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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랜맨 Oct 11. 2018

집멍이와 산책냥이

휴일을 보내는 서로 다른 방법

나는 휴일에 집에 있는 것보다는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집에 있으면 뭔가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시간만 가버리는 것 같아서 너무나 아쉽다. 그렇다고 밖에서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책 몇 권과 노트북을 챙겨서 무작정 나와 걷다가 카페에 들어간다. 창문이 커다랗거나, 1층이 내려다보이는 복층이거나, 서점에 딸려있어서 조용하거나, 아니면 그냥 커피 향이 좋거나 하는 각자의 이유로 선택된 공간들이다. 책을 읽기도 하고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뭔가 번뜩 떠오르면 노트북을 열어서 글도 쓰면서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내 아내는 나와는 정 반대다. 집에서 쉬면서 평일에 써버렸던 에너지를 충전한다. 우리 집이 북향임에도 불구하고,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빛 때문에 눈이 부실 때까지 침대에서 꼼짝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를 데리고 집 밖으로 나가려면 그럴듯한 아침식사를 준비해서 냄새로 솔솔 유혹하거나, 아내가 보고 싶어 했던 그것이 알고 싶다 VOD를 거실에서 소리를 키워 틀거나, 아니면 소리를 빽- 지르면서 통째로 들어 올리는 방법이 있다. 이렇게 일어나는 데 성공하면, 그다음부터는 내가 원했던 대로 함께 집 밖을 나선다. 아내는 꼭 한 마디를 덧붙인다.


"나는 집에서 쉬면서 충전하는 스타일인데, 오빠가 나가는 걸 좋아하니까 같이 나가 주는 거야. 그러니까 손 꽉 잡아! 보조배터리 역할을 제대로 하란 말이야."




나는 강아지를 좋아한다. 부르면 와다다 달려와서 마치 날아갈 듯 프로펠러처럼 꼬리를 흔들어대는 것이 귀엽다. 한없이 해맑고,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것에 익숙하다. 어떻게든 주인의 몸에 엉덩이를 착 붙이고 앉아있으려고 하는 모습도 사랑스럽다. 특히, 함께 산책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내 아내는 산책을 싫어한다는 것만 빼면 강아지를 닮았다.


아내는 고양이를 좋아한다. 도도하지만 어느 순간 주인 옆에서 식빵 자세로 그릉거리고 있는 모습이 좋단다. 주인의 도움이 필요 없다는 듯 불러도 모른 체 하다가 어느 순간은 냐옹 거리면서 주인을 찾는 모습이 매력적이라고 한다. 말을 툭툭 던지면서도 뒤에서 이것저것 해주려고 하는 내가 고양이를 닮았단다. 물론, 평범한 고양이와는 다르게 집보다는 산책을 좋아한다는 점이 다르지만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서로를 집멍이와 산책냥이라고 부른다.




김민철 작가의 <하루의 취향>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지. 그러니까 말이야 좋은 날이 왔을 때 우리는, 그날을 최대한 길게 늘려야 해."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고,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고, 뭔가를 끄적거릴 수 있는 이 순간이 나에게는 좋은 날이니까. 집에서 녹아버린 초콜릿처럼 누워 있기보다는 밖에 나가고 싶었다. 누워서 하루 종일 뒹굴었던 날이나 거실에 앉아 TV를 봤던 날로 오늘 하루를 보내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당장 며칠만 지나버려도 그 날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조차 안 남는 날이 되어버릴 테니까.


그래도 내가 혼자 사는 건 아니니, 아내의 의견도 물어봐야겠다 싶었다. 혹시나 5일 동안 온갖 사람들을 만나서 힘들게 일하고 겨우 집에서 쉴 수 있는 날인데 또 집을 나서는 것이 억울한 건 아닐까. 일본의 한 아이돌 그룹 멤버가 "쉬는 날에 집에 안 있으면 집값이 아까워요. 뭘 위해서 돈을 내고 있는 건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더 안 나가게 되었어요."라는 말을 했다던데, 내 아내도 이런 생각인 걸까.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하고 있는 거라면, 주말 이틀 중에 하루는 아내를 위해 집에 있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아내에게 왜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지 물었다. 잠시 후 답장이 도착했다.


"포근 푸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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