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십에 발견한 엄마의 신세계

by 한승희


나주에 계신 엄마에게 가려고 아침 일찍 서둘렀다. 우리부부와 동생 내외는 생신 상에 필요한 짐을 싣고 차에 올랐다.


삼 년 전. 엄마는 나주로 이사를 가겠다고 하셨다. 나주는 엄마의 오랜 친구인 박 집사 아줌마의 고향 동네였다. 우리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떠나셨다. 태어나서 팔십년을 산 서울을 미련 없이 뒤로하고.

엄마가 서울을 떠나려고 마음먹은 건 아마도 남동생 때문인 것 같았다. 아버지가 가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자리 잡히는 데로 모셔가겠다고 한 약속을 지켰다. 미국으로 떠날 때 엄마는 세상을 다 얻은 듯 했다. 그런 엄마가 삼년정도 계시다가 한국으로 오셨다. 여러 가지 이유로 미국생활에 적응 하지 못하신 것이다. 동생이 간곡히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시길 바랐지만 엄마도 단호했다.


그러나 엄마에게 아들 곁에 없이 보내는 시간이 감당하기 힘드셨던 모양이었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활기차던 분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모든 것에 흥미를 잃으셨다. 그럴 즈음 박 집사 아줌마가 시골집에 데려 갔고 자꾸 같이 살자고 권했다


엄마는 이사 가기로 마음먹기 삼사년 전부터 아줌마가 나주에 가실 때마다 함께 가곤 했다. 봄이면 배꽃을 보러 가셨다. 밤이면 더욱 환해지는 꽃의 신비로움에 흠뻑 취했고 흩날리는 꽃잎 사이를 지치지도 않고 걸어 다니셨다고 했다. 초여름이 되면 매실을 따러, 가을이면 배를 사러 다녀오셨다. 가실 때마다 새로운 활기를 얻었고 더 건강해 지는 것 같아 우리는 엄마가 나주 가는 것을 좋아했다. 가까운 친척이나 형제자매가 없는 엄마에게 그곳은 고향이나 다름없지 싶었다.


엄마가 살고 싶어 하던 집은 박 집사 아줌마네 옆집이었다. 낡은 기와지붕에 방이 두 개, 마루, 부엌 욕실이 차례로 있는 일자형 집이였다. 남향이라 볕이 잘 들었고 뒤 곁 너머로 넓은 배 밭이 자리 잡고 있었다. 처음 보는 순간 이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객지를 떠돌다 지쳐 돌아온 탕자의 심정처럼 그저 앉아서 푹 쉬고 싶은 생각만이 간절했다고. 시골에 연고도 없고 한 번도 서울을 떠나 살 생각을 한 적이 없었던 엄마의 마음이 어렴풋이나마 이해되었다,


나무에 아직 단풍이 머물러 있고 감나무엔 감이 남아있던 11월 초. 깨끗이 수리된 집에 엄마는 짐을 풀었다. 그나마 사진작가 생활을 하며 자유로이 떠돌던 둘째 남동생이 함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도 쉽게 발이 떨어지지않았다. 아니 솔직히 나도 남고 싶었다. 내 무거운 짐 다 내려놓고 오롯이 엄마 딸로 살고 싶었다, 늦기 전에 어서 가라고 밀어내는 엄마가 야속했다. 마음은 나주에 두고 몸만 서울로 데려왔다.


그곳에서 엄마는 어설픈 농부가 되었다. 가끔씩 택배 상자에는 고부라진 고추나 호박, 가지, 채 여물지 못한 옥수수, 정리되지 않은 깻잎 등이 들어 있었다. 고맙다는 전화를 하면 그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얘기하느라 통화는 한없이 길어졌다. 엄마에게 첫 경험인 것들은 오십이 넘은 딸에게도 처음이었다. 옆집으로 날아오던 택배상자가 늘 부러웠는데 이젠 더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한번은 오디 잼을 만들어 보내셨다. 오디를 주렁주렁 매단 뽕나무를 처음 본 엄마는 따고 줍고 먹느라 손과 입이 새까매지는 줄도 모르고 오디를 따는데 온 정성을 기울였다. 동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맛있고 좋은 열매를 거들떠보지도 않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혀를 끌끌 차셨다. 사실 그때쯤이면 그곳은 배나무에 봉지 씌우기 바쁜 철이었다. 그래서 오디가 온전히 엄마의 차지가 되었다. 엄마의 노동과 정성, 새로운 생활의 신선함을 넣어 만든 오디 잼은 엄마의 요즘 일상만큼 달고 상큼했다.


잠을 설쳐가며 밤새 미역국을 끓였다. 친정엄마의 여든 세 번째 생신. 가족들의 생일마다 항상 준비했었는데 정작 엄마를 위해선 처음 끓이는 국이었다. 그동안 참 무심한 딸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부터라도 미역국만큼은 내 손으로 직접 끓여야겠다고 다짐했다.


서울에서 일찌감치 떠났는데도 나주에 도착하니 열한시가 다 되었다. 우리는 앞마당으로 식탁을 내어 놓았다. 케이크를 가운데 놓고 잡채, 불고기와 준비해온 밑반찬을 놓았다. 그리고 미역국과 밥을 놓으니 푸짐한 잔치 상이 차려졌다. 설핏한 가을볕이 먼저 생일상 위에 올라와 있었다. 박 집사 아줌마와 동네 분들을 모시고 식사를 했다.


화장기 없는 까만 민낯에 하얀 머리, 웃음꽃 주름으로 깊어진 엄마의 얼굴은 그 어느 때 보다도 행복하고 편안해 보였다. 엄마는 나를 보며 평생 먹어본 미역국 중 제일 맛있었다며 엄지를 치켜 올리셨다. 엄마라는 짐과 아내라는 굴레를 벗고 먼 남쪽에 둥지를 튼 엄마. 나는 뒤늦은 엄마의 홀로서기가 믿음직스러웠다.


앞으로 엄마가 가꿔나갈 신세계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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