와 우리, 이 사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을 위한 것임을 꼭 기억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