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과 편안함에 대하여
나에게는 두 개의 안경이 있다. 하나는 올해에 산 동그란 모양의 새 안경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에 쓰던 네모난 안경이다. 동글이는 예뻐서 밖에 나갈 때 주로 쓰고, 네모는 편해서 집에 있을 때 쓴다. 동글이는 어딘가 닳진 않을까 찌그러지지는 않을까 아까워하며 조심조심 쓰다가 집에 와서는 벗어서 안경집에 고이 넣어둔다. 반면, 테이블 위에 널브러져 있는 네모는 긁힌 자국도 많고 조금씩 찌그러져있기도 하지만 누워서 TV나 책을 볼 때 유용하다 보니 버리기 아까워서 집에서만 쓰고 있다. 이렇게 아까움에도 차이가 있다. 앞선 아까움이 설렘이라면, 뒤의 아까움은 편안함이다. 사랑은 물론이고 사람도, 물건도 설렘에서 시작해서 편안함으로 옮겨간다.
운동화를 새로 샀던 날이 생각났다. 혹시나 어디 튀어나온 돌부리에 걸리진 않을까, 은행 열매를 밟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바닥만 보며 걸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 신발만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 발이 불편한 것 같기도 했지만 기분 탓이겠지, 하며 내 예쁜 신발이 잘 드러나게 다리를 쭉- 뻗고 앉았다. 곧 친구들이 도착했다. "오, 신발 샀네", "예쁘다. 어디서 샀냐?" 하는 말들에 뿌듯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곧 끔찍한 고통에 정신을 차렸다. 내 시선의 끝에는 가죽신발, 스니커즈, 슬리퍼 등 여러 친구들에게 한껏 두드려 맞은 흙투성이의 내 운동화가 있을 뿐이었다. 원래 새 신발은 이렇게 해줘야 해, 라는 말로는 용서할 수 없어 소리를 버럭 질렀다가 이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미 이렇게 된 거 어쩌겠어. 새 신발의 설렘은 그렇게 끝났다. 대신 편안함만 남았다. 그때부터는 바닥만 보고 걷지 않았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다시 파란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설렘보다 편안함이 훨씬 더 좋았다.
하지만 모든 것들이 단지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편안함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새 것은 언젠가 헌 것이 되지만, 새 것이었을 때 설렘을 느꼈다고 해서 헌 것이 되었을 때 편안함을 주는 것은 아니다. 이사를 갈 때마다 헌 옷을 정리하다 보면 그때는 이게 최신 유행이었는데 하면서 도저히 지금은 못 입겠다 싶은 옷들이 나타나고는 한다. 옛 추억이 떠올라 피식하며 잠깐의 웃음을 주긴 하지만, 도저히 다음 집으로 함께 갈 용기는 나지 않는 옷들. 나에게는 빈티지 재킷이 그러했다. 젊음과 오래된 옷의 부조화가 매력적이었던 빈티지 재킷은 그 옷이 가리키는 나이와 실제 나이의 격차가 줄어들면서 그저 그런 나이 들어 보이는 옷이 되어버렸다. 과거에는 새롭고 특이했던 것들일수록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촌스럽고 소화하기 힘든 것들이 되어버렸다.
반면, 오크 원목으로 만든 어린 시절 과학실 책상을 연상시키는 네모반듯한 테이블은 얼마 전 나와 함께 세 번째 이사를 겪었다. 새로 나온 신기능이라며 상판이 이리저리 젖혀지는 것도, 최신 유행이라며 색깔이 덧대지거나 한 것도 아니지만 그냥 그 자체로 매력이 있다. 어느 공간에 두어도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 은은한 존재감을 뽐낸다. 무엇보다 테이블 위에 올라가는 모든 물건을 따스한 색으로 품어내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든다. 나무 보울에 담긴 고구마튀김도, 갓 따른 맥주가 담긴 스테인리스 잔도, 가장자리가 닳고 손때가 가득 묻은 소설책도, 심지어 아무렇게나 널브러뜨린 꼬여있는 이어폰도 이 테이블 위에서는 충분히 자연스럽다.
변화 그 자체가 뭔가 대단한 가치로 취급받으며 기존의 것을 버리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칭송받는 시대가 되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국민 OO'이나 '인생 OO'이라는 이름으로 최신 트렌드라며 유행이라며 이것을 사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자극적인 홍보를 쏟아낸다. 남들이 관심 가지는 것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어 장바구니에 살짝 담았다가 도저히 나에게는 쓸모없을 것만 같아 지워버린 것도 수 차례. 사람도 마찬가지다. 늘 새로운 사람을 불러 모으고 신선한 주제를 꺼내어 거침없이 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을 보며, 함께 깔깔대고 웃으며 화려한 언변에 빠져 심지어 이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그 순간을 떠올려보면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다. 음, 그 뭐였더라, 하고 마는 얕은 대화는 물론이고 함께 했던 사람들마저 기억에서 잊혀버리는 것이었다. 오히려 내 머릿속에 새겨진 것은 맞은편에서 눈을 맞추고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며 진심 어린 한 문장을 던져주던 친구였다.
새로움이 주는 설렘은 짜릿하고 강렬하다. 하지만 조금은 천천히 때로는 신중하게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싶다.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의 유물만 방 한 가득 모으며 살다가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 괴짜 아저씨로 나오게 될 정도만 아니라면. 눈 앞의 무언가가, 새로운 누군가가 당장의 설렘이 아닌 긴 편안함을 줄 수 있을지 조금은 천천히 고민해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어느 드라마에 나왔다면서 반짝 팔리는 베스트셀러보다는 항상 누군가의 침대 머리맡에 놓여있을 것 같은 스테디셀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집들이 날 아침부터 일어나 인터넷에 황금 레시피를 검색해가며 힘겹게 만들어낸 화려한 요리보다는 야근 후 늦은 시간에 도착한 집에서도 뚝딱 해 먹을 수 있는 따끈한 된장찌개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북유럽 인테리어라며 흰 바탕에 검은색 글자로 덩그러니 알파벳 한 글자가 그려진 액자보다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일과 만나기로 한 약속들이 삐뚤빼뚤 적힌 달력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설렘보다는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