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간의 여행

by 한승희


코로나-19가 드디어 우리 집을 강타했다. 큰애가 걸리더니 둘째에 이어 나까지 감염되었다. 우리는 3차 접종을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확진자가 되었다. 생활의 질서가 깨졌다. 서로 마주치지 않으며 거실과 화장실 등을 공유해야 했다. 좁은 집에 방방이 갇혀 서로 시간의 차를 두고 거실로 나오고 화장실을 다녀야 했다. 평범한 실생활이 살얼음판이 되었고 기존 일상이 무너졌다.


바이러스는 온몸을 쑤시고 아프게 했다. 머리도 기분 나쁘게 지끈거렸다. 저절로 양미간이 접혔다. 목이 아파서 침 삼키기가 어렵고 목구멍이 간질간질하며 기침이 쉴새 없이 나왔다. 기침하고 나면 진이 다 빠지고 힘이 들어 침대에 쓰러졌다. 목소리는 쩍쩍 갈라져 사람의 소리인지 원숭이의 소리인지 구분이 안 될 지경이었다. 의사소통은 휴대전화 문자로 대신했다. 집안은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그 와중에도 좋은 것이 딱 하나 있었다. 아무도 침범하지 않는 나만의 공간. 그토록 원하던 나만의 방이 생긴 것이다. 게다가 때맞춰 밥을 차릴 일도 아침에 출근해야 하는 것까지도 면죄 받았다. 절대로 헤어나지 못할 규칙인 줄 알았는데 살다 보니 그 모든 것에서 해방되는 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챙기고 TV까지 있는 안방에 입성해 똬리를 틀었다. 내게 오로지 내게 허락된 일주일을 나에게만 집중해보려고 한다. 휴가 중에도 최고의 휴가를 받은 것이다.


첫째 날은 확진자가 되었다는 말에 겁이 나기도 하고 이러다 털고 일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에 잠을 설쳤다. 한편으로 무슨 일이 있겠냐만 하면서도 걱정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게다가 당장 당면한 문제가 밥을 어떻게 해결하냐였다. 남편은 삼시 세끼 밥을 안 먹으면 큰일 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평생 밥을 책임지던 사람이 몸져누워 있으니 말은 안 해도 속으로 무척 걱정되었을 터였다. 전화를 걸어 밥하는 법을 설명해서 법은 어떻게 하겠으나 갑자기 닥친 일이라 김치 외엔 마땅한 반찬도 없는데, 반찬은 또 어떻게 할 것인지 산 넘어 산이었다.

남편은 자기 밥 걱정하지 말고 몸조리 잘해서 빨리 나을 생각이나 하라며 다정하게 말해주어 고마웠다. 저녁은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까지 쳤다. 방 안에서 들으니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 만에 남편이 돌아왔다. 우리가 잘 가는 국밥집이 있는데 그곳에 가서 포장을 해왔다.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는 국밥과 함께 밥을 방마다 넣어 주고는 남편도 먹었다. 직접 해준 것도 아니었지만 맛있었다. 나 없으면 굶어 죽을 줄 알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맞는 말이었나 보다. 사 먹던 대강 해 먹던 밥 문제가 풀리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첫날은 밥걱정하느라고 아픈 건지 아닌지도 모르고 지나갔다.


둘째 날이 되니 목이 부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침 삼키기도 힘들고 열도 났다. 온몸이 기운이 없고 늘어졌다. 약을 먹어도 목 아픈 것이 가라앉지 않아 다시 약을 지어왔다. 삭신이 쑤시고 아프고 숨쉬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저 방문을 못 벗어난다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자 진짜로 겁이 나기 시작했다. 다행인지 약을 먹으면 잠이 들어서 아픈 것과 쓸데없는 생각을 덜 할 수 있어 견디기 수월했다.


셋째 날 아침을 먹고 나서부터 목 아픈 것도 몸살 기운도 많이 좋아졌다. 방안의 이것저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TV를 켜고 보고 싶었던 영화를 검색했다. 메릴 스트립의 <<줄리 앤 줄리아>>란 영화를 찾아서 보았다. 누군가가 블로그에서 시간은 비고 생각은 많고 배는 고프고 외국도 가고 싶을 때 보면 좋은 영화라 해서 보았는데 배가 더 고파졌다. 그 외에도 시리즈로 상영됐던 <<레드>> <<블루>> <<화이트>>까지 보면서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축복받은 시간을 보내며 즐거웠다.


넷째 날에는 몸과 마음이 훨씬 좋아졌다. 툭툭 털고 일어나 일상 생활을 해도 지장이 없을 정도로 말짱한 기분이었다. 어제 진종일 영화를 봤으니 오늘은 노트북을 켜고 브런치도 읽고 유투브도 보았다. 그도 시시해지면 책꽂이에 있는 책들을 꺼내 읽었다. 책읽기도 지루하면 하모니카를 꺼내 불었다. 오래전에 배운거라 많이 잊었지만 좋아했던 개똥벌레는 여전히 잘 불려 기분이 좋아졌다. 혼자서도 잘 놀았다.


