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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랜맨 Oct 14. 2018

회사를 다니며 느끼게 된 사실

사실까지는 아니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

# 1.

애사심. 보통의 직장인들은 참 갖기 힘든 그것. 혹자는 월급을 받는 날 만큼은 애사심을 느끼게 된다고 하지만, 회사가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회사를 굳이 사랑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진심으로 회사를 사랑했던 때가 있다. 사람 간의 사랑으로 따지면 콩깍지가 씐 순간. 바로 취업준비생 때, 그중에서도 특히 면접을 준비하고 있었을 때다. 회사의 직전 1년간의 뉴스를 모두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홈페이지의 구석 중에서도 구석에 자리 잡은 인재상까지 달달 외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심지어 회사에 붙여만 주면 1년 정도는 월급 안 받고도 다니겠다는 공약도 내세웠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면접에서까지 이야기하지는 않았으니 현실화되지는 못했다. 다행이다.

막상 회사에 들어오고 나면 회사 홈페이지는 들어갈 볼 일이 없다. 고객 안내 등 업무적인 이유로 홈페이지를 가끔 열어보는 경우는 있으나, 회사 소개나 인재상처럼 업무와 무관한 곳은 아예 발길을 뚝 끊게 된다. 이제 와서 인재상을 살펴보면, 이런 사람이 도대체 회사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질 정도다. 아무리 취업이 힘든 시대라지만, 우리도 못하는 것을 신입사원들에게 바라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1년 정도 월급 안 받고도 다니겠다는 공약은 정말 큰일 날 생각이었다는 것을 회사에 출근한 지 3일 만에 깨달았다. 내가 회사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건지 미래의 내 수명을 갖다 바치는 것인지 모를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 이야기를 회사 입사동기에게 하자, 왜 그걸 깨닫는데 3일이나 걸렸나며 나를 곰탱이 취급했다.


# 2.

신입사원에게 기대하는 바는 많지 않다. 새로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일정 기간 동안 지점 또는 본사 각 부서에 배치되어 현장 경험을 쌓게 되는데, 그때마다 내가 해주는 말이 바로 저것이다. 많은 후배들이 큰 꿈을 가지고 회사에 들어오고, 그중 일부는 '일 잘하는 똘똘한 녀석이 들어왔다'는 평을 듣기 위해 무리를 한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의 노력을 회사가 알아주지 않는다며 실망하고 좌절한다. 나는 힘든 경쟁을 뚫고 회사에 들어온 후배들이 회사의 시스템에 적응할 때까지는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신입사원이니까 실수할 수 있고 모를 수도 있다.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겠답시고 실수를 숨기거나 모르는 것을 아는 체 하거나, 심지어 어설픈 정치질까지 하려는 것을 보면 안타까움을 넘어 화까지 나기도 한다.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신입사원 교육은 실무와는 크게 벗어나 있는 경우가 많다. 현장에 실제로 배치되면 새로 배워야 할 것들이 태산이다. 교육을 진행하는 직원들조차 같은 회사의 각 부서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떻게 일하는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러니 교육에서 잠깐 배웠다고, 인터넷 커뮤니티 어디선가 봤다고 어설프게 나설 필요가 없다. 그냥 모르는 것이 생길 때마다 물어보고 그 대답을 잘 적어두는 것이 제일이다.


# 3.

대학교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두 군데의 회사에 붙었는데 어느 곳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두 회사가 각각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인지 설명하려던 순간, 그 말을 끊었다. 일단 요즘처럼 취업이 힘든 시기에 행복한 고민에 빠진 것을 축하했다. 그리고, 어차피 어떤 회사에 가서 무슨 일을 하게 되던 힘들 테니 둘 중에 돈 많이 주는 곳으로 가라고 대답했다. 반은 농담이었지만 반은 진심이었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 일이라는 것은 고통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즐겁게 돈을 벌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사실 그런 일은 많지 않다. 여행작가나 유튜브 크리에이터 정도일까. 사실 이들도 밖에서 봤을 때 즐거워 보이는 것이지 정작 본인들 입장에서는 고통스러울지 모르겠다. 여하튼 회사를 다니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니, 회사에 있는 시간 대비 조금이라도 더 큰 보상이 있는 곳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덜 일하고 덜 받는 것과 더 일하고 더 받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지만, 최소한 더 일하고 덜 받는 선택을 할 필요는 없다.

물론 최근에는 조금 달라지긴 했다. 돈을 덜 받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배울 수 있다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이야기는 다음 단락에서 좀 더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자.


# 4.

흔히 뱀의 머리보다는 용의 꼬리가 되라는 말을 한다. 특히 취업의 세계에서는 이것이 더욱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을 가는 것은 쉽지만,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가는 것은 어렵다는 인식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같은 업종이나 직무라면, 대부분의 경우 작은 회사보다 큰 회사가 더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더 큰 보상을 제공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여러 업무를 경험하며 어느 정도 기본기를 다졌다고 생각하는 지금. 오히려 스타트업에서 기존에 없던 체계를 만들어가면서, 내 전문분야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대기업은 많은 예산을 들여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다. 반대로 위 결정권자들을 설득하여 내가 원하는 것들을 현실화하기에는 너무나 움직임이 둔하다. 주니어 직원의 입장에서는 이미 위에서 결정된 사항을 실무 측면에서 진행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일에서 자아실현을 찾으려고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 5.

흔히 입사 3년, 6년, 9년 차에 퇴사하고 싶은 충동이 든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3년 차에는 영업에 막 재미를 느끼고 있었고, 6년 차에는 영업직에서 지원직군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딱히 퇴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상태로 두 차례의 시기를 넘겨온 셈이다. 그때에만 해도 입사동기 중 누군가가 그만둔다고 하면 그 친구들을 패배자 또는 도망자라고 생각했었다. 내심 잘 적응하고 회사에 다니고 있는 내가 기특하기도 했다.

이제 입사 8년 차. 100여 명의 입사동기 중 이제 50명이 채 남지 않았다.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퇴사를 한 친구들은 패배자도 도망자도 아니었다. 그들이 엄청난 용기를 보여준 것이라는 것을 최근에야 절실히 느끼고 있다. 앞서 입사 3년, 6년 차 때 경험하지 못했던 퇴사 충동을 한 번에 몰아서 느끼고 있는 요즘, 아마 9년 차 퇴사 충동은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회사가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라는데, 나는 정말 회사를 등지고 지옥으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까. 일찌감치 지옥으로 나간 친구들이 이제는 다른 회사로, 공무원으로, 번듯한 개인사업자로 각기 다른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다. 그들이 각자의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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