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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브라운 Nov 01. 2024

친구라는 이름으로

#3 언제나 네 편


눈을 감으니 파도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없는 재즈음악과 통창으로 들어오는 밝은 햇살, 그리고 적당한 사람들의 대화소리.


주위의 모든 것들이 잘 어우러져 빈백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우리에게 기분 좋은 나른함을 선사해 주고 있었다.


"요즘 정말 생각이 많았거든."

나란히 앉아 한 동안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던 지수가 입을 열었다.

"무슨 일 있었어?"

갑작스러운 지수의 얘기에 나른해져 있던 몸의 감각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이내 곤두서는 게 느껴졌다.


"아니, 별건 아니고. 그냥..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어서."

"갑자기 무슨 소리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서. 너 알지? 내가 얼마나 광고 쪽 일 하고 싶어 했는지. 분명 좋아하는 일이라서 들어갔던 회사인데 이젠 이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인가 싶어. 거의 매일 야근하면서 하루에 10시간 넘게 일하는데 전혀 즐겁지가 않아. 명확하게 업무 지시도 안 하면서 팀원들 성과만 자기 걸로 쏙 빼가는 팀장도 정말 싫고 남들보다 한 발 앞서 가겠다고 이 악물고 경쟁하려는  회사 사람들한테도 지치고. 근데 더 어이없는 게 뭔 줄 알아? 이렇게 사무실에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집에 오진이 다 빠져서 정말 아무것도 못하고 씻고 잠자기 바쁘다는 거야. 집에 오면 11시가 넘는데 뭘 할 수 있겠어. 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맞는 걸까?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해. 너무 혼란스러워."


지수는 광고 쪽 일을 해보고 싶다며 대학 졸업반 때 광고회사만 죽어라 찾아 입사지원을 했다. 그럴 때마다 난 지수의 면접관이 되어 녀석이 뽑아온 예상질의로 모의면접을 봐주곤 했다. 몇 번의 실패로 의기소침하던 지수가 업계에서 나름 이름 있다는 회사의 합격소식을 듣고 눈물을 글썽이며 기뻐하던 모습을 난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청춘


졸업반이었던 지수와 아직 3학년이었던 난 겨울이 코앞으로 다가온 11월의 어느 날 학교 소나무숲 벤치에 앉아 있었다. 친구들과 대낮부터 학교 앞 술집에서 거하게 한 잔 마시고 집에 가려다 문득 도서관에서 취업준비를 하고 있을 지수가 생각나 녀석을 도서관 앞 소나무숲으로 불러냈.


도서관 입구 지수의 모습이 보자 난 녀석을 불렀다.

"이지수!"


술이 좀 취해서였는지 생각보다 목소리가 고 그 소리에 지나가던 학생들이 나를 쳐다봤다. 당황한 앙칼진 눈빛으로 쏘아보던 지수는 뛰어오더니 내 팔을 휙 잡아채 도서관 앞 소나무숲으로 끌고 갔다.


"야~ 창피하게 왜 러는데! 너 술 마셨어?"

"와 귀신이네. 어떻게 알았어? 나 친구들이랑 한 잔 했는데. 술냄새 많이 나냐? 후~후~."

"그만해라. 아 술냄새! 너 진짜 죽을래?"


지수와 친해지면서 석을 놀리는 게 꽤나 재미있는 일이란 걸 알게 됐다. 지수는 항상 눈빛만 앙칼지게 지을 뿐, 내가 하는 모든 장난을 받아준다. 화 한번 내지 않고.


"알았어 그만할게 후~~~~~."

"하지 말라고 쫌!!" 

이번엔 지수가 주먹으로 내 팔을 쳤다.

"알았어. 알았어. 진짜 안 할게 때리지 마. 아파!"

맞으면서도 난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계속 웃고 있었다.


"커피 한 잔 하면서 바람 좀 쐬라고 연락한 거야. 자"

한 손에 조심스레 들고 있었던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지수의 손에 쥐어주며 물었다.


"이지수, 아직 괜찮지?"

지수는 내 물음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 순간 지수의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번호를 확인하던 지수의 표정이 달라졌다.


세상밖으로


"어머, 어머. 야, 어머, 어머."

"뭔데 계속 어머 어머야. 뭔데? 무슨 전환데?"

"잠깐만.. 음음.. 여보세요? 네. 네.. 진짜요? 감사합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은 뒤 지수는 내 팔을 세차게 흔들며 말했다.


"야 나 붙었대! 붙었대"

합격했다 말하는 지수의 동그란 눈에 눈물이 고였다.


왜 사람들은 기쁜 일에도 눈물을 보이는 걸까. 아직까지 기쁨의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는 난 그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하다.


"거봐, 내가 뭐라고 했?  해낼 거라 그랬잖아. 짜식, 대단한데? 잘했다 이지수. 장하다!"

마치 내가 대기업에 취업이라도 된 것처럼 기분이 좋아져 지수의 어깨를 두드리며 축하해 줬다.


이 날, 지수는 그대로 도서관으로 들어가 짐을 싸서 나왔고 우리는 밤늦게까지 축하주를 마셨다. 아직 학생인 난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 지수의 발걸음을 응원했고 지수는 넘치는 열정으로 회사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겠다며 전의를 불태웠다.


청춘이었다.


언제나 네 편


"이지수, 많이 힘들었구나? 너 스트레스받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왜 그동안 다 얘기 안 했냐? 내가 뭐라 답을 찾아주진 못해도 니 얘기 들어줄 수는 있는데."

"오.. 뭐야 너? 웬일로 말 예쁘게 한다? 고맙다 야. 역시 친구가 최고야."

"힘들  혼자 꾹 참지 말고 누군가에겐 말해야 한대. 나 너무 힘들다고. 그렇게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그 감정이 많이 해소된다고 하더라. 그니깐 나한테라도 얘기해 줘. 알지? 난 언제나 네 편인 거."


학생 신분을 벗어던지고 사회인이 되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바쁘다. 힘들어도 아닌 척, 불편해도 아닌 척, 전혀 즐겁지 않아도 그렇지 않은 척. 언저까지 이래야 하는 걸까. 어쩔 수 없는 거라면 적어도 나만큼은 지수에게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 되고 싶었다. 힘들고 지칠 때 신을 돌아보고 시 쉬어갈 수 있도록.


"얘가 오늘 왜 이래? 뭐야 너, 은근 감동인데? 너도 나한테 다 얘기해. 알았냐? 친구 좋다는 게 뭐야."


이렇게 말하는 지수의 얼굴이 조금은 밝아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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