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MMCA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을

by 한승희


예약시간에 딱 맞춰 도착해서 부랴부랴 뛰어서 들어갔다. 숨도 돌리기 전에 복도를 따라 전시된 글을 읽고 그림을 보며 발길을 옮겼다.

그를 잘 알고 있는 익숙한, 그래서 짠한 그림들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림에 대한 열정을 시대가 알아주지 않아 생활고에 시달리는 가난한 화가 이중섭. 아이와 아내를 끔찍이 사랑하는 가장.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며 통절한 그리움을 품고 살던 사내.

그는 엽서에 은박지에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였다. 때론 천진하게 때론 환상적으로 그리움은 절망보다는 희망을 좌절보다는 용기를 주며 사랑하는 이에게 달려가는 애틋함을 그림 속에 잘 표현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구상은 말했다. '중섭처럼 그림과 인간이, 예술과 진실이 일치하는 예술가'는 없다고. 그는 가족을 사랑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예술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현실에 발을 잘 붙이지 못하고 방황하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그래야 우리를 감동하게 하는 작품을 남기거나, 비범한 천재성을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이중섭이 보여주듯이 가족을 위해 그림을 그리며 불우한 생활고를 감수하면서 처절하게 그린 그림이어서 그의 예술혼이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의 가족을 향한 사랑과 안타까움이 그림에 녹아 있어 지금 우리의 가슴에 진한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을 그리던 시절은 불우하고 어려웠지만, 가족을 보듬는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어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이중섭의 그림을 접하는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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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한 아이들의 표정, 밝은 색깔은 가족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담고 있어서인지 행복하고 따뜻함이 넘쳐난다. 그림을 보며 그의 장난스러움, 천진함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외람되게도 어쩐지 나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친밀감이 그를 더욱 가깝게 느껴지게 한다. 그림을 보는 내내 그때 지금처럼 그를 알아봐 주었더라면 더 좋은 그림을 그렸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고통을 감내하며 현실을 잊으며 버티었을 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연민의 마음뿐인 것이 미안함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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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그림들이 엽서화 은지화여서 그 살뜰함이 더욱 잘 전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특히 은지화의 경우, 담배 은박지에 철필, 못등으로 윤곽선을 그리고 검정 물감이나 먹물을 솜이나 헝겊으로 문질러 선이 보이게 했다. 그 결과로 종이의 광택과 음각선에 묻힌 짙은 선이 상감기법을 연상케 한다고도 한다. 미술적 기법인 모르지만 상당이 독특하고 창의적인 작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담배 속지인 은박지에 그림을 그릴 생각을 하였는지, 미술의 한 장르가 될 것도 같다는 생각이다. 미술이 뭔지 잘 모르는 관객의 무지한 발언이겠지만 말이다.


KakaoTalk_20221013_210816290_06.jpg 이중섭 다섯 어린이


엽서화에서 보여주는 글이나 그림을 보면 그는 매우 로맨티스트라 생각된다.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그의 간절한 마음이 보이는 편지들은 지금을 우리에게도 마음 떨리는 연서인 것이다. 아마도 함께하지 못하는 모든 것에 대한 아쉬움 그리움들이 점철된 한 가장의 슬픔이,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리라.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생활하면서 서로 지겨워하고 멀어지는 부부들에게 조금의 거리를 두어 보면 어떻겠냐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일갈하고 있을 때 잘하면서 지금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KakaoTalk_20221013_210816290_25.jpg 아내 남덕에게 보내는 편지


대작도 없고 작품이라기보다는 소품에 가까운(그림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내가 든 생각이다.) 아기자기함이 그를 더 편안하게 생각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좀 더 넉넉하고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면 그는 행복했을 테지. 이중섭을 생각하면 박수근 화가가 겹쳐지고 우리 역사적 현실이 그들 삶에 드리운 그늘이 자꾸 보인다.

그래도 그는 승리자다. 아직도 그의 그림을 아끼고 감상하는 자들이 있고 그의 그림에서 안식과 기쁨을 얻는 나 같은 이들이 많을 테니 말이다.


화랑을 돌아보고 미술관 밖으로 나오니 짧은 겨울 해가 지고 있다. 서편하늘 노을이 지치지 않고 흐르는 나의 세월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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