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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랜맨 Oct 01. 2019

게으른 나 자신과 적당히 타협하기

내가 돈 받고 하는 일도 아닌데, 뭐

퇴근길. 강남역에서 2호선을 타는 것은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다.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줄조차 사라져 버린 승강장에 또다시 수십수백 명의 사람을 뱉어낸 지하철은, 그보다 곱절은 될 만큼의 사람을 다시 꾸역꾸역 채워 넣고 선로를 달린다. 보통은 이 과정을 두세 번 정도 지켜본 후에야 나도 겨우 지하철에 몸을 실을 수 있다. 그 좁은 공간에서도 사람들은 즐길거리를 찾아 작은 스마트폰 화면에 고개를 파묻고 있다. 여자 친구와 카톡을 주고받는 사람,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매만지는 사람, 집에서 먹을 치킨을 미리 주문하는 사람... 신림역에서 우르르 사람들이 내리고 이제야 조금 여유로워진 공간. 나도 살짝 스마트폰을 꺼내어 글을 끄적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다시 글을 쓰는 건 약 9개월 만이다.




일주일에 한 편씩, 나름 소박하다고 생각되던 목표를 세우고 시작한 글쓰기는 어느새 마감 압박이 되어 다가왔다. 누가 강제로 쓰라고 한 것도, 엄청난 보상을 받는 것도, 잘 썼다고 칭찬을, 못썼다고 욕을 먹는 것도 아닌데. 마감 주기 일주일은 열흘로 살짝 늘어졌고, 이마저도 틀어져버리고 난 뒤에 이렇게 되어버렸다. 내가 원래 좀 이렇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하게 딱 맞는 그 느낌을 좋아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딱 맞지 않고 조금 어긋나 버리는 순간이 되면 모든 흥미를 잃어버린다. 마치 집합과 행렬 파트에만 손때가 가득 묻은 <수학의 정석>처럼, 어렸을 적 내 책상에는 앞부분만 오색찬란한 볼펜으로 화려하게 필기해둔 노트가 가득했다. 그렇게 한 번 스스로 정해놓은 마감기한을 어기고 나니, 다시 시간을 내서 글을 쓰는 것이 어찌나 힘들던지. 그렇게 나는 글 쓰는 것을 멈췄다.


물론 변명할 거리야 충분하다. (왜 변명까지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9개월 사이에 부서와 업무가 바뀌었고, 승진을 했으며, 이직을 시도했고, 다른 회사의 제안에 거절을 하기도, 거절을 당하기도 했다. 새로운 업무와 사람들에 적응해가면서 늘어난 급여만큼 얹어진 책임의 무게를 겨우 버티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 회사생활과 나라는 사람을 A4용지 두세 장에 요약하는 이력서를 썼고, 몇 차례 인터뷰를 거치며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렇다고 생각 없이 살았던 것도, 그 생각을 글로 옮길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결국 내 게으름 때문에 짧은 글 하나 못 쓰고 있던 셈이다. (변명의 논리가 빈약하다, 인정!)


지난 9개월. 출퇴근 시간 동안 지하철에 스마트폰으로 끄적이던 시간은 유튜브가 차지했고, 반짝이는 글감이 떠올랐을 때마다 꺼내 들던 메모장은 그냥 웃고 넘기는 찰나의 순간으로 바뀌었으며, 퇴근 후 집 근처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쳐 글을 쓰던 시간은 콘솔 게임 패드를 쥐고 있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그 시간이 무의미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재미는 있었으니까. 하지만 돌이켜 보면 아쉽고 후회스럽기는 하다.




글에 대한 흥미를 점수로 측정할 수 있다면,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했던 때가 아마 최고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아이러니하게도 합격 통보 이후 매주 글을 쓸 때마다 점수는 조금씩 떨어졌다. 아마 내 생각과 경험을 글로 옮기는 것에서 얻는 즐거움보다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한 부담이 더 커서 때문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다 50점 밑으로 떨어졌을 때 즈음 멈춰버린 것은 아닐까.

 

물론 그 이후에도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순간들이 있었다. 좋은 책을 읽을 때마다, 짧지만 울림을 주는 글을 만날 때마다, 기록으로 남겨놓으면 좋겠다 싶은 일을 겪을 때마다. 그렇게 조금씩 다시 쌓인 점수가 이제 한 80~90점 정도까지는 차오른 것 같다. 그래서 다시 써야겠다. 대신 이 점수의 변동폭을 줄일 수 있도록 해야겠다.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도록 다양한 경험과 좋은 책을 많이 접하면서, 스스로를 얽매는 규칙이나 조건은 가져가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돈 받고 글 쓰는 프로도 아닌데, 오랜만에 쓰는 글이면 어떻고 연달아 쓰는 글이면 또 어떤가. 길고 거추장스러운 글보다 가끔씩은 짧은 한두 문장도 괜찮지 않나?


이렇게 나이 서른다섯에 스스로 타협하는 법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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