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시티 북쪽에 위치한 과달루페 성당은 갈색피부의 성모상이 있는 성당으로 포르투갈의 파티마의 성모, 프랑스의 루르드의 성모와 함께 3대 성모 성지로 유명하다. 특히 마리아의 현신이 후안 디에고라는 인디언 개종자에게 나타나 교회를 세우라고 했다는 전설 같은 얘기가 우리의 정서와 맞는 것 같아 더 친근하게 생각되었고 한번 꼭 가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우버가 내린 곳은 성당의 뒤쪽이었다. 한가하고 걷기가 좋았다. 사람들을 따라가다 보니 커다란 성당이 나왔다. 새로 지어진 대성당. 뉴 바실리카 성당. 이름이 지어진 유래?를 살펴보면 1904년 교황청에서 바실리카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한다. 그런데 우리는 과달루페 성모발현 성당으로 알고 왔다. 민박집 사장님도 그렇게 부르는 것을 보면 과달루페 성당이라는 이름이 일반적인가 보다.
뉴 바실리카 성당 체육관 같은 모양
과달루페 성당은 지형적 특징으로 지반이 침하되고 있어 성당이 점점 침식되어 성당을 폐쇄하고 그 옆에 거대한 새로운 성당을 지었다. 이름하여 뉴 바실리카성당. 규모가 엄청났다. 지붕은 꼭 체육관 같아서 조화롭지 못하서 낯선 느낌이기는 했다. 내가 방문한 날은 화요일이라 종교적 행사가 있는 날이 아니라 생각했는데 성당에선 미사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사람이 엄청 많았다. 나도 그 자리에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뭔지 모르지만 성스러운 느낌이 스며들었다. 무슨 일인지 알고 싶었는데 알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언어의 벽을 실감하며.
미사 중이어서 뒤에 함께 서 봄
성당 앞 광장에는 관광객들이 꽤 많았고 올드 바실리카는 외형만 봐도 기울어져 있는 게 확연히 보였다. 옆 성당은 개방이 되어 내부도 볼 겸 다리도 쉬어갈 겸 들어가 앉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현지인들이 많은 것 같았다. 내 옆에 젊은 부부가 앉았는데 남편은 나처럼 멍 때리고 있었고 부인은 성경을 외우는지 뭐라 뭐라 중얼거렸는데 간간히 드리는 소리가 ‘산타마리아’였다. 뭔가 간곡히 기도드리는 모습이어서 나까지 경건해지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광장에 나가 엄청난 지붕을 자랑하는 뉴 바실리카 성당을 찍고 노란 지붕을 얻고 있는 과달루페 성당을 찍었다.
올드 바실리카
이곳 성당의 성모마리아는 토착민의 피부 빛을 가진 과달루페의 동정녀 마리아상이다. 이 원화는 현재 뉴 바실리카에 보관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러 이곳을 찾고 있다고 한다. 이 성모상 덕분이었을까 멕시코 인디언 원주민들이 빠른 속도로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정말 새로운 마리아를 보았다. 결국 종교도 민족의 어머니를 모시는 게 맞는 것일까?모르겠다.
'멕시코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미겔 이달고 신부는 멕시코 독립 전쟁을 시작하면서 독립군들이 과달루페의 성모가 그려진 깃발 아래 싸웠다. 이에 따라 과달루페의 성모는 멕시코를 상징하게 되었으며, 멕시코의 가정마다 과달루페의 성모상을 모시고 있다고 한다.
과달루페의 갈색피부의 성모
성당 위로는 성모발현지인 테페약은 아스텍의 여신인 또난띤을 모시던 곳인데, 후안디에고가 만난 갈색 성모에 의해서 원주민의 성지가 가톨릭의 성지로 바뀐 것이다. 변화무상한 멕시코의 얼글과 닮아 있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이 과달루페 성당은 성당 건물만 네 개나 되고 기념품 시장도 여러 개 있어 종교 마을 같은 느낌을 주었다.
성당 앞 상가?
점심을 먹기 위해 정문으로 나가니 넓은 광장에 노점으로 이런저런 물건을 파는 노점상으로 북적였다. 양옆으로 늘어선 식당들 호객행위를 하는 아줌마들?(우리나라 선전지 돌리는 분들 같은 느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여기서 밥을 먹으려던 우리는 계획을 변경하고 우버를 불러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점심을 건너뛰고. 오늘은 삼시 세끼를 잘 챙겨 먹을 수 있으려나 하면 마음속 걱정을 품고 우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