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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브라운 Oct 31. 2023

끝, 새로운 시작




9일의 휴가가 끝났다.

2019년 10월 초, 자영업으로 운영하던 맥주가게를 넘기고 다시 회사로 들어가기 전 쉬었던 3주 이후 가장 길었던 휴가. 물론 이 시간들도 금방 지나가리라 생각은 했지만 막상 마지막날이 되어 생각해 보니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또 언제 이런 시간을 가져볼 수 있을까.


성대결절 & 폴립


7월 말, 새로운 회사로 이직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목이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역류성 식도염 증상처럼 목에서 뜨거운 느낌이 나더니 이내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목에 사레가 들린 것처럼 답답한 소리가 나오고 이물감이 느껴져 결국 병원을 찾았고 후두내시경 검사 후 진단받은 병명은 성대결절과 폴립이었다.


먼저 성대폴립은 성대 안쪽의 출혈에 의해서 만들어진 핏덩어리했다. 출혈이 생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건 딱히 약이 없어서 자연적으로 몸에 흡수되길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차도가 없으면 간단하지만 전신마취로 수술을 해야 한다고. 성대폴립이란 말을 처음 들어보기도 했고 성대에 이렇게 핏덩어리가 붙어있는 것도 신기했지만 그보다 내가 성대결절이 있다는 게 더 놀라웠다.


그건 그렇고, 성대결절이라고?

이런 건 흔히 목을 많이 사용하는 가수들이나 걸리는 거 아닌가? 선생님은 최근에 소리를 크게 지르거나 목을 혹사한 적이 없는지 생각해 보라 하셨는데 암만 생각해 봐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지금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건 결절과 폴립 때문에 성대가 딱 붙지 않아 목소리에 영향을 주는 거라고, 일단 약을 먹으며 차도가 있는지 지켜보자 하셨다.


하지만 그렇게 한 달이 넘게 약을 먹어도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알코올과 카페인은 목을 건조하게 하기 때문에 특히 피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 때문에 그 좋아하는 커피와 퇴근 후 아내와 한 잔씩 즐기던 맥주도 끊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떤 날은 목이 아예 잠겨 마치 목이 쉰 것처럼 소리가 나지 않는 날도 있었는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인싶었다.


의사 선생님은 목을 최대한 아끼라 하셨는데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목을 아낄 수 있겠는가. 거래처와의 통화, 동료들과의 대화, 상사에게 해야 할 업무 보고 등.. 나도 최대한 목을 아끼려 했지만 사무실에 있는 한 그러긴 쉽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고 따뜻한 물을 자주 마셔 목을 마르지 않게 해 주는 것, 이것뿐이었다.


스트레스 때문에?


두 달이 넘어서도 목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간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후두내시경 검사를 받았는데 성대결절은 나았지만 폴립(핏덩어리)은 그대로였다. 여전히 내 목소리가 이런 건 폴립 때문이었다. 수술을 해야 하는 걸까 싶었다. 목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느낌,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 너무나 답답했다. 마치 목소릴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다 상태가 좋아진 건 10월 초, 추석연휴가 시작서 였다. 그런데 신기한 건 목 상태가 좋아진 시점이 바로 다른 회사로의 이직이 확정된 직후였다는 점이다. 그간 이 회사를 다니며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를 제법 많이 받아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이직을 결심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면접을 봤던 회사로부터 합격 소식을 듣자 목 상태도 좋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뭐지 이거? 설마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이직이 확정되고 지금까지 3주 넘는 시간이 지났는데 그간 약도 먹지 않고 병원에 한 번도 가지 않았음에도 지금 내 목 상태는 상당히 좋다. 정말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 목 상태로 돌아왔다. 의사 선생님은 한 번도 증상의 원인으로 스트레스를 언급하신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당연히 나 역시도 언젠가 목을 혹사한 적이 있는 걸 기억 못 하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설마 스트레스 때문에 목이 이렇게 되기도 하는 걸까? 인터넷을 찾아봐도 인과관계를 확인할 순 없었지만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가 어쩌면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휴가


회사를 나와 9일의 휴가를 보냈다.

등산도 하고 예전 직장동료도 만나고 친한 친구들도 만나고. 아쉽긴 하지만 나름 알차게 보낸 시간들이었다. 특히나 오랜만에 만난 동네 친구들과의 시간이 기억에 남는다.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친구인 이 녀석들.


오랜만에 내 휴가를 핑계 삼아 모임을 가졌는데 다 참석하지 못한 게 너무나 아쉽다. 근데 생각해 보면 난 이 녀석들과 참 많이 다르다. 먼저 친구 놈들은 다들 주량이 세서 술 마시고 노는 걸 좋아하지만 난 술이 약해서인지(유전적 영향이다) 이런 자리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 그래서 친구 생일이나 가끔씩 다 같이 모이는 자리가 아니면 내가 친구들 술자리에 끼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예전엔 술집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었는데(진짜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나 빼고 다들 흡연을 하는 바람에 술집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혼자 구석진 자리에 앉아 내게 밀려오는 담배 연기를 날리기 위해 메뉴판으로 필사의 부채질을 하기도 했었다.


이런 내가 어떻게 이 녀석들과 3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을까.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 놈들이 역시나 또 묻는다.


"넌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고.. 진짜 스트레스 어떻게 푸냐? 무슨 낙으로 살아?"

취기가 오르면 항상 하는 질문인데 정말 같은 대답을 몇 번째 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 몇 번을 말해. 난 아내랑 같이 여기저기 놀러 가는 거 좋아하고 너네가 술 마시면서 이렇게 놀 때 난 카페에서 조용히 책 보고 글 쓰는 게 좋다니까?"


이럴 때마다 친구 놈들 반응은 언제나 똑같다.


"구라 치네~"


근데 진짜다.

10년 연애를 하고 결혼해서 다시 11년을 함께 하고 있는(합이 21년이다) 아내와 보내는 시간은 여전히 내 삶의 큰 기쁨이자 재미고 혼자 카페에서 조용히 책을 보거나 노트북을 두들기며 글을 쓰는 시간은 내겐 더할 나위 없는 힐링의 시간이다. 이번 휴가 때도 아내가 출근한 평일엔 혼자서 카페나 도서관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책도 한 권 읽었고 그간 회사일을 핑계로 쓰지 못했던 글도 여러 편 쓸 수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휴가의 마지막 날, 뭘 하면 좋을까 고민해 봤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겐 이렇게 글 쓰는 시간이 최고다.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는 이 시간이 난 정말 너무 행복하고 즐겁다.


새로운 시작


이제 내일이면 새로운 곳에서 또 다른 시작을 하게 된다. 어떤 날들이 내 앞에 펼쳐질지 모르지만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건 후회와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겠지. 걱정과 긴장감이 조금씩 밀려오기 시작한 지금(이런 긴장감까지 즐길 수 있다면 정말 얼마나 좋을까) 이번엔 지난번과 같은 실수가 없길 바라며 몇 시간 남지 않은 휴가의 마지막을 잘 마무리해야겠다.


 파이팅! 나는 잘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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