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裸木>> 야간 전시를 보기 위해 나서는 길은 첫사랑 만나러 가는 것만큼이나 설렜다. 전시의 제목은 박완서의 소설에서 따왔다고 했다. 예전 박완서의 소설 『나목裸木』을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번 전시는 박수근의 생애와 자취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기획 했다는 보도를 읽고 박수근 화가의 또 다른 모습이나 내면의 새로움을 알 수 있을 거란 기대감까지 생겼다.
전시는 19세에 그린 수채화에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제작한 유화까지 그의 생애 동안 그렸던 작품과 자료를 소개하고 있다. 게다가 다분히 개인적인 편지에서 지인들에게 직접 그려 보낸 연하장 등 자질구레한 소품까지 알뜰하게 전시하고 있어서 무척 인상 깊었다. 덕분에 박수근이란 화가를 훨씬 가깝게 느끼게 되었다.
박수근 화가는 울퉁불퉁한 캔버스 질감에 우리네 소박한 생활을 절제된 선으로 그리고, 색도 회색이거나 황토색이 많아 서양화가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분위기가 강한 화가로 알고 있다. 색도 많이 쓰지 않으면서 마음의 감흥을 이끌어 내어 준다. 우리 엄마이거나 언니, 누나, 그리도 동네 사람들이 그림 속에서 친근하게 살아난다. 반갑게 인사하면 그저 함박웃음 짓던 우리네 이웃들이다.
전시는 총 4부로 기획되었다.
1부 ‘밀레를 사랑한 소년’으로 부제는 독학이다. 12세 때 밀레의 그림을 보고 화가가 되길 결심한다. 그림 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꿈을 접은 채 생활 전선에 가야 했다.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했다. 밀레가 그랬듯이 주로 농촌 풍경과 일상을 그렸다. 같은 대상이라도 반복해 그리면서 가장 진실한 모습을 화폭에 담고자 노력했다. 그 노력의 결과로 그는 18세 때 ‘조선 미술 전람회’에서 입선을 했다. 전시 1부에서는 초기작과 작업에 밑바탕이 된 화집, 자료 등을 소개하고 있다.
2부 ‘미군과 전람회’에는 ‘전후(戰後) 화단’이 부제이다. 그의 전람회 출품 대작과 첫 개인전 작품들을 모아 놓았다. 특히 미군부대에서 초상화를 그리던 박수근이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버리고 생계를 위한 그림을 그리던 곳이기도 했지만, 다른 면에서 보자면 그의 작품을 아끼는 후원자들을 만난 곳이기도 했다. 1962년 용산 주한미군 사령부 도서관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다수의 그림이 주한미군과 외국인에게 팔렸다. 이번 전시에 처음 선보이는 ‘노인과의 대화’도 학생들을 데리고 내한했던 교수가 사서 소장하고 있다가 미국 미시간 대학교 미술관에 기증된 것이라 한다.
3부 ‘창신동 사람들’은 서민이 부제이다. 그림 작업의 전성기였던 창신동 시절의 이야기로 서울 풍광과 주요 작품들을 담았다. 그의 아들 박성남의<<우람한 손을 가진 나의 아버지>>에서 회고한 것을 빌리자면 아버지의 화실은 마루였고, 아버지의 화실이자 마루는 동네 아주머니와 각종 행상인이 잠시 걸터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쉬어가는 쉼터이기도 했고, 외국인들이 아버지의 그림을 구경하던 화랑이 되기도 했고, 동네 개구쟁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하며, 어머니의 빨래터이기도 했던 전천후 생활 터전이었다고 한다. 화가가 자신의 작업실 없이 그 모든 조건을 수용하며 그린 철저한 작업 의식에 존경심이 저절로 생겼다. 변변한 모델 없이 일상의 모든 것이 모델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이를 귀히 여겨 그려낸 화가의 작업 덕에 지금의 우리가 그 시절을 들여다보는 호사를 누린다.
4부 ‘봄을 기다리는 나목’에서는 그의 주된 작품 판매처였던 서울 을지로 입구 반도화랑의 재현과 마거릿 밀러 같은 외국 컬렉터와의 교류를 실물 편지와 작품 등으로 소개한 것도 새롭게 눈여겨 볼만했다.
‘한국적 화가’, ‘이웃을 사랑한 화가’, 그리고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하지만 ‘가난하고 불우했던 화가’. 이토록 많은 수식어로 불렸던 화가. 그리고 우리 가까운 이웃들의 삶을 녹여낸 그림으로 위로를 주던 화가 박수근. 그를 만났다. 양구에 있는 그의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보다도 더 감동적이었다. 아마도 1950~60년대 서울의 거리 사람들을 찍은 한영수 사진작가의 다큐멘터리 사진과 박완서의 소설, 수필 등이 함께 전시되어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역대 최다 작품과 자료가 망라된 전시라 한다.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유화, 드로잉, 삽화 등 174점이 새롭게 선보였다. 1933~34년 수채로 그린 꽃과 풍경화, 피카소 레제 같은 입체주의 작가로부터 영향받았음을 보여주는 숱한 베끼기 습작들. 그가 소장했던 조선 향토색 깃든 관광용 그림엽서 그리고 생계를 위해 그렸다는 잡지 표지화 등이 그렇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모란 그림에서 멈춰 섰다. 사군자 그림 공부를 시작했는데 지금 모란을 그리는 중이다. 박수근 화가의 모란을 모사해 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사진을 찍었다. 언제 그리게 될지 모르면서도 말이다.
박수근의 화법은 앞에서도 말한 바 있지만 독특하다. 언제나 들여다봐도 한지를 구겨 넣은 것 같았다. 그런데 그는 열 겹 정도의 유화물감을 바르고 또 바르는 방법으로 적게는 4겹에서 많게는 22겹 까지 덧칠하면서 오래된 나무껍질이나 돌 같은 작품 표면을 표현했다고 한다. 유화물감으로 만들어 냈다고는 생각 못했다. 질감에 이어 색감도 흰색이거나 회색 황토색 같은 것만 보여서 물감을 아끼느라 그런 것이 아닌가 추측했었는데 오히려 더 많은 물감을 겹칠 해서 나타낸 질감이라는 사실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기본적인 화가의 교육을 받지 않았으면서도 부단한 노력으로 자신만의 개성적 표현을 만들어 낸 우리의 화가 박수근. 그의 그림에 대한 자세를 보고,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스마트폰에서 찾고 곧바로 잃어버리는 나의 가벼운 일회성 생활을 반성했다.
이번 전시를 보며 새롭게 박수근이란 화가를 다시 만난 것 같은 건 다른 때보다 공부를 하고 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야간 전시여서 더 감상적이기도 했고, 동행이 사랑하는 딸이기도 해서 더욱 훈훈한 관람이었다. 불 켜진 고궁의 따스함을을 사진에 담고 그 사진 속에 나와 딸을 넣으면서 도심 한복판에서 제대로 된 힐링의 시간을 가진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