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감 하나 없을 이 휴일 아침에 9시 30분이 되면 거짓말처럼 눈이 번쩍 떠지는 나. 아직 더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졸린 눈을 비비며 터벅터벅 거실로 나와 TV를 켜고 소파에 눕는다.
벌써 몇 년째 일요일 아침을 함께하는 SBS 동물농장을 보기 위해서다.
언제부터 동물들이 좋아졌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확실한 건 초등학교 3학년 때 강원도에서 1년을 살게 되면서 함께했던 백구에 대한 기억이 소중하게 남아 특히나 강아지에겐 유난히 눈이 많이 가곤 했었다는 거다.
최근엔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인구가 천만이 넘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산책을 나가면 강아지와 함께 나온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마주치게 된다.
동행
다양한 반려동물이 있지만 그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건 아무래도 강아지가 아닐까. 주인과의 유대감이 잘 형성되고 외모 자체도 너무나 사랑스러운 강아지들.
10살 때 강원도에 살면서 하얗고 작은 강아지를 처음 키워보게 됐을 때를 생각해보면 그 녀석과의 좋은 기억들이 참 많다.
하굣길에 우리 집이 보일 때쯤 휘파람을 불면 고개를 빼꼼 내밀어 나를 보고 달려오던 모습이나 동네에서 자전거를 탈 때 옆에서 함께 뛰던 모습, 내 품에 안겨 쌔근쌔근 잠을 자던 모습까지. 처음 키워본 강아지였기에 모든 것이 처음이어서 좋았고 그만큼 기억에 오래 남아있다. 이 기억으로 인해 언젠가 꼭 다시 강아지를 키우리라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이게 생각만큼 쉬운 결정이 아니라서 아직까지도 그냥 생각으로만 머물러 있다.
작년 이맘때쯤 회사에 갑자기 나타난 새끼 강아지를 잠깐 임보했던 적이 있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쓴 글이 이 강아지를 기억하기 위함이기도 했는데 그때도 그랬지만 새로운 생명을 데려와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을지 솔직히 아직도 확신할 수 없어서 여태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맞이하지 못하고 있다.
다들 시작은 같은 생각이지 않았을까?
가족으로 맞이한 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오래오래 함께 하겠다고.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하루에도 수많은 반려동물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늙거나 병들었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버림받아 여기저기에 유기되고 있다.
예쁘고 사랑스러울 때만 가족일 뿐, 더 이상 그렇지 않게 됐을 때는 그저 짐으로만 취급받았을 불쌍한 아이들. 혹시나 내가 그런 사람이 되지는 않을까 겁이 나는 게 사실이다.
묘한 녀석이 나타났다
그렇게 막연히 언젠가를 기약하고 있던 내게 어느 날 갑자기 젖소무늬를 한 묘한 녀석이 나타났다. 조금만 다가가려 해도 휙 도망가거나 잽싸게 차 밑으로 숨어버리는 이 신묘한 녀석.
평소 고양이에 대해선 딱히 좋거나 나쁜 느낌은 없었는데 종종 새벽에 고양이들이 꼭 아기 울음 같은 소리를 낼 땐 깜짝 놀라곤 했다. 그런 길고양이가 어느 날 회사에 나타났고 동료분이 밥을 챙겨주시기 시작하면서 아침마다 이 녀석을 만나게 되는 날이 점점 늘어났다. 자주 보는데도 좀처럼 이 녀석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길고양이는 더 경계심이 많다더니 이 녀석도 그런 건가 싶다.
이 고양이를 만나는 시간은 매일 아침 7시 30분쯤이다.
내가 회사에 도착하는 시간인데 이때 밥을 먹고 있던 냥이는 주위에 인기척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바로 꽁무니를 빼고 도망가거나 차 밑으로 들어가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차 밑으로 고양이가 들어갈 때마다 쭈그리고 앉아 "야옹, 야옹" 녀석을 애타게 불러 보지만 가끔 대답만 한 번씩 해줄 뿐 절대 곁으로 다가오지 않는 이 녀석.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을까?
아무래도 간식을 주면 조금 더 친해지지 않을까 싶어 온라인몰에서 고양이 간식을 이것저것 잔뜩 구매했는데 과연 이 녀석에게 간식이 통할 지, 그래서 내게 자신의 곁을 내어줄지 참으로 궁금해졌다.
츄르는 사랑을 싣고
고양이 간식 중 스틱 형태로 된 츄르라는 제품이 있다.
손으로 짜서 주는 건데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다양한 맛이 있어 일단 이걸로 녀석을 꼬셔보기로 했다. 예전에 파주 헤이리 마을에 갔을 때 편의점 옆에 있던 길고양이에게 츄르를 사서 먹여본 적이 있는데 사람을 경계하는 듯하면서도 와서 잘 받아먹었더랬다. 혀를 날름거리며 먹는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아마 회사에 있는 냥이도 그러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다.
회사에 도착하니 역시나 사료를 먹고 있는 냥이.
길고양이와 친해지려면 낮은 자세로 천천히 다가가야 한다고 해서 고양이가 보이자 쭈그리고 앉아 한 발 한 발 조용히 다가갔다. 하지만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역시나 차 밑으로 후다닥 들어가는 녀석.
이때다 싶어 가방에서 참치 맛 츄르를 꺼내 녀석을 유혹해 본다. 냄새가 퍼져 나가길 바라며 츄르를 살살 흔들고 "야옹, 야옹" 녀석을 나직이 불러봤더니 세상에나, 고개를 빼꼼 내밀고 내게로 찬찬히 다가온다. 그리고는 츄르 냄새를 맡아보고선 혀로 한번 먹어본다. 맛이 괜찮았는지 혀를 계속 날름거리기 시작했는데 먹기 편하도록 천천히 짜주었더니 움직이지도 않고 곧잘 받아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