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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랜맨 Oct 05. 2019

이름 없는 죽음에 대하여

죽음의 이유는 중요치 않았다

회사생활을 시작한 지 만으로 4년이 되던 때. 새로 집을 구했다. 퇴근하기에 너무 멀어서 힘들다거나, 잠잘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빴다거나, 집안 식구들의 간섭이 심했다거나 하는 이유는 없었다. 그냥 어느 순간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었을 뿐. 결정을 하고 나니 실행은 순식간이었다. 모아둔 돈으로 보증금을 치렀고, 꽤 부담스러운 수준의 월세는 뭐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옷과 책들 정도만 챙겨 나왔고, 가구나 소품들은 거의 새로 맞췄다.


다음은 커다란 화분을 들일 차례였다. 하루 종일 햇빛이 드는 창가 앞, 침대 발 밑 자리는 애초부터 화분을 놓기 위해 비워 둔 자리였다. 책상 위 작은 화분에 선인장과 비단 이끼를 키우고 있었지만, 조금 더 큰 초록이가 필요했다. 친한 형의 차를 얻어 타고 고양시의 한 화원에서 내 허리 높이까지 오는 뱅갈고무나무를 사 왔다. 손이 많이 가지 않아 키우기 쉽고, 공기정화 효과도 있다는 아저씨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 나중에 예쁜 이름을 지어주라며 화분에 꽂아둘 수 있는 칠판 모양의 팻말과 분필까지 챙겨주셨다. 시멘트 화분에 가득 담긴 흙과 모래, 나무 한 그루까지 더한 무게는 엄청났다. 일반 가정집에 끌차 같은 것이 있을 리 만무하고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겨우 미리 만들어 둔 자리에 화분을 가져다 놓았다. 언제 부딪혔는지 나뭇가지의 제일 꼭대기 부분이 살짝 부러져 하얀색 고무가 흘렀다.


고무나무는 하루하루 놀랍도록 자라났다. 햇빛을 따라 조금씩 기우는 듯 해, 일주일에 한 번 화분을 90도씩 돌려주었다. 어느 날은 너무 높게만 자란 것 같아, 모양을 어떻게 잡아줘야 할지 인터넷을 찾아봤더니 과감하게 가지를 잘라줘야 한다는 답변이 있었다. 근처 꽃집에서 전지가위를 사 와 제법 굵어진 줄기를 몇 곳을 잘라내고, 물에 적신 휴지로 잘라낸 단면을 감싸주었다. 얼굴도 모르는 인터넷 전문가들의 말을 믿어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딱히 더 이상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평소보다 물을 더 듬뿍 주는 것이 마음을 진정시킬 유일한 방법이었다.


역시 녀석은 이번 고통도 잘 견뎌냈다. 잘라낸 부분의 바로 옆으로 새로운 가지들이 쭉쭉 뻗어나갔고, 투명한 연둣빛의 새 잎이 돋았다. 곧 새로운 이파리들은 빼곡히 빈 공간을 채웠다. 아래쪽의 진한 녹색 잎들과 달리 나약하지만 한 없이 아름다운 연둣빛 이파리를 살짝 쓰다듬는 것은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으로 더할 나위 없었다.




1년 뒤, 갑작스러운 발령 때문에 서울의 정 반대편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비록 은행 대출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새로 지어진 빌라의 꼭대기 층으로 전셋집을 구할 수 있었다. 주방 겸 거실 외에 방이 두 개나 더 있었고, 넓이도 원래 살던 집의 두 배에 달했다. 고무나무는 이 곳에서도 거실의 한가운데에 떡 하니 자리를 잡았다. 꼭대기 층이었고 길 모퉁이에 위치한 집이었기 때문에 햇빛을 가리는 다른 건물은 없었지만, 창문이 불투명 유리로 되어 쨍-한 빛이 들지는 않았고 동향이라 그마저도 아침과 오전에만 따스한 정도였다. 고무나무는 이 집에서 더 이상 새 이파리를 틔우지 않았다. 마치 뒤가 비쳐 보일 듯 투명했던 연둣빛의 어린잎은 진한 녹색의 어른으로 자라났지만, 더 이상 새로운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다.


2년 후, 전세 계약기간 만료와 함께 세 번째 이사를 했다. 다시 서울을 가로질러 독립 후 첫 집이었던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예전에 살던 원룸 형태가 아닌 방과 드레스룸까지 딸린 제법 큰 평수로, 20층에서 내려다보는 뷰가 멋진 집이었다. 창밖으로는 나지막한 다른 건물들이 보였고, 저 멀리는 백련산과 안산이 보였다. 창문에 바짝 붙어 서면 다른 건물들 사이로 국회의사당의 둥근 지붕과 한강도 살짝 보였다. 우와! 우리 집도 한강뷰다, 라며 가끔 헛소리를 했다. 워낙 층수가 높아 딱히 어둡지는 않았지만 이 집은 북향이었다. 고무나무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진한 녹색이었던 이파리가 어느새 샛노랗게 물들어 바닥에 떨어지는 일이 잦아졌다.


마냥 물을 자주 주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집 안에 쨍한 햇빛이 드는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집 근처 꽃집에서 녹색 영양제를 사 와 화분에 꽂아주었다. 하지만 녀석이 도대체 먹긴 하는 건지 며칠이 지나도 가득 차 있는 영양제는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출근하기 전 영양제를 살짝 눌러주니 또로록 기포가 올라왔고 영양제는 그제야 살짝 줄어들었다. 혼자서 호흡조차 불가능한 환자에게 인공호흡기를 달아 준 것만 같아 기분이 씁쓸했다. 여전히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잠에서 깨어 화분을 살피던 내 눈 앞에 보인 건 텅 비어버린 영양제였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절반 정도 차 있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화분 속으로 쏟아져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 날 이후 상태는 급속히 나빠졌다. 거의 모든 잎이 노랗게 변했고 줄기도 까맣게 타들어갔다. 우리 집에 온 지 만으로 4년을 조금 앞둔 날, 그렇게 고무나무는 생을 다했다.




더 큰 화분으로, 새로운 흙으로 갈아주지 못한 채 적당한 분갈이 시점을 놓쳐버린 탓이었을까. 남향집에서 동향으로, 북향으로 옮겨가며 햇빛을 받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어느 날 몸속으로 휘몰아친 과도한 양의 영양제가 가져온 부작용일까.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원인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녀석을 죽음으로 이끈 그 어떤 것들보다 내가 미안함을 느끼는 이유는 따로 있다. 끝내 이름을 지어주지 못했다는 것.


물을 주던 수십 번의 날들, 이파리를 쓰다듬던 수백 번의 순간에도 화분에 꽂힌 팻말은 항상 텅 비어있었다.


집안에 죽은 나무를 두는 것이 좋지 않다는 장모님의 말씀에 따라 이름 없던 녀석은 파헤쳐졌다. 이제는 텅 빈 화분만 남아 다음 식물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아직 나는 새 식구를 들일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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