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1년 1월 18일.
지난주 후반부터 일기예보 때마다 일요일(17일) 저녁에서 월요일(18일) 새벽 사이에 전국적으로 많은 눈이 예상된다며 폭설에 대비하라는 얘기가 있었다. 이미 지난 화요일에 내린 눈으로 퇴근길 끔찍한 악몽을 겪었던 터라 일요일 저녁부터 하늘에 드리운 먹구름을 보자 내 걱정도 조금씩 깊어지기 시작했다.
12일 화요일.
수도권엔 눈이 많이 오지 않을 거란 일기예보를 믿었다가 예상치 못한 폭설로 퇴근길에 정말 많은 고생을 해야 했다. 점심때부터 내리던 눈발이 심상치 않아 조금 일찍 퇴근을 했음에도 평소 1시간 30분이면 올 수 있는 퇴근길이 무려 4시간이나 걸린 지옥길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 4시간이면 우리 집(군포)에서 강릉까지 갈 수 있는 시간이다.
한두 시간 지나자 엉덩이는 아파오고 화장실도 가고 싶고 액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고 있는 오른 다리도 뻐근해졌다. 그리고 그즈음 조금씩 일기 시작한 짜증은 처음엔 조금 더 일찍 사무실을 나오지 않은 나를 원망하다가 어느 순간 분노로 돌변해 오늘 날씨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기상청을 향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평소에도 그렇다. 예상했던 어려움을 만나게 됐을 땐 그만큼의 준비가 있어서인지 충격이 크지 않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을 땐 정신줄을 제대로 잡고 있기가 어렵고 그만큼 충격도 커진다. 무방비 상태에서 선빵을 맞은 느낌이랄까.
화요일이 딱 그랬다. 예상치 못한 폭설에 정신줄을 놓아버려 끓어오르는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돌아오는 내내 차 안에서 짜증만 냈더랬다.
그리고 17일 일요일.
저녁이 되면서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정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처가에 저녁을 먹으러 갈 때까진 내리지 않았는데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8시 조금 전에 나왔더니 눈발이 꽤나 날리고 있었다. 심상치 않아 보였다.
이미 길에도 눈이 쌓이기 시작했고 내리는 모양새가 일기예보에서 들은 것처럼 이대로면 폭설로 이어질 것 같았다. 집 앞에도 이미 찻길과 세워진 차들 위로 눈이 제법 쌓여 있었는데 다행히 아파트 바로 앞 인도는 미리 뿌려놓은 염화칼슘 덕분에 눈이 녹아있었다.
집에 와서도 온통 내일 출근길 걱정이었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편도 70km 거리다. 대중교통으로 가려면 2시간 30분은 더 걸리는 길이어서 매일 운전으로 출퇴근을 하는데 눈 내리는 날은 정말 너무 힘들다. 제설이 안된 눈길을 달릴 때의 그 불안함이란. 특히나 눈길에선 제동이 쉽지 않아 더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다행히 자기 전에 창밖을 내다보니 눈이 그쳐있었다. 예보에서도 밤에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다 새벽에 폭설이 온다고 했다.
얼마나 쌓이려나 걱정을 하고 있는 내게 장롱면허인 아내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는 일을 뭘 그렇게 걱정하고 있냐며 면박을 주었다. "눈 오는 날 운전 안 해본 사람은 그 입을 다물라~" 라며 한마디 해주고 침대에 누워 아내에게 얘기했다. 내일 눈 떴을 때 정말 폭설이 내려 있으면 그냥 회사 쉬자고. 아내도 웬일로 좋다고 한다.
18일 월요일(오늘).
알람 소리에 눈을 뜨자마자 베란다로 가서 창문을 열어봤더니 세상에 이럴 수가.
어제 자기 전에 본 모습 그대로다.
밤새 내린다는 폭설은 어디로 간 걸까 하는 의아함에 날씨예보를 찾아보니 출근 시간 전후로 폭설이 내린다고 했다. 이 소식에 지금 빨리 나가야겠다 싶어 아내와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는데 다행히 도로 위 어젯밤에 내린 눈은 이미 다 녹아있었다. 평소처럼 아내를 지하철역에 내려주고 제발 한 시간만 뒤에 눈이 내리길 기도하면서 회사로 차를 돌렸다.
회사에 도착해서 지금(오후 1시)까지 다행히 눈은 내리지 않고 있다. 예보를 다시 찾아봤는데 수도권은 아직 큰 눈이 내리는 곳은 없는 듯하고 폭설도 출근 시간 전후가 아니라 오후에 내릴 수도 있다고 바뀌어 있었다.
오늘도 날씨예보에 한 방 먹었다 싶으면서도 폭설로 인해 출근길 대란이 없었으니 또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이러는 와중에 어제 아내의 말이 떠올랐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뭘 그렇게 걱정하고 있어."
물론 지난주에 있었던 폭설 때문이었기도 했지만 사실 우린 살면서 별 필요 없는 걱정을 달고 산다. 생각해 보면 걱정의 원인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 때문인데 우리 모두는 안다. 걱정해도 크게 달라질 게 없다는 걸.
맞는 말이다.
나 역시도 며칠 전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월요일 새벽의 폭설 예보에, 그리고 실제 일요일의 심상치 않은 눈발을 보고 오늘 출근길을 그렇게나 걱정했었다. 여기에 지난주 퇴근길의 경험은 그 걱정을 가중시키는 기폭제가 됐는데 그러고 보면 경험이란 것도 참 동전의 양면과 같다. 좋은 경험은 그만큼 긍정적이고 선한 영향을 끼치지만 그 반대의 경험은 사람을 두려움과 근심 속으로 쑤욱 밀어 넣어 버리니까.
잠시 생각해 봤다.
걱정했던 대로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폭설이 내려 있었다면 그렇지 않은 지금과 무엇이 달라져 있었을까? 회사에 가지 말자는 아내와의 장난 섞인 약속?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걱정과는 상관없이 오늘 아침은 이러나저러나 똑같은 모습이었을 것 같았다.
걱정거리 중에 실제로 일어나는 것은 100가지 중 1~2가지라 했다. 이렇게 희박한 확률임에도 우리는 늘 앞날에 대해, 일어나지도 않은 무언가에 대한 걱정을 하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 걱정이란 녀석의 가장 무서운 점은 이 불안함으로 인해 소중한 지금을 근심 속에서 소모하게 만들고 더구나 정말 쓸데없는 짓임을 알면서도 또 반복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삶은 진정 근심의 연속인 걸까. 지금도 혹시나 퇴근길에 폭설이 오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정말 사람이란 어쩔 수 없나 보다.
가끔은 '어떻게든 되겠지 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대책 없이 막무가내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쓸데없는 걱정으로 현재를 소모하고 있는 나보다는 훨씬 나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나처럼 걱정 근심과 함께 살아간다. 그나마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이 사실이 작은 위로가 되어 주는데 오늘 남은 하루만이라도 이렇게 생각해보고 싶다.
'폭설? 여태 안 왔는데 설마 오후에 오겠어? 오면 또 어떻게든 되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