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팅 하실래요?

by J브라운




1990년대 초반.

지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핸드폰이 대중화되기 한참 전인 전통적 아날로그 시대이자 전화라면 집 전화와 거리에 있는 공중전화가 전부였던 그때.


국민학생이었던(그땐 국민학교였다) 나에게 그 시절 가장 재미있는 놀이(?) 중 하나는 바로 폰팅이었다.


폰팅.

아마 지금 30대에게도 낯설고 생소한 단어일 듯한데..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집집마다 전화번호부 책자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 전화번호부는 공적으로 발행됐던 것으로 인근 식당이나 가게들 번호뿐만 아니라 일반 가정집의 전화번호까지 친절하게 기재되어 있었더랬다.

(개인정보 보호라는 개념이 생기기 한참 전이었던 터라 지금으로선 정말 상상조차 안될 일이다.)


폰팅은 바로 Phone과 Meeting을 합친 말로, 한마디로 즉석 전화 만남이었다.


폰팅 하실래요?


집에 아무도 없는 날.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번호부를 펴고 그냥 이유 없이 끌리는 번호를 골라 전화를 건다. 아직은 발신자 번호가 표시되는 전화기가 없던 시절라 익명성은 철저히 보장된다. '뚜~ 뚜~' 신호가 가고 그동안 목소릴 가다듬으며 어떤 달콤한 얘기로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을지 생각한다. 곧이어 수화기 너머로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앗, 남자다!!'

이런 경우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끊어야 한다.

내 목적은 동성과의 낯 뜨거운 통화가 아니니까. 쓰라린 마음을 뒤로하고 지체 없이 전보다 더 느낌 좋은 번호를 골라 전화를 건다. 아직 걸 수 있는 번호는 차고 넘치니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또다시 신호가 간다.

"여보세요?"

여자 목소리다.

오케이, 그럼 바로 폰팅 시작이다.

다시 한번 목을 가다듬고 최대한 달콤한 소리로 얘기해 본다.

"음~폰팅 하실래요?"


지금은 상상도 안되고 말도 안 되는 일 같지만 그 당시 폰팅은 10대 초중반의 일부 학생들 사이에 유행했던 하나의 놀이문화(?)였다. 물론 상대방이 나의 폰팅 요청에 응해 통화를 하게 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


"폰팅 안 해요."

"너 혼난다."


이도 아니면 그냥 전화를 끊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하지만 가끔 이어지는 통화가 어린 시절의 나에겐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삼 형제 중 막내로 자라서인지 특히나 누나에 대한 로망이 있기도 했고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에서 느껴지던 설렘도 큰 즐거움으로 남았던 듯하다.


집 전화가 없어지고 거리에서도 공중전화를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다. 핸드폰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보이스 피싱이나 스팸 전화로 생각하고 받지 않는 경우도 태반이다. 그래서인지 예전 폰팅을 하던 시절이 가끔 생각난다.


폰팅을 하기 위해 주로 내가 전화를 거는 쪽이었지만 가끔은 행운처럼 내가 폰팅 전화를 받는 날도 있었다. 누가 걸었는지도 모르는 전화를 받고서 아무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눴던 그때 그 시절.


문득 노래 가사가 하나 생각난다.


'그땐 그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