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이 되어 버린 글

by 한승희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려고 대화역 근처를 가게 되었다. 그곳에 가본지 아마도 6~7년은 되지 싶다. 3호선 전철을 타려고 하니 다시 만날 북한산이 생각나 첫사랑 만나러 가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때 집은 은평구에 직장은 정발산에 있어서 불광역에서 3호선을 타고 출근했었다. 모두가 서울을 향해 갈 때 나는 반대 방향으로 가다 보니 전철 안은 많이 붐비지 않았고, 특별한 경우 아니면 앉아서 갈 수 있었다. 특히 지상 구파발역에서 삼송역 사이에 있는 북한산이 보여주는 풍광은 언제 봐도 질리지 않았다. 봄에는 봄대로 여름이면 여름대로 계절이 주는 각각의 색깔은 경이 그 자체였다.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눈 오면 눈이 쌓인 대로 북한산은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자연이 주는 가식 없는 편안함은 생활에 찌든 때를 씻어 주었고 새롭게 일어날 힘도 주었다.


나는 매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잘생긴 북한산을 만나는 기쁨에 출근길이 가벼웠던 기억도 살아났다. 그 구간, 지하 구파발역에서 지상 구간으로 나가는 경계에서는 설레기까지 하였으니 말이다. 첫사랑 애인을 다시 만난다는 기쁨으로 잔뜩 기대하고 그 풍경을 마주하는 순간, 한껏 부풀었던 풍선에 피~익하고 바람이 빠지기 시작했다.

‘이건 뭐지. 여기가 왜 이렇게 된 거야!’

내 눈앞에는 P 사의 고층아파트가 떡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잘생긴 북한산 한 부분이 뚝 사라지고 없었다. 순식간에 맥이 풀렸다. 나도 모르게 외마디 신음소리를 내며 전철이 보여주는 높은 건물 뒤로 고개를 빼꼼히 내미는 북한산을 마주했다. 애인한테 배신당한 것처럼 속이 지글지글 끓어올랐다.


이럴 순 없어. 이건 아니다 싶었다. 자본의 논리가 우선이고 작은 땅에서 여럿이 살아가야 하는 게 현실이라해도 이건 너무했다. 변화도 좋고 발전도 좋다.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도 맞다. 그러나 집을 짓고 건물을 짓더라도 좀 더 철저히 환경영향평가와 같은 검증을 거치고 조망권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살릴 것인지 정도는 고민해서 지어야 하지 않았을까.


얼마나 위안받고 치유 받았던 자연의 그림이었는데.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 가운데가 뚝 잘려나가서 꽃 따로 꽃병 따로인 그림처럼 되어버린 북한산이 앞을 가로막은 건물 너머로 애처롭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자연적인 파괴는 다시 재생되지만, 인간에 의해 파괴된 것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고. 전철을 타고 지나면서 풍경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과 두고두고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었던 나의 조그만 소망이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지난날 이곳을 지나며 썼던 나의 글도 화석이 되어 남을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참담한 생각이 들었다.



구파발역과 삼송역사이


나는 3호선 전철을 타고 출근을 한다. 불광역에서 일산으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도심과 반대쪽. 그래서 내 출근길엔 러시아워가 없다. 덕분에 널찍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모자란 잠을 보충하기도 한다. 이렇게 여유 있고 편안한 출근 길이다보니 대기업 회장님이 부럽지 않다. 게다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라니. 구파발을 지나 지상구간으로 나오게 되면 만나는 북한산. 봄을 보고 여름을 즐기고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는다. 계절마다 병풍처럼 펼쳐지는 산의 모습을 보며 일상에 찌든 나를 매일 세탁한다.

맑은 날 산은 모든 것을 보여준다. 미끄러질 듯 가파른 맨살의 바위들, 구비치는 능선들, 겹겹의 산들과 그곳에 자리 잡고 사는 빼곡한 나무들. 그렇게 산이 속내를 보이는 맑은 날은 기분이 가뿐하니 좋다. 삶의 더께가 벗겨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안개 낀 날에 산은 완전 오리무중이다. 그런 날은 괜히 나도 답답하다. 이 나이에도 사는 것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지 싶어서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나뭇잎들을 보면 어수선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한갓지지 못하다. 비를 맞고 있는 산을 보자면, 산다는 것 자체가 슬픈 일이구나 싶어 우울해 지기도 한다.

