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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랜맨 Oct 22. 2018

책방이라는 이름의 보물섬

세상 모든 독립서점들을 응원합니다

책방이라는 곳에서 나는 평소와는 다른 사람이 된다. 여기서 말하는 책방이란 교보문고나 반디앤루니스 같은 대형서점이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방 하나 크기에 온갖 책을 쌓아놓고 파는 책방을 뜻한다. 평소의 나는 소비의 제1원칙을 가성비로 설정해놓은 사람이다. 4캔에 만원씩 하는 편의점 수입맥주를 포기하고 대형마트에서 6캔에 5,500원짜리 맥주를 사고, 물건 하나를 살 때에도 온갖 쇼핑몰에서 쿠폰을 덕지덕지 붙여가며 최저가를 찾는 사람 말이다. (커피 원두를 사다가 내려 마시기 시작한 것도 고상한 취미를 즐기거나 맛 때문이 아니라, 돈이 덜 들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작은 책방에 들어선 순간부터는 달라진다. 인터넷서점에서 사면 10% 저렴하게 살 수 있고 포인트까지 쌓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굳이 제 값을 주고 책을 구입한다. 신용카드 적립이나 할인 혜택도 포기하고 현금으로 결제한다. 이건 정말 그 책방이 오래오래 그 자리에 있었으면 하는 순수한 마음 때문이다.


내 장래희망은 책방 주인이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30대 중반에 장래희망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좀 어색하긴 하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꼭 하고 싶은 일이니 사실 장래희망이라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기도 하다. 이러한 연유로 작은 책방에 갈 때마다 여기가 내 가게라면, 하는 상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따사로운 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온다. 내가 이 시간에 회사가 아니라 여기에 있다니 행복함에 젖었다가, 햇빛에 반사되는 작은 먼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밝은 곳이나 어두운 곳이나 다를 바 없이 존재하는 먼지이지만, 밝은 곳에서는 유독 그 존재가 돋보이니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놈의 먼지들은 너무나 정직해서 청소를 하지 않으면 딱 그만큼 쌓인다. 더구나 책장과 책 사이의 작은 공간은 먼지가 웅크리고 있기에는 최적의 공간이다. 손님이 책을 꺼냈을 때 그 위에 먼지가 가득 쌓여있다면 오랫동안 안 팔리고 있던 책이라는 생각에 왠지 사기 싫어질지도 모르겠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결국 청소를 할 수밖에 없다.

힘들게 청소를 마치자 어느덧 점심시간. 회사원이었던 때에는 식사를 하고 잠시 쉬는 시간이었지만,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개미 한 마리 안보이던 길가에 사람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하는 기적의 시간이다. 문화생활을 해보겠다며 동네의 작은 책방을 찾았는데, 그곳에서 짜장면 냄새가 나고 있다면 손님의 로망을 깨트려버리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식사 때를 놓쳐버렸다. 별로 소득은 없었지만 말이다. 차라리 밥이라도 맛있는 걸로 먹을걸 후회가 밀려든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여기서 이러고 있나 서러움이 복받친다. 어제 친구 녀석에게 온 문자메시지가 갑자기 생각났다. '책방 돈 벌려고 하는 것 아니잖아?' 이 말 뒤에는 '네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대가로 힘든 건 감수해야지.'라는 뜻이 숨어있음을 알기에 함부로 남들 앞에서 투덜거리기도 힘들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싶은 건데, 그게 그렇게 큰 욕심일까.

그 순간 문이 열리면서 손님이 들어왔다. 커플일까, 부부일까. 넓지 않은 공간을 여기저기 둘러보며 잠깐 눈이 반짝였다가 배시시 미소 지었다가 시시하다는 표정으로 변한다. 저마다의 이유로 매대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있는 녀석들이지만, 한데 모아두니 마치 내 음악 재생목록이라도 공유하고 있는 듯 왠지 모르게 부끄럽다. 한참을 둘러보던 그들은 표지가 예쁜 책을 꺼내 들고 사진만 몇 장 찍더니 이내 나가버렸다. 하아.


이런 상상을 하다 보면 책을 사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열악한 독립서점들의 현실을 마주하면 따뜻하게 손이라도 잡아주면서 응원하고 싶다. 내가 손을 잡는 것이 썩 내키지 않으실 것 같아서 대신 책이라도 사면서 응원하는 것뿐이다. 하고 싶은 일을 택했다는 이유로 그것이 곧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난생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당신을 응원한다고. 책방을 열어줘서 고맙다고.


@ 연남동, 서점 리스본


이런 작은 책방에서는 시중의 대형서점에서는 보기 어려운 독립출판물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 중에는 이미 서점을 운영 중인 분들의 이야기라던가 책 그 자체와 관련된 글들도 많은데, 이런 책들을 읽다 보면 주변의 다른 독립서점들을 소개한다거나 함께 모임을 가졌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책방을 차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책방을 찾았는데 거기서 책방을 차린 사람들이 쓴 또 다른 책방에 대한 소개가 담긴 책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어휴, 복잡해.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더 깊숙하게 빠져버리는 늪처럼 아무래도 여기서 평생 빠져나가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책이 좋은 건지 책방이 좋은 건지 아니면 그냥 회사를 그만 둘 생각에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한 번 해봐야지, 책방.


아직은 먼 꿈이긴 하지만 책방을 차린다면, 왕복 4차선 대로변의 번듯한 빌딩까지는 아니어도 때때로 자동차가 지나다닐 정도의 길가 조그마한 건물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요즘 독립서점을 보면서는 단순한 위치보다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콘텐츠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위치나 규모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책방들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물론 매일 생존의 위기에서 버둥거리고 있는 것임은 익히 들었지만.) 이들은 좁고 좁은 골목길에 숨어 있으면서도 숨이 턱까지 차오를 정도로 언덕길을 올라야 하면서도, 그곳에서 각각의 매력을 빛내고 있다. 골목길 벽에 누군가가 붙여놓은 사진들이 작은 전시회를 열고, 언덕 위 건물들 사이로 남산타워가 보이는 그곳에서 말이다.


책방에서 내가 좋아할 만한 책을 찾아내는 것이 보물 찾기라면, 도심 한가운데에서 내 취향을 저격할 책방을 찾는 것은 보물섬 찾기 정도는 되지 않을까. 이번 주말에도 새로운 보물섬을 찾아 떠나야겠다.


@ 연남동과 해방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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