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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랜맨 Dec 15. 2018

베스트셀러 서가 앞에서

열심히 살지 않으면서도 부자는 되고 싶은, 그 중간 어디쯤

가방 속, 테이블과 의자 위, TV 앞, 심지어 바닥에도. 우리 집안 곳곳에는 항상 새책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새책이란 사놓기만 하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을 말하는데, 주말마다 동네책방을 찾는 것이 일상이다 보니 보통의 경우에는 읽는 속도보다 새책이 쌓이는 속도가 더 빠르기 마련이다. (재미있어 보여서 사놓고는 영 손이 안 나가서 한참을 같은 자리에 놓여 책도 허다하다) 그러다 최근 몇 주간은 가족행사와 컨디션 난조 때문에 통 나가보질 못하면서, 집에 사놓은 새책들이 모두 헌책으로 바뀌기 직전의 상황이 되고 말았다. 초조함에 등 떠밀려 지난 주말 오후 여의도의 한 대형서점에 딸린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줄 적정 수준의 새책 재고를 쌓아두기 위한 의도를 가득 품은 채.


주인의 큐레이션을 믿고 처음 보는 작가와 생소한 책에 새로운 시도를 해보게 되는 동네책방과 달리, 대형서점에서의 책 구입은 동네책방보다 좀 더 복잡한 절차를 필요로 한다. 자본의 힘으로 제일 잘 보이는 서가를 차지한 책들을 배제하고 인터넷이나 다른 사람의 추천으로 알게 된 책들을 훑어보며 골라내는 작업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몇 책들의 목차와 중간중간 한두 문단을 읽으며 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던 중, 한 무리의 사람들 너머로 베스트셀러 서가가 보였다. 평소에 읽고 싶었던 책이라도 베스트셀러가 되면 왠지 읽기 싫어지는 청개구리의 습성을 가지긴 했지만, 그래도 요즘 무슨 책이 많이 읽히나 궁금하기도 해서 시선을 옮겼다. 실용서적과 소설책들 사이로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와 <죽고 싶지만 떡볶이가 먹고 싶어>가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위에는 <반지하에서 반포아파트 입성하기>가 놓여있었다.


고작 한 평도 되지 않는 작은 공간에서 어쩜 이토록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도 잠시, 곧 이 모든 목소리가 내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언젠가부터 저녁 있는 삶, 워라밸이 시대의 화두로 떠올랐다. 무의미한 야근, 눈치 보는 생활, 회사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아붓고 집에서는 겨우 쪽잠만 자는 삶에 대한 반발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대책 없이 퇴사했는데 생각보다 지낼만하더라, 무례하게 날 대하는 사람에게 내 목소리를 냈더니 삶이 바뀌더라, 티끌은 아무리 모아도 결국은 티끌에 불과하니 지금을 즐기자. 언제 올지도 모르는 미래만을 위해 더 이상 지금을 희생시키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쏟아져 나왔고 많은 인기를 끌었다. 우리가 듣고 싶은 말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쪽에서는 한강이 보이는 넓고 깨끗한 집에 살고 싶고, 유명 셰프가 만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싶고, 계절 따라 예쁜 옷도 부담 없이 사고 싶다. 이것은 당연한 인간의 욕망일 뿐이다. 그래, 우리는 모두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으면서 돈 걱정 없이 이것저것 누리면서 살고 싶다. 그게 무슨 도둑놈 심보냐 말하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다.




작은 서가에 놓인 이중적인 이야기들에 대한 나만의 생각을 정리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러한 서가 구성에 공감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마음 한 구석에는 찝찝함이 남아있었다. 그건 아마 저 '입성하다'는 표현 때문일 것이다. 사전적 해석은 이렇다.

1. 성안으로 들어가다.

2. 적이 있던 도시를 함락하고 들어가 점령하다.

3. (비유적으로) 상당한 노력 끝에 선망하던 세계나 방면으로 진출하다.

아파트에 쳐들어가 원래 살던 사람들에게 뺏어낸 것이 아니라면 세 번째 해석이 적합하겠지. 강남이 주거지의 모범답안이나 마찬가지인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을 움직이기에는 제법 적당한 제목이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불편한 감정을 감출 수는 없었다.


우리 주변에는 삶에 방향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정해져 있고 이를 따라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에 진학한 뒤 대기업이나 전문직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해 서른 살을 전후로 결혼한 뒤 아이를 둘 정도 낳고 학군을 따라 강남으로 이사 가는 삶 말이다. 명절 때마다 주변 친척들은 내가 이 삶의 가이드라인을 잘 지키고 있는지 걱정된다며 잔소리를 쏟아냈었다. 나는 반에서 몇 등이니, 대학교는 어디로 갈거니, 취업은 언제 하니, 만나는 여자 친구는 있니, 결혼은 언제 할 거니, 까지의 고비를 넘어섰다. 현재는 아이는 언제 가질 거냐, 단계에 머물러있다. 내 주위 친구들도 같은 말을 들었다고 하는 것 보면 어디서 이런 매뉴얼을 따로 팔고 있나 싶을 정도다. 삶의 매뉴얼을 구입해 가이드라인을 달달 외우며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저 '입성하다'라는 표현은 깊이 와 닿았을지 모르겠다. 정말 자신의 자녀를 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교육열을 불태울 수 있고, 비슷한 생각과 재력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살면서, 보통의 다른 사람들이 동경하는 곳이니까. 30평짜리 집에도 기꺼이 '성'이라는 표현을 쏟아부을 수 있었겠지.


누군가는 나에게 물어볼 수도 있겠다. 그럼 너는 저런 집 주면 안 받을 거냐? 받을 거다, 주면 당연히 받아야지. 대신 바로 팔아서 그 돈으로 단독주택을 한 채 사고 수리해서 1층은 서점으로 쓰고 그 위에서는 주거를 해결할 거다. 단독주택은 관리가 힘들고 집값이 잘 안 오르고, 더군다나 서점이라니 돈도 안 되는 일을 한다면서 내 주변 사람들은 또 나에 대한 걱정을 쏟아내겠지. 물어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걱정이라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잔소리이니, 그냥 흘려들어볼까 싶다. 철없다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꽉 막힌 강남의 학원가 앞에 차 세워놓고 아이를 기다리는 삶보다 저 삶이 더 좋다.

인생의 정답은 하나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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