때때로 회사생활이 지루하고 힘들게 느껴 질 때가 있다. 한 끼의 먹거리와 잠자리 그리고 사회적 체면을 위한 한 벌의 옷을 위해 꿈을 펼칠 시간을 미뤄 놓고 무의미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지하철 3호선의 구파발과 지축 사이에 있는 북한산은 고된 일상에서도 다시 꿈을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그토록 오랜 시간 한 자리에 있으면서 많은 사연과 풍파 속에서도 의연한 산은 내게 조용히 갈 길을 알려 줄 것만 같다.

19세기에 하버드를 다니던 소로우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2년간 월든 호숫가에 살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이 주는 진정한 행복에 대해 책을 썼다. 그 책에서 받았던 똑같은 감동을 문명의 한복판 전철에서 지금 나는 보고 느끼고 물들어가고 있다.

삼송역부터는 사람을 보며 수행한다고나 할까. 나와 함께 전철을 타는 사람들에게 눈길이 간다. 언제부턴가 한 인간은 하나의 우주를 품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한 생은 우주의 역사이니 얼마나 많은 서사를 간직하고 있겠는가. 나는 내 앞좌석의 어르신들을 유심히 보곤 한다. 내 나이도 이젠 만만치 않지만. 주름진 얼굴은 그들이 살아온 내력을 말하는 것 같다. 환하게 웃는 웃음 뒤에는 그간 고단한 삶을 녹여내는 힘이 있는 듯하다.

내 앞 쪽으로는 연세가 육십 넘은 분부터 칠십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어르신 댓 분이 나란히 앉아계신다. 서로 아는 사이인 듯 친밀해 보인다. 나는 그분들이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켰던 약장수랄지, 의료기구 파는 곳에 가시는 줄 알았다. 한때 우리 시어머니도 그곳에 빠져 쓸데없는 물건들을 사들여 골치를 썩인 적이 있었다. 눈만 뜨면 부리나케 나가셨다 해가 져서야 돌아오시곤 했다. 물론 한 보따리의 물건을 안고서 말이다. 그때 시어머님도 친구 분들과 어울려 다니셨기에 그러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대화를 들어 보니 모두 직장인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건물을 청소하거나 관리하는 일을 하시는 모양이었다. 출근길이라고 깔끔한 옷차림에 화장도 곱게 하셨다. 나이와 상관없이 예쁘게 보이고자 하는 본성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곤 했었다. 젊은이들보다 활기차고 행복해 보였다. 시골 농사일보다 힘들지 않고 함께하는 동료가 있어서 좋다고 했다. 집안에 있는 것보다 동네 노인정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했다. 거기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은 무엇보다도 든든한 것이란다.

가끔 경비하시는 남성분이 타면 차안은 야릇하게 술렁거린다.

“어매, 어쩐일이래유, 그동안 못 봐 쪼매 보고 싶었는데 오늘에서야 보네요.”

반가운 웃음과 함께 누군가 농이라도 하면 전철 칸은 까르르 웃음에 들썩거린다. 사춘기 애들 못지않은 묘한 기류가 흐른다. 그런 날 어르신들의 시간은 더 윤택해지는 것만 같다.

요즘은 모두가 장수하는 시대다. 건강이 주어진 만큼 우리는 일을 해야 한다. 내 앞에 앉아계신 어르신들도 활기찬 노후를 보내기 위해서라기보다, 생계비를 벌기위해 일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당당하다. 긍정적이다. 당면한 현실을 받아드리고 소소한 일상을 즐겁게 이어간다.

오늘도 나는 지하철 3호선을 탄다. 오늘은 북한산의 어떤 모습이 나의 마음을 건드려 줄지. 어느 어르신이 나에게서 잊었던 웃음을 다시 웃게 할지 은근히 기대하면서.


전차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하게 지상 구간인 구파발역을 지나 지하 삼송역으로 철거덕 거리며 들어갔다. 그 어둠 속으로 지난날 썼던 글이 화석이 되어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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