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철의 『판문점』을 읽고
나의 아버지는 함경남도 원산 태생이다. 사시는 동안 꿈에도 고향을 잊지 못하고 고향을 그리워하였다. 통일되면 제일 먼저 원산 앞바다 명사십리 모래를 밟을 거라고, 그때 너도 같이 가지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내가 이호철 소설가를 안 것은 대학에 다닐 때 선배의 추천으로 『판문점』을 읽고 나서였다. 그 당시에도 원산이 고향이고 실향민인 것이, 나의 아버지 같아서 마음을 끌었다. 통일되어 아버지의 고향을 갈 수 있을까? 하는 바람으로 소설을 읽었던 것 같다.
이호철 작가는 서울에서 북쪽이 가장 가까운 곳인 불광동에 살았다.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았지만 결국 생전에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채 2016년 9월 17일 우리 곁을 떠났다. 은평구에서는 분단 현실을 비롯해 민족, 사회 갈등에 관한 집필 활동을 하다 타계한 이호철 작가의 정신을 되새기고 그 뜻을 기리기 위해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 제정했다.
2017년 9월 17일 제1회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이 고인이 생전에 항상 그리워했던 고향 땅을 가까운 거리에 둔 파주 DMZ에 열렸다. 나도 그 역사적인 곳에 참석했던 기억이 났다. 그때 가보았던 DMZ에서 아버지의 고향이 보이는 것 같았다. 진작 아버지와 함께 이곳이라도 와 볼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와 마음 아픈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 그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이 흘렀다. 이호철 작가처럼 아버지의 고향 땅 가까운 곳에 살겠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나 역시 서울 여기저기에 살다가 은평구에 살기 시작한 지 벌써 15년째이다.
이호철 작가가 60여 년을 붙들고 있던 문학의 화두는 분단의 상처이지 싶다. 분단 현실과 근대화 과정에서 생긴 중산층 생활과의 연관 관계를 세밀하게 표현하는 작가의 소설적 특성이 잘 나타난 작품 중 하나가 『판문점』이라고 생각됐다.
다시 읽어보니 소설 속의 표현도 생소한 것이 많았다. 오빠를 오랍이라고 한다던가 취향을 취호로, 쌀쌀하게를 냉연하게라고 하는 것 등이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언어도 많이 변했다는 사실을 명료하게 잘 보여 주고, 당시의 언어습관을 알아보는 계기도 되어 흥미로웠다.
주인공 진수는 신문기자로 판문점에서 열리는 남북회담에 취재차 가게 된다. 판문점으로 떠나기 전날 형과 형수에게 인시를 간다. 그들은 분단된 조국의 현실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잃지 않기에만 골몰하는 사람들이다. 진수는 이들과 마주하기가 항상 불편하다. 판문점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도 마찬가지다. 외신기자들은 쓸데없는 농담이나 하고 진실로 한국 분단의 문제와 통일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낀 기자는 없는 것 같아 진수는 씁쓸하다.
판문점에 도착해 만난 북측의 여기자와 남과 북 체제에 관해 토론을 벌였으나 서로 공통점을 찾지 못하는 대화만 오갔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고 얼떨결에 둘은 옆에 있는 지프에 들어가 비를 피하게 된다. 젊은 남녀가 좁은 공간에 있게 된 어색한 기류가 잠깐 흐르는가 싶더니 비가 그치자 아무 일도 없는 듯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진수는 북측 여기자의 모습이 잊히질 않았다. 진수는 먼 훗날 판문점이 사라지고 판문점이라는 말 자체가 고어가 되어버린 때를 상상해보았다.
상상 속의 그날은 눈이 내리고 그녀도 취재차 판문점에 나와 있었다. 진수가 전날 만난 여기자는 남쪽 사람과 북쪽 사람이 만나면 으레 짓는 경계와 방어 태세를 취하며 진수를 피했다. 그런 여기자를 보며 진수는 쓸만한 사람이라 미소 짓는 상상으로 소설은 끝난다.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주인공이 북한 여기자와 대화하는 장면이라 볼 수 있다. 남과 북이라는 분단의 벽이 남과 여라는 만남을 통해 허물어지는 순간을 보여 준다.
진수가 북한 체제의 경직성과 획일화를 비판하면, 여기자는 물질주의가 팽배한 남한 사회의 방종과 무질서를 성토한다. 꿈속에서 다시 만난 여기자는 남한 사회의 자유로운 권태를 꼬집는다. 진수 또한 남한 중산층의 속물주의를 비판적 의식으로 바라보고 있으므로 북한 여기자의 말에 마음속으로 동조한다.
1961년 작품인데도, 이미 남한의 중산층은 통일에 대한 긍정적인 의식보다는 현재의 평온함을 방해받지 않는 쪽을 택하고 있는 사회 분위기가 지금과 차이가 없었다. 분단의 현실마저도 희미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세태는 2021년을 사는 지금과 다르지 않게 느껴져 놀라웠다.
결혼을 생각하고 있던 진수가 상상 속에서 다시 만난 북한 여기자에게 호감을 느끼는 마지막 장면 ‘기집애 요만하면 쓸만한데…. 쓸만해.’ 하는 부분에서 남과 여의 결합이 아닌 남과 북의 결합, 또는 통일의 의미로 읽히는 것이 나의 무리한 결론일지라도 나는 아직도 통일을 염원한다. 그래서 아버지의 고향 원산 앞바다의 명사십리를 꼭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