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무거운 몸을 이끌고 사무실 내 자리에 앉았다. 가방을 뒤적거려 지갑을 찾아 가장 안쪽 깊숙한 곳에서 로또복권 두 장을 꺼냈다. 이것만 당첨되면 오늘이 마지막 출근이다 생각하니 만원 지하철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꽉 끼어왔던 시간도 벌써 아름다운 추억으로 변하는 듯했다. 1등만 되면 곧장 나가서 농협 본점에서 당첨금부터 찾아온 뒤, 회사로 돌아오자마자 사직서를 던지리라. 2등이면 음,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반차 정도는 써야지, 생각하며 야심 차게 연필을 꺼내 들었다.
QR코드로 쉽게 당첨 여부 조회를 할 수 있음에도 굳이 연필로 번호를 하나하나 동그라미 쳐가며 표시하는 것은, 내 일주일간의 기대감이 한순간에 실망으로 바뀌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깊게 심호흡을 하고 로또 당첨번호를 휴대폰으로 검색했다. 얼핏 봤는데도 일단 1등은 아니다. 하아, 한숨을 깊게 내쉬고 하나하나 번호를 표시해나갔다. 아파트에서 자동차로, 자동차에서 노트북으로, 노트북에서 점심식사로 점차 기대감이 사그라들었다. 제발 다음 주 복권이라도 공짜로 살 수 있게 5천 원이라도 걸려라 애원하며 구질구질하게 매달렸지만, 행운의 여신은 그렇게 떠나버렸다. 아, 애초에 온 적도 없었나.
혹시나 내가 잘못 표시해서 당첨된 것은 날린 것은 아닐까 싶어 QR코드로 다시 한번 당첨 여부를 조회했다. 역시나 단 하나의 오차도 없음을 확인한 뒤, 이토록 완벽한 일 처리에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쳤다. 마치 눈 앞에서 애인에게 헤어지자고 통보를 받은 뒤 집으로 돌아와 다시 전화와 문자, 이메일로 정말 나 차인 것 맞냐며 확인까지 받은 느낌이다.
이렇게 나의 새로운 일주일이 시작되었다.
사고 싶은 책이 있는데, 그냥 복권 사지 말고 그 돈으로 책 살까?
하긴 당첨도 안되는데 복권 사는 돈이 아깝긴 하지, 대신 복권을 안 사면 희망이 없어.
아내와 서점 앞에서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책과 복권은 내 인생을 어떻게 바꿀지 모른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그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해서, 복권에 당첨되지 않았다고 해서 내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니니 최소한 긍정적인 쪽으로 작용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가 이 둘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큰 차이가 있다. 기대하는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책을 사면 읽는 순간의 즐거움은 물론이고, 물질적으로도 집에 책 한 권이 남는다. 간혹 즐거움도 주지 못하고 집에 남기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는 책도 있긴 하지만, 책을 선택할 권리는 나에게 있으니 충분히 내 노력에 따라 그 확률을 낮출 수 있다. 반면, 복권은 십수 년 동안 받을 급여를 한 번에 준다는 점에서 큰 기대감을 주긴 하지만 내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매우 높은 확률로 휴지가 되어버린다. 둘 중에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것일까? (물론, 나는 둘 다 샀다.)
한 때 수십억 원의 기대치를 가졌었지만 지금은 가치가 0이 되어 버린, 책상 구석에 놓인 몇 개 되지 않는 동그라미가 쳐진 로또복권을 보며 이렇게 여러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찢어버릴까 하다가 마침 점심시간에 카페에서 읽으려고 가져온 책에 책갈피가 없다는 사실이 떠올라, 살포시 복권을 책 사이에 끼워두었다. 사실 책갈피로 쓰기에는 너무 얇지만 최소한 그 정도의 가치는 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다음 주 월요일에도 나는 출근하자마자 지갑에서 조심스럽게 로또복권을 꺼낼 것이다.
행여나 당첨되지 않더라도 비싸고 형편없는 재질의 책갈피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