다섯째 날에는 좀이 쑤시고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 마음을 누르려 이번에 새로 시작한 문인화를 그리려고 먹과 연습지 붓을 꺼내고 밖에 살짝 나가 물을 떠 왔다. 남편은 나가고 애들도 방에 갇혀있어 거실은 적막강산이 따로 없었다. 애들 방을 노크해 볼까 하다가 그냥 들어 왔다. 종이를 펼치고 전에 배운 목단을 그렸다. 꽃잎을 그리고 잎을, 잎맥을, 꽃술을 그리며 집중하니 무료함이 날아가고 그림에 몰두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덕분에 그럴 듯한 목단 다섯 송이가 칙칙한 방에 피었다.

여섯째 날에는 두 딸이 격리 해제되었다. 둘이 밖에서 왔다 갔다 하는 소리를 들으니 이제야 사람 사는 집인가 싶다. 나가고 싶은 맘을 누르고 책도 읽고 그도 지치면 TV도 보고, 하모니카도 불어보고 멀티로 놀다 보니 하루가 저문다. 내일이면 나도 오롯이 나만의 세상에서 나가야 한다. 사사로운 걱정 없이 일상을 벗어나 즐기다 보니 벌써 여섯 번의 해가 진다. 살면서 언제 한번 이토록 자유로웠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좁은 방안에 갇혀 행동은 구속되었지만, 마음은 자유로웠던 나만의 일주일간의 휴가가 끝이 났다.

요즘 들어 부적 나만의 방이 있었으면 하고 소망했다. 얼마 전 친구를 만났는데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가 길어졌다. 친구는 자기만의 방이 생겼다고 자랑했다. 큰아들이 독립하면서 아들이 쓰던 방과 책상, 노트북과 복합기를 엄마에게 주고 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은 시간 뭐든 열심히 하고 싶어진다고 상기된 얼굴로 얘기하였다.


그녀는 자기만의 방에서 유튜브를 통해 시 낭송 방송을 하며 세상과 소통하며, 새롭게 배운 하모니카 연습도 했다. 어질어도 치우지 않아도 되고 작업하던 것을 고스란히 두고 나가도 건드는 사람 없으니 세상 편하다고 했다. 게다가 독립한 아들이 엄마의 작업을 응원한다는 말을 할 땐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갔다. 부러웠다.

또 한 친구는 아들, 딸 모두 결혼시키고 나니 오롯한 자기만의 방이 생겼다고 좋아했다. 몇 날 며칠을 치우며 가슴 뛰는 기쁨을 느꼈다고 했다. 딸이 시집갔을 때는 딸 방에 이런저런 잡동사니들이 쌓아놓아 창고가 되어버려서 치울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아들마저 결혼해서 떠나니, 버릴 것 버리기도 쉽고, 정리하기가 한결 편해졌다고 했다.

20대에 읽었던 『머나먼 쏭바강』을 쓴 소설가 박영환의 단편소설 『지상의 방 한 칸』이 생각났다. 가난한 작가가 글만 써서 밥을 먹고 살아야 하는 전업 작가의 현실에 대한 기록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며 변두리 지역을 전전하던 작가의 체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업 작가로 글쓰기 할 작은 공간 하나 갖기 힘들었던 한 소설가의 체험이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나만의 방이 없다. 어렸을 때 우리 집은 방 두 칸 자리가 고작이었다. 사 남매가 겨울에는 한방에서 자고 여름에는 마루와 방에서 나누어 잤다. 책상도 하나에 서랍만 각자 나누어 가졌다. 중학교에 가고부터는 여동생이 항상 동거인이었다. 결혼해서도 시부모님을 모시게 되어 나만의 공간은 언감생심 생각할 수도 없었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동안은 나조차 잊고 살았던 세월이었다. 이제 욕심을 내어보지만, 여전히 남편과 동거인으로 온전한 나만의 방을 가지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이것저것 배우다 보니 점점 나만의 물건들이 늘어났다. 그림 도구며 노트북들을 널어놓고 쓰고 그것들을 간수 할 마땅한 장소가 없는 것이 매번 아쉬웠다. 도떼기시장의 노점상 아줌마가 따로 없었다. 그런 차에 들은 친구들의 얘기는 더욱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마음속에서 아우성쳤다.

오직 빈방 하나 갖고 싶다. 내 것만이 존재하는 온전한 나만의 방, 채워진 적이 없는 공간에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아니 보여 준 적 없는 나만의 방을 욕망한다. 방안에 들어서면 오직 나만 맞이해주는 그런 방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예기치 못한 바이러스로 인해 혼자만의 오롯한 공간에서 일주일간의 여행을 했다. 비록 병중이었지만 나와 마주했던 일주일의 시간. 다시 현실에 돌아가더라도 잠시 머물렀던 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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