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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랜맨 Oct 30. 2018

횡단보도를 건너는 방법

옛날의 우리는 모두 이렇게 횡단보도를 건넜다

퇴근길. 집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다. 맞은편에는 한 꼬마가 서 있었다. 예닐곱 살쯤 되었을까. 신호가 바뀌고 꼬마는 폴짝폴짝 뛰면서 하얀 선만 밟으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꼬마를 보고 있다가 문득 옛 생각이 났다. 하얀 선만 밟고 건너면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라면서 폴짝폴짝 뛰며 횡단보도를 건너던 옛날의 내 모습. 횡단보도를 아무 생각 없이 터벅터벅 건너게 된 순간부터 우린 어른이 되어버린 걸까.


사실 하얀 선만 밟고 건넌다고 좋은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지금의 나도 그렇고, 어렸을 적의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애초에 이 행동은 진심을 담아 정성껏 하던 행동이 아니었다. 단지 행운을 비는 하나의 의식이었고, 나쁜 일이 생겼을 때 핑계로 댈만한 이유였을 뿐이다. 화요일, 학교 우유급식에서 딸기우유가 나오는 날. 친구가 배가 부르다며 딸기우유를 나에게 줬다. 럭키! 딱 이 정도의 행운을 가져다주는 의식이었을지 모른다. 기껏 밤새 해놓은 숙제를 집에 놓아둔 채 학교에 갔다가 선생님께 된통 혼난 날. 아 맞아, 오늘 아침에 횡단보도에서 검은 선도 밟아버렸었지, 에잇 어쩐지 재수가 없더라니. 딱 이 정도의 핑곗거리가 필요했었을지도 모른다.


인생이 그러하듯 하루 중에도 좋은 일과 나쁜 일은 수도 없이 찾아온다.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딱 내 앞에 자리가 나서 책을 보며 앉아갈 수 있었지만, 맞은편에 앉은 할머니가 욕설을 하며 소리를 질러대서 책에 도저히 집중할 수 없었다. 회사 동기와의 점심 약속이 갑작스럽게 취소되었는데, 덕분에 혼자 카페에서 여유 있게 라테를 마시면서 읽고 있던 소설책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수요일에 있을 MOU 조인식 관련해서 시나리오를 썼는데 한 번에 통과되어서 기분이 좋았던 것도 잠시, 지난주에 힘겹게 완성한 24페이지짜리 자료를 당장 내일 오전까지 3페이지로 줄이라는 전화를 퇴근시간 직전에 받았다. 이처럼 오늘 하루만 해도 좋았던 일과 나빴던 일이 수두룩한데, 이 중 좋은 일 한두 개를 내 쪽으로 가져오고 나쁜 일 한두 개만 징크스 탓으로 돌릴 수 있다면 제법 괜찮은 거래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지금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하얀 선만 밟겠다며 껑충껑충 뛰어 건너면 무슨 일이 생길까. 누군가는 킥킥대며 흘겨볼 것이고, 누군가는 나잇값 못한다며 손가락질을 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다른 사람들에게 무관심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무 일도 없을 수도 있다. 사실 이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며 살아가고, 나잇값을 못한다는 말은 퍽이나 부정적인 뜻으로 쓰인다. 나이에 어울리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기대되는 모습이 일종의 고정관념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명확하지도 않은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철이 없다, 아직 어리다, 나잇값을 못한다와 같은 말이 쏟아져내린다.


내 기준에서 나잇값을 못하는 경우는 딱 하나다. 여럿이 함께 사는 세상이라는 것을 알고 본인의 행동이 남에게 어떻게 영향을 줄지 알만한 나이이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 지하철에서 다리를 쩍- 벌리고서는 세상 혼자 사는 듯 큰 소리로 전화통화를 하는 아저씨나 회식자리에서 자신의 딸과 동갑인 부하 여직원에게 자기 스스로를 오빠라고 칭하는 아내의 상사 같은 사람들 말이다. 그 외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딱히 내가 그 사람에 대해 함부로 말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 친구 중 한 명은 월급의 거의 절반 가까이를 장난감을 사는 데에 쓴다. 남의 일에 참 관심이 많으신 주변 분들 덕분에 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런 걸 가지고 노냐, 언제 철들래, 이런 말들 속에 파묻혀 산다. 특히, 명절에는 희귀한 프라모델과 레고들을 지켜내기 위해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아예 수납장이나 방문을 걸어 잠그고 공성전을 펼치거나, 비교적 구하기 쉬운 장난감을 내어주고 한정판을 지켜내는 전략을 쓴다거나, 옆에서 보다 보면 손자병법이 따로 없을 정도다. 명절이 지나고 나면 한껏 수척해진 얼굴로 자기 돈으로 사모으겠다는 건데 왜 철없는 행동으로 취급받고, 그러면서도 사촌동생한테 그 장난감을 주지 않았다고 욕까지 먹는 게 너무나 부당하다며 하소연을 한다. 나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를 표했다. 사회는 이미 변하고 있다. 키덜트라는 말은 더 이상 생소한 단어가 아니게 되었고, '취향 존중'은 시대의 트렌드를 넘어서 현대 사회인이라면 갖춰야 할 기본 매너가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개인의 취향을 존중해주지 못하는 그들이야 말로 나잇값을 못하고 있는 불온세력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내일 출근길에는 횡단보도의 하얀 선만 밟으며 껑충껑충 뛰어보자. 사람이 가득 들어찬 지하철에서 떡 하니 내 앞에 빈자리가 생길지도,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오랜만에 꺼내 입은 코트 주머니에 천 원짜리 한 장이 쓰윽- 숨어있을지도, 점심시간에 꺼내 읽은 책에서 요 근래 최고의 문장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딱 그 정도의 행운만 기대하고 횡단보도를 폴짝폴짝 건너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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