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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삽시다

by J브라운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라고 한다.

자신만의 영역을 벗어나길 싫어하며 그 안에 다른 고양이가 들어오는 걸 반기지 않는다는데 레오와 치즈, 이 두 녀석 중 누가 먼저 이곳을 드나들기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건 아직은 두 녀석이 서로의 존재를 크게 의식하고 있진 않다는 것이었다.

말썽쟁이 치즈냥

원래 레오는 아침에, 치즈는 오후에 와서 밥을 먹고 가는데 언젠가부터 치즈가 아침에도 오는 날이 많아졌다. 하루는 밥을 먹고 있는 레오에게 어디선가 나타난 치즈가 갑자기 달려들어 레오의 털이 많이 뽑힐 정도로 공격을 당한 적이 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는데 날카로운 고양이 비명 소리가 들렸고 두 녀석이 엉겨 붙더니 이내 레오가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치즈가 맹렬히 쫓아갔는데 두 녀석이 떠난 자리엔 레오의 하얗고 검은 털이 많이도 날리고 있었고 그렇게 사라진 두 녀석은 그날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나타난 레오는 뒷다리에 상처가 나 있었다. 상처에선 조금씩이지만 피가 계속 나고 있었고 상처 크기도 작지 않아 그냥 두면 안 될 것 같았다. 병원으로 데려가려 해도 케이지가 없어서 문제였는데 집이 가까운 회사 동료가 급하게 집에서 강아지용 케이지를 가져와 동물병원으로 데려갈 수 있었다.

병원에 다녀온 동료의 말에 의하면 레오는 이제 태어난 지 3~4개월 정도 된 아이라 했다. 조금 마른 편이지만 특별히 아픈 곳은 없고 상처도 심각하지 않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라고.얼마나 다행인지..


아무래도 레오가 치즈에게 또 공격당할 것이 걱정이 되어 당분간 레오를 사무실 안으로 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야생에서 생활하던 녀석이 실내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급하게 캣타워, 화장실, 숨숨집, 스크래쳐 등을 구비하긴 했는데 안에 들어온 레오는 이리저리 두리번 대더니 후다닥 구석진 곳으로 기어 들어가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름을 부르며 나오라고 해도 나오진 않고 자꾸 더 구석진 곳으로 파고들어 가는 녀석.

적응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캣타워를 오르진 않고 침대로만 쓰는 레오

레오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최대한 녀석을 의식하지 않기로 했다. 적응이 되어 스스로 밝고 넓은 곳으로 나오도록, 직원들도 함께 기다려 보기로 했다.


처음 2~3일은 정말 레오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사무실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레오는 어디에 있는지 좀처럼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신기한 건 화장실은 또 귀신처럼 알고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아침에 출근해보면 화장실에 레오의 맛동산이 한가득씩 있었는데 생각할수록 정말 신기했다. 우리가 가르쳐 주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볼일을 보고 이렇게 흙으로 덮어놓고 간다는 게. 비록 흙에 덮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냄새는 지독했지만 그래도 사료를 잘 먹고 있는 듯해서 안심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이제야 적응이 됐는지 레오는 드디어 구석진 곳에서 나와 조용조용 사무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완전 적응한 레오

고양이도 강아지처럼 냄새를 많이 맡는지 몰랐는데 레오는 어딜 가든 항상 코로 냄새를 맡고 움직이곤 했다. 주위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운 환경이라 정신이 없었을 레오. 항상 코로 킁킁 냄새를 맡고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몸을 옮겼는데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인다 싶으면 놀래서 도망가거나 자세를 낮춰 몸을 숨기곤 했다.


한 번은 분명 사무실에 있던 레오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일이 있었다. 사무실 캣타워에서 자고 있던 녀석이 보이질 않아 여기저기 찾아봤는데 어디에도 레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이 안에 있었는데, 누가 내보내지도 않았는데 이 녀석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이름을 부르면 그래도 "야옹"하고 대답을 해주는 녀석인데 아무리 불러보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몇 시간 후 레오는 건물 밖에서 발견됐다.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체 태연하게 치즈냥이의 밥을 먹고 있 레오.

레오, 어떻게 된 건지 설명 좀 해줄래?

뭐지?

모두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 녀석이 대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걸까?


고양이는 머리만 들어갈 수 있는 작은 틈만 있으면 어디든 통과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추측만 할 뿐이다. 사무실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 이 녀석만 들어갈 수 있는 작은 틈이 있을 거라고.

그 이후로 레오는 자신만의 비밀통로를 통해 너무도 자유롭게 사무실 안팎을 드나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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