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버렸다.

TV를 치우자고? 진심이야?

by J브라운


작년 이맘때쯤이었나.

아내가 갑자기 말했다.

"여보, 우리 TV 치워버리자."


뜬금없는 얘기에 놀란 내가 뭐라 입을 떼기도 전에 아내가 이어 말했다.


평일 퇴근 후나 휴일에 너무 습관적으로 TV를 켜고 멍하게 보내는 시간이 많은 것 같다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아닌 것 같다고. 틀린 얘긴 아니었다.


평일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습관적으로, 별 이유 없이 TV를 켜곤 했다. 뭔가 이게 켜져 있어야 집다운 느낌이 난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TV를 켜 놓고 밥을 먹고 씻고 자기 전까지, 심지어 TV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자는 날도 많았다. 게다가 요일마다 챙겨보는 드라마가 있을 정도였는데 그렇게 TV를 좋아하는 아내가 갑자기 이걸 치워버리자고 말하는 게 아닌가.


"TV를 치우자고? 진심이야?"

내 물음에 아내는 그렇다고,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진다며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을 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후회할 텐데?"

내 얘기에 아내는 절대 그러지 않겠노라 말했고 우린 바로 편의점에서 폐기물 스티커를 사 와 그날로 TV를 치워버렸다.


사실 집엔 책이 제법 있다.

내가 무언가에 씌워 정신이 나가 자영업을 했을 때 가게 오픈 전 매일 나만의 힐링시간으로 카페에서 책을 읽곤 했었는데 그때부터 독서에 재미가 붙어 꽤나 많은 책을 사서 읽었다. 장르도 다양하게 읽어서 5단 책장을 거의 다 채울 정도로 책이 쌓였는데 그간 집에 있는 책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아내가 갑자기 TV를 치우고 책을 읽겠노라 폭탄선언을 한 거다.


참 이상하다.

왜 남편들은 아내의 고집을 이기지 못하는 가. 반대 상황이었다면, 난 TV를 버리고 싶은데 아내가 안된다고 했다면 아마도 TV는 여전히 거실 한 부분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으리라.


아무튼 TV를 버리고 다음 날 저녁, 퇴근하고 아내와 집에 있는데 이곳이 이렇게나 조용했나 싶어서 놀랬다. 그리고 무언가 허전함이 느껴졌다. 대학졸업 후 형들각자의 사정으로 집을 떠나 부모님과 나만 남았을 때의 그 휑함이랄까. 고요함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조금 필요했는 사실은 반대로 그간 얼마나 TV에 중독되어 있었는지를 깨닫게 해 줬다.


그 후 우린 집에 오면 TV대신 라디오를 들으며 저녁을 먹고 나란히 소파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덕에 난 작년 40여 권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TV를 버리고 책을 읽자 말했던 아내는 처음엔 책을 좀 보는가 싶더니 요즘엔 핸드폰으로 쇼핑하느라 바쁘다. 그래도 확실히 집에 있을 때 멍하게 TV만 보며 시간을 보냈던 날들에 비하면 지금이 훨씬 좋다.


라디오를 통해 음악과 사람들 사는 이야기를 듣고 책도 보고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들도 많이 나누고. 그리고 이렇게 집에서 글도 쓰고.


TV, 치우길 정말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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