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매일 드나드는 카페 하나가 있다. 자랑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다. 행여 소문이 나서 발 디딜 공간도 없을까 걱정이다. 하지만 연애를 숨길 수 없는 것처럼 행복한 마음을 함께 하고 싶어 안달이다.
나는 행운아다. 정원은 없지만 커다란 숲을 통째로 가지고 있어서다. 우리 집 베란다에 서면 우람한 산이 가슴 가득 들어온다. 아침이면 새소리에 잠이 깨고 저물녘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휴양지가 부럽지 않다. 겨울엔 나목에 피는 눈꽃도 보고, 봄이면 뾰족하게 새 생명의 기운을 알리는 여린 새싹도 만난다. 초여름에 피는 아까시나무 꽃향기가 동네를 감쌀 때면 퇴근길이 가볍다. 가을에 알록달록한 단풍은 바로 설악 언저리로 날아가게 한다. 아파트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5분만 걸으면 은평 둘레길로 이어지는 등산로이다. 누가 여기를 서울이라 할까 싶게 공기 맛이 확 달라진다.
직장을 다닐 때, 숲은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알았다. 퇴근길 지친 몸을 이끌고 아파트 입구로 접어들면 온몸을 감싸는 숲 내음에 하루의 피로가 순식간에 달아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사계절 산은 나를 늘 유혹했지만 이런, 저런 핑계로 일 년에 너덧 번이나 가봤을까나. 그런데 재작년 느닷없이 찾아온 팬데믹으로 집에만 있게 되다 보니, 그제야 산을 조금씩 찾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상도 찍고 제법 숲 산책이 일상이 되었다. 올 새해는 ‘봉산’으로 해맞이를 하러 오르기도 하였다. 어스름한 새벽에 산을 뚫고 어렵사리 올랐건만 해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20년 동안 ‘봉산’ 밑에 살면서 이제야 찾아온 내가 서운했나 보았다.
오늘도 간편한 옷을 입고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따듯한 커피를 챙겨 들고 산에 오른다. 벌거벗은 나무에 말을 건다. 춥지 않냐고, 언제부터 여기 있었냐고 물어보면 대답 대신 시리도록 파란 하늘만 바라본다. 하늘에 맞닿아 보려는 건지 아래쪽 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어느새 얼었던 땅이 부드러워지는 것 같다. 메마른 나무껍질에 물기가 올라 유순해 보인다. 물오른 줄기 사이사이로 작은 꽃눈들이 인사한다. 저쯤엔 벌써 산수유 꽃들도 피어 있다. 진달래꽃도 수줍은 얼굴을 내밀고 생강나무 꽃도 환하게 웃는다. 발아래로는 제비꽃 광대나물 봄까치꽃이 번져간다.
산에 꽃만 있겠는가. 산언저리에 들어서면 산새들이 조잘대며 귀를 간지른다. 참새들은 나무 덤불 사이를 오가며 분주하고 까치, 까마귀, 직박구리들도 여기저기서 푸드덕댄다. 그 사이사이 산비둘기의 구수한 노래도 들린다. 겨우내 조용했던 산은 봄이 되자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듯 여기저기서 수런수런한다. 내 안에도 알 듯, 말 듯한 기운이 두둥실 떠다닌다.
어디선가 딱따구리의 나무 쪼는 소리가 들린다. 머리를 치켜들고 여기저기 나무를 살피니 오색딱따구리가 나무를 분주히 쪼아댄다. ‘와〜우!’ 자연 다큐멘터리가 내 눈 앞에 펼쳐지다니! 동영상을 찍으면서 여기저기 자랑할 생각으로 벌써 우쭐한다. 우리 뒷산에는 오색딱따구리를 비롯하여 청딱따구리, 쇠딱따구리 등 여러 종이 있다. 딱따구리 시리즈 촬영을 해 볼까 생각하느냐고 마음이 설렌다. 유튜브를 보면 자연에서 사는 동물들과 잘도 친하게 지내는 게 부러웠다. 누가 알겠는가, 나도 언젠가는 녀석들과 눈을 마주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을는지도.
조금만 더 가면 내가 꼭꼭 숨겨둔 그곳이 나온다. 4년 전 구청에서 조성한 제법 넓은 편백 나무숲이 있다. 막 묘목을 심었을 때, 키 작은 어린나무들이 땡볕에 듬성듬성 서 있는 걸 보고 잘 자라기를 바랐던 기억이 난다. 나무 사이로 오솔길을 내고 꽃밭도 다듬고 쉼터도 만들어 놓았다. 이제 묘목이던 편백 나무는 푸른 잎을 펼치며 내 키를 훌쩍 넘어 자라 땡볕을 가려줄 넉넉한 그늘도 만들어 준다. 나무가 내어준 그늘만큼 내 마음의 그릇도 넉넉해지기를 바라며 산길을 오른다.
숨이 가쁘게 산등성이에 다다랐다. 앞이 확 트인 산 아래 풍경이 가슴에 와 안긴다. 저 아래 우리 아파트도 나를 향해 다정스러운 눈길을 준다. 노곤한 다리도 쉬고 까칠한 마음도 가라앉힐 겸 어서 내 자리를 찾아간다. 불쑥 자라 우뚝 선 편백 나무 아래 빈 벤치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편백 나무는 아직 새잎이 나지 않았지만 유연해 보이는 저 가지들이 지친 내 마음을 감싸 안아주기에 충분히 온화하다. 준비해온 커피 텀블러를 꺼낸다. 숲속에서 커피 향은 더 진하고 커피 맛은 더 깊다. 마침 딱따구리가 스타카토로 나무를 쪼아댄다. 그 어떤 음악보다도 경쾌하고 아름답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 펼치고 읽는다. 새소리, 바람 소리,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 자연의 백색 소음이 독서에 몰입하게 한다. 잠시 책에서 눈을 들어 파란 하늘을 본다. 흐릿한 노안이 맑아진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이만한 카페가 어디 있을까 싶다. 일상이 채워지고 매일이 푸근해지는 이곳, 여기가 바로 자랑하고 싶어 입을 잠가놓을 수 없는, 나만을 위한 ‘플랜테이션 카페’이다.
날마다 다른 모습으로 맞아주는 나 홀로 카페. 계절 따라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하고, 싱그러운 나무들로 조화를 주고, 새들의 오케스트라연주로 카페 분위기를 연출하는 자연 카페, 여름이 오면 편백 나무 시원한 그늘 벤치에 앉아 냉커피를 마시며 매미 합창 소리를 배경음악으로 삼고 책을 읽을 생각을 하니, 벌써 마음이 뭉게구름처럼 파란 하늘로 솟아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