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 동안 모르고 있었던 오른손의 이야기
나는 오른손입니다.
어릴 때에는 밥 먹는 손, 아니면 연필 잡는 손이라고 불렸어요. 저는 한 때는 여기에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왼손에게도 뭔가 근사한 별명이 생길 거라며 토닥여줬죠. 그때까지만 해도 왼손에 비해 우월감을 느끼면서 은근히 즐기고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제일 좋아했던 건 오른손잡이라는 말이었어요. 꼭 이 몸 전체를 내가 대표한다는 느낌이었달까요.
시간이 지나고 자부심도 우월감도 조금씩 사그라들 때쯤, 라디오에서 한 노래가 흘러나왔어요. 패닉의 '왼손잡이'라는 노래였죠.
나를 봐, 내 작은 모습을 너는 언제든지 웃을 수 있니. 너라도 날 보고 한 번쯤 그냥 모른척해 줄 순 없겠니. 하지만 때론 세상이 뒤집어진다고, 나 같은 아이 한둘이 어지럽힌다고, 모두 다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그런 눈으로 욕 하지 마,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난 왼손잡이야.
이렇게 왼손에게는 단순한 별명 수준이 아니라 저에게도 없던 노래가 생겼어요. 왼손은 정말 기뻐 보였고, 틈만 나면 노래를 흥얼거렸죠. 저는 왼손에게 축하한다고 말했지만 사실 속상하고 분했어요. 나는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오른손잡이라는 이유로 당연하다는, 개성이 없고 평범하다는 취급을 받았으니까요. 저 노래에서도 그렇잖아요.
그때부터 조금씩 불만이 쌓이고,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모두 서운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희대의 망언이라고 생각해요. 어차피 일은 다 내가 하고 있다고요. 티 나는 일, 티 안나는 일 전부 다. 연필이나 볼펜을 쥐는 것은 물론 붓을 들고 그림 그리는 것, 낯선 사람과 악수하는 것, 심지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까지 모두 제가 하는 일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심지어 왼손 몰래 일을 더 하라고요?
학생 때 손가락에 굳은살 배겨가며 열심히 필기하고 있는데, 왼손은 그냥 노트 위에서 쉬고 있더라고요. 뭐라도 좀 하라고 하니 너 열심히 할 수 있게 내가 노트 잡아주고 있잖아,라고 키득거리는데 그렇게 화가 날 수 없었어요. 주인 녀석은 손으로 쓰지 않으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면서 주야장천 이것저것 써 대는데, 나중에는 이것도 못 외우나 싶어서 뇌 형님까지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니까요.
그렇게 힘들게 공부하고 일해서 벌게 된 돈으로 손목시계를 샀어요. 전 당연히 그게 제 손목에 걸릴 줄 알았는데, 그것마저도 왼손한테 가더라고요. 제가 시계를 차 봤던 순간은 두 개 중에 어떤 걸로 살지 고민된다며 양 손목에 하나씩 잠깐 걸치고 있던 그 잠깐이 전부였어요. 뭐가 그리도 좋은지 처음에는 잘 때도 손목시계를 차고 자더라고요. 하아. 거기다가 커플링도 결혼반지도 모두 저 녀석이 차지했는데, 더 이상은 지쳐서 뭐라 따질 기운도 없네요. 이것들이 모두 제가 일을 하는데 걸리적거리지 않기 위해서라는 이유라니, 어떻게 화를 안 낼 수가 있겠어요.
왼손보다 더 좋다고 생각한 적이요? 음, 잘 없는데.. 아! 생각났어요. 요리를 할 때 칼을 제가 들고 재료를 왼손이 잡으니까 상대적으로 더 안전한 건 있겠네요. 말 그대로 칼자루를 제가 쥐고 있는 상황인 거죠. 솔직히 말하면 일부러 왼손을 다치게 할까 0.1초 정도 고민했던 적이 있어요. 형님들한테 혼날 것이 무섭기도 하고, 왼손이 반창고 붙이고 있는 동안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금방 그만뒀지만요.
사실 왼손을 싫어하진 않아요. 어렸을 때부터 주로 일을 하던 것이 저였으니 힘도 세고 더 세심한 일도 할 수 있게 된 것뿐이지, 그게 왼손의 잘못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왼손 없이는 저도 제 힘을 다 쓸 수 없다고요. 화장품 뚜껑을 돌려 열 때에도 왼손이 단단히 잡아줘야 하고, 국자로 찌개를 한 움큼 퍼 낼 때에도 왼손이 그릇을 들어 받쳐주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항상 든든해요.
가끔은 제가 힘들다고 귀찮다고 징징거리는 일들이, 왼손한테는 꼭 해보고 싶은 일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요. 보통은 주인이 쓴 글씨라는 걸 숨기기 위한 불순한 의도가 숨어있는 경우이긴 하지만, 왼손이 연필을 잡고 삐뚤빼뚤 글씨를 쓸 때가 있어요. 그러고 나서는 자기가 글씨를 너무 못쓴다면서 한참을 우울해하는 왼손의 모습을 보면 저까지 마음이 아프다고요. 그래도 다행인 건 요즘 키보드로 일하는 시대가 되니, 왼손도 한결 더 밝아진 모습이라는 거예요. 물론 엔터키도 쉼표도 마침표도 아직은 다 제 일이지만, 저도 혼자 일하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좋고 왼손도 자기가 무언가를 한다는 것을 뿌듯해해요. 어떻게 보면 저는 선택받은 행운아일지도 모르겠어요.
왼손에게 고마움을 말한 적도, 미안함을 표현한 적도 없어요. 저는 항상 왼손에게 너는 많은 것을 누리고 있지 않냐며 불평만 쏟아내고 있죠. 아마 왼손은 그게 많이 속상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도저히 이제 와서 그런 말은 못 하겠어요. 대신 길을 걸으면서 잡는 아내의 왼손에게 말해주려고 해요. 오른손이 너에게 많이 고마워하고 미안해할 거라고. 직접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아마 그럴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