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 가는 이유 중 제 일 첫 번째라 할 수 있었던 것이 프리다 칼로의 생가를 방문하는 일이었다. 우버를 불러 날씬하다며 5명이 승용차에 우겨서 탔다. 기사님이 좋은 분이기에 망정이지 어째 이런 일을 했는지 부끄럽다. 멕시코 시티에서 며칠 지냈다고 잔머리를 굴리기까지 하였으니 우리 여행자들도 참 딱하다. 우리를 인상 찌푸리지 않고 태워주신 멕시코시티의 기사님께도 viva la vida(인생만세) 두고두고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드디어 프리다 칼로의 파란 집 앞에 섰다. 멕시코 공항에 내릴 때보다도 더 가슴이 두근거리며 흥분되었다. 가슴속에서 감격이 솟아 올라온다. 즐겁다. 좋다. 더 좋은 표현을 하고 싶은데 이 짧은 단어밖에 더 오르는 것이 없다니.... 그 고된 인생길에서도 삶을 유지하고 꿈의 붓을 놓지 않았던 그녀의 외침 viva la vida(인생만세)가 내 곁에서 물결처럼 잔잔히 퍼져 나가며 스며든다.
입장하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순간순간 설렘으로 지루하지가 않았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집 근처 도서 대여점에 가서 심심풀이로 읽을 책을 찾고 있는데 왠 지 괴기스러운 얼굴이 나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짙은 눈썹 사이로 빛나는 눈빛, 구레나룻 그려진 얼굴은 여자인데 남자인 뭔지 모르지만 마음 밑바닥에서 어쩐지 그 모습을 이해해야 할 것만 같은, 아니 알아봐 주고 공감하고 안아줘야만 할 것 같은 이상한 매력에 끌려 그 책을 선뜻 빌렸다. 그 책을 읽으며 그녀라는 사실을 알고 그녀의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그녀의 얘기를 들었다. 인간이 갈 수 있는 절망의 끝은 다 보았을 것 같은 안쓰러움을 너머 보이던 그녀의 삶을 바라보는 모습이 나를 절로 고개 숙이게 했고 일으켜 주었다. 나도 그때 정신적 육체적으로 무척 힘든 때였으므로. 그리고 그날부터 그녀는, 그녀의 그림은 나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았던 것 같다.
몇 년도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그녀의 그림이 올림픽공원 소마 미술관에 온 적이 있었다. 내가 찾은 날은 무척 더운 여름으로 기억되는데 멕시코의 태양도 더위도 이렇지 않을까 하며 무거운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녀의 그림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태양이 너무 뜨거웠던 날이었다.
그녀 생전에 살았던 그 집. 파란 집. 47년의 생애 중 36년간을 거주했다는 그곳. 그녀의 삶이 그대로 고여있을 그 집에 내가 서있다. 뺨을 살짝 꼬집어 본다. 사실이네.
그녀가 누웠던 침대 그녀가 그림을 그렸을 책상 쓰다 남은 물감 파스텔들이 지금이라도 그녀가 일어나 그림을 그릴 것만 같은 현실적 모습으로 나를 반겨 주었다. 게다가 그녀의 의족 빨간색에 수가 놓인 어딘지 중국적인 의족이 놓여있고 아기자기 모아 놓은 작고 앙징맞은 오브제들. 파란 벽 빨간 바닥 모두가 경이롭고 신비롭고....
아쉬움이라면 생전에 그린 작품들 (우리에게 유명하고 익숙한) 그림작품은 거의 없고 사진, 생활기록등이 많은 것이었다. 하긴 박물관이 아니고 생가이니 이해는 가지만. 또 다른 아쉬움은 그녀의 의족을 찍은 사진을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함께 올리지 못해 못내 서운하다.
수박그림 앞에서
그래도 유작처럼 그렸다던 수박은 인상적이었다. 수박을 좋아하는 사심도 작용했다. 예쁜 정원을 다 돌면서 창문으로 바라보기만 했을 그녀의 창가를 올려다보며 손을 흔들어 보았다. 정원옆에 꾸며진 작은 굿즈 상점에서 수박그림엽서를 여러 장 사고 수박컵을 살까 말까 들었다 놓았다 했다. 결국 깨질지도 모르고 짐도 되고 곧 먼지 가득 쌓인 외로운 물건이 될거라는 생각에 사지 못했다. 대신 프리다 칼로의 집모양 마그넷을 집어든다.
파란색 다시 봐도 예쁘다 눈부시다
파란집 마그넷을 사고 내가 이곳에 서 있다는 것을 외치고 싶었다. 가슴속에서 끌어올린 큰 목소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