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아저씨 그리고.. 사장님!!
설마.. 저요?
"지금 태어난 우리 손주는 150살까지 살 수 있다네요."
즐겨 듣는 라디오 채널의 어느 제약회사 광고에서 나온 얘기다. 150세?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도저히 상상이 안된다. 100세가 넘은 어르신들이 흔한 세상이라니. 150세까지는 아니더라도 요즘은 흔히 100세 시대라고 한다. 그리고 내 나이 이제 마흔 하고도 하나. 조금만 있으면 인생의 반환점에 도달하게 된다.
휴..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나버린 걸까.
스물
연말이 다가오고, 특히나 나이 앞자리가 바뀔 때쯤이 되면 누구나 자신의 삶에 대해 한 번씩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지난 1년이 그리고 10년이 나에겐 어떤 의미였는지, 나는 제대로 잘 살아가고 있는 건지. 생각해 보면 나이 앞자리가 바뀔 때 기분이 좋았던 건 19살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스무 살이 되면 뭐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정말 근거 없는 자신감에 세상이 다 내 것 같았으니까.
눈 깜짝할 새 지나가버린 스무 살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몹시도 뜨거웠던 스무 살이 지나자마자 군대라는, 왠지 내 청춘을 모조리 빼앗기는 듯한 어두컴컴한 현실에 절망해야 했다.
한창나이 21살에 26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사회와 격리된 체 보내야 한다는 사실은 나를 비롯한 또래 그 누구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저기, 아저씨!!
그 후 3년 만에 학교로 돌아온 나에겐 풋풋함 대신 복학생 아저씨라는 조금은 멋쩍은 타이틀이 붙게 됐다. 학년은 같았지만 2~3살 어린 후배들과 뭔지 모를 이질감이 느껴지던 복학생. 하지만 그 시절 학교 후배들 눈에는 아니었을지라도 분명 나 역시 젊디 젊은 꽃청춘이었다.
그리고 20대 후반 직장인이 되면서 나를 부르는 호칭이 그냥 아저씨로 바뀌기 시작했다.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서류가방을 들고 다니는, 전형적인 직장인 모습의 날 부를만한 호칭이 이것 밖에는 없었겠지. 지금 생각해 봐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하지만 난 그게 영 달갑지 않았다. 그래서 누가 날 아저씨라고 부르면 못 들은 척, 아닌 척을 하곤 했었다. "저기요"라는 말이라도 들리면 그때서야 "저요?" 하며 전혀 몰랐다는 표정으로 돌아보곤 했으니까.
그렇게 20대의 마지막, 청바지보다 셔츠에 정장을 입는 날이 훨씬 많아지면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의 진짜 아저씨부대로 편입됐다.
원빈도 아저씨입니다.29살 연말엔 뭔가 청춘이 다 끝나버린 것 같은 서글픔이 확 밀려왔었다. 30대가 된다는 건 정말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서른의 코앞에 이르자 비로소 나도 나이를 먹고 있다는 걸, 진짜 어른이 돼가고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비장하게 마음을 먹었더랬다. 30대 다운 성숙함이 필요할 것 같았고 적어도 내 인생에 대해서는 확고한 의지를 가진 멋진 어른이 되어야 할 것 같았기에.
하지만 그 결의에 찬 다짐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막상 발을 내디뎌보니 서른이라는 나이가 주는 인생의 무게감이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고 일상도 이전과 달라진 점이 없었기에 마음만 잠깐 우울했을 뿐 똑같은 하루하루를 반복하고 있었다.
사장님!! 어쩌다 중년
10년 뒤 39살의 나는 사장님이란 소리를 듣는 중년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물론 진짜 사장님이긴 했다. 그때의 나는 나 조차도 상상하지 못했던, 그것도 소주 3잔이 주량인 내가 술집 사장이 되어 연말을 맞이하고 있었으니까. 인정하긴 싫었지만 이제는 손님들에게도, 직원들에게도 그리고 밖에 나가면 그 누구에게서라도 사장님 소리를 듣는 게 자연스러운 중년이 된 것이었다.
Welcome to my beer house!!그런데 이 사장님이란 호칭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
물론 가게를 하고 있을 땐 어쩔 수 없었다지만 다시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은 이 말을 듣기엔 조금 이른 것 아닌가 싶은데 얼마 전 이게 현실임을 알게 해 준, 소위 현타가 오지게 온 사건이 있었다.
몇 년 만에 핸드폰을 바꾸러 간 매장에서 상담을 해주던 직원분(20대 중반이나 됐으려나)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나를 사장님, 아내를 사모님이라 불렀던 것이다. 날 부르는 사장님이란 호칭에 그 어떤 망설임도 없음에 약간의 당황스러움을 느꼈는데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이제 평범한 중년이 되었다는 걸. 그냥 손님으로 불러줬으면 참 좋았으련만.
하지만 내 욕심과는 다르게 요즘 들어 부쩍 나이를 먹고 있음을 더 실감하게 된다. 어느새 커진 모공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예전엔 너무 많아서 감당이 안되던 머리숱도 이제 조금씩 빈자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아침에 봤던 얼굴의 베개 자국이 점심때쯤까지 남아있는 날도 있다. 나이 먹는 건 정말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다.
하지만 이런 나이 듦이 나를 그만큼 성숙한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과정이 되리라 믿는다.
누구보다 멋진 어른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저 나이 듦에 뒤처지지 않는,
그 나이에 딱 어울리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공평한 시간 속에서
나이 듦에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길 바란다.
학생에서 아저씨로 그리고 사장님으로.
나를 부르는 호칭도 나와 함께 나이를 먹어간다.
그리고 또 10년 후를 생각해 본다. 50을 넘긴 그땐 또 어떤 호칭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음..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