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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다가와줄래?

by J브라운




츄르를 받아먹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녀석도 어느 정도는 나에 대한 경계를 푼 듯했다.

얼굴 보고 지낸 기간이 꽤 되기도 했고 아마도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은 아닌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겠지. 언젠가부터 아침에 밥을 먹을 때도 나를 보고 도망가지 않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드디어 내 손을 허락하기 시작했다. 녀석에게 손을 내밀었더니 킁킁 냄새를 맡고서는 얼굴과 몸을 비비기 시작했던 것이다.


기분이 참 묘했다.


내겐 절대 다가오지 않을 것 같던 이 고양이가 조금씩 자신의 곁을 내주고 있다는 게.. 뭐랄까, 교감이라고 하면 맞으려나? 이 녀석이 드디어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 너무도 고마웠다.


너의 이름은 레오


고양이에게 이름을 붙여주면 좋을 것 같아 아내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함께 상의해봤는데 과자 '오레오'를 닮아 그냥 '레오'라고 부르기로 했다.

아침마다 인사를 격하게 하는 레오

그런데 한번 손을 타기 시작한 이 녀석은 알고 보니 완전 개냥이었다. 친해지고 출근할 때마다 주차장에서 내가 "야옹, 야옹." 소리를 내면 레오는 어딘가에서 "냐옹~" 대답을 해주며 모습을 드러내고는 곁으로 다가와 바로 배를 보이며 드러눕기 시작했다. 내가 살살 만져주면 바로 '그르릉 그르릉' 골골 송을 부르고 자신의 얼굴을 내 손에 막 문질러 대는데 정말 얼마 전까지도 나를 보면 숨기 바빴던 그 아이가 맞나 싶다.


하지만 고양이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생명체다.

처음 레오가 배를 보이며 드러누웠을 때 난 당연히 배를 만져달라는 얘긴 줄 알고 손을 쓰윽 뻗었다가 이 녀석에게 할큄을 당했었는데 손등에 발톱 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체 피가 나서 정말 놀랐었다.


뭐지? 만져달라는거 아니었나?


또 종종 얼굴과 턱을 만져줄 때 가만히 있다가도 갑자기 자신의 손으로 내 손을 잡아 확 물기도 하는데 이건 아프진 않지만 놀라서 손을 빼다가 날카로운 발톱에 긁히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처음 친해져 본 이 작은 귀염둥이의 마음은 정말 알 수가 없다.


묘한 매력의 고양이들


궁금한 마음에 검색을 해봤더니 내가 얼마나 아무것도 모르고 레오를 대했는지 알 수 있었다. 고양이에게 가장 중요한 부위인 배를 무턱대고 만지려 했기에 할큄을 당했던 거고 레오가 그만 만지라는 신호를 보내는데도 혼자 좋다고 만져대다가 물리곤 했던 것이다. 강아지와 달리 사람과 주종관계가 아니라 동료로서 생활한다는 고양이. 이 속모를 녀석들은 정말 알면 알수록 매력적이다.


레오는 저 멀리서도 날 보면 곁으로 다가와 눕거나 종종 내게 등을 보이고 앉기도 하는데 고양이가 누군가에게 등을 보인다는 의미는 그만큼 상대방을 신뢰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레오 이 녀석 언젠가부터는 정말 나에게 적개심이 하나도 없는 듯한 모습이다. 여전히 내가 먼저 "야옹" 하면 어딘가에서 대답을 하며 나타나고 건네주는 간식도 잘 받아먹으며 장난감도 잘 가지고 논다.


또 하나의 묘연


그렇게 레오와 친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길고양이가 나타나 레오의 밥을 먹고 가기 시작했다.

이 녀석은 치즈 고양이인데 덩치는 레오보다 훨씬 크다. 얼핏 사자 같은 외모를 풍기는 이 아이는 언젠가 오후에 레오의 밥을 채워주러 갔더니 그곳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루밍을 하며 누워있었다.

넌 어디서 왔니?

분홍 젤리가 오동통하게 붙어있는 손으로 부지런히도 온몸을 핥아대던 이 녀석. 분명 날 처음 보는데도 도망가지 않고 약간 쉰 목소리를 내며 그 자릴 지키고 있었다. 길고양이들은 대부분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나는 조금 당황스럽긴 했는데 눈을 감고 누워있는 모습이 너무 순해 보여 내 냄새를 맡게 해 주려 손을 뻗었다가 바로 냥펀치를 한대 맞고야 말았다.


냥펀치를 맞은 왼 손등엔 또 하나의 발톱 자국이 생겼고 이번엔 조금 깊게 긁혔는지 피도 제법 베어 나왔다. 표정과는 다르게 강력한 냥펀치였다. 살짝 올라오는 짜증을 뒤로하고 이 녀석에게도 밥을 챙겨줬더니 웅크리고 앉아 참 잘도 먹어댔다. 레오를 챙겨주시던 동료 분도 이 녀석은 처음 보는 거라 하셨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많진 않은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곳저곳에서 밥을 얻어먹는 녀석이 아닐까 싶다.


하나뿐일 거라 생각했던 객식구가 하나 더 늘었다. 하지만 이미 이곳에 발을 들여놓은 녀석을 어떻게 쫓아낼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길 위에서 힘든 생활을 하는 이 녀석도 레오와 함께 잘 챙겨주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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