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랜맨 Oct 08. 2019

세 번의 이사, 세 번의 매력 수집

독립 후 4년 7개월간의 기록

2015년 초, 아직은 늦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불던 때. 나는 독립을 했다.


대학생 때 학교 근처 하숙집에서 1년 정도 산 적은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부모님이 지원해주시는 생활비로 구했던 것에 불과했고, 온전히 내 의지와 경제력으로 구한 첫 번째 집은 이곳이었다. 비가 오더라도 맞으면서 뛰어갈만한 가까운 거리에 대형 쇼핑몰과 영화관, 서점이 있었고 버스 한 번에 회사 출퇴근이 가능한 위치였다. 적당히 높은 층수에 앞에 가리는 건물이 없는 남향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9평짜리 작은 오피스텔이었지만, 살림살이를 장만하기에 더 큰 집은 부담스러웠고 이 정도 크기가 딱 적당했다. 월세가 꽤 부담스러운 수준이었다는 점만 빼면 나에게는 완벽했다. (실제로 여기서 산 1년 동안 거의 돈을 모으지 못했다.)


본가에서 가져가는 물건은 옷과 책, 전자레인지 정도에 불과했다. 이삿짐센터까지 부를만한 큰 일은 아니었다. 3시간 동안 12만 원으로 동네 인테리어 가게 아저씨의 1톤 트럭 한 대를 빌렸다. 정확히 말하면 아저씨도 빌렸다. 둘이서 계단을 오르내리며 짐을 옮겨 실었다. 마침 그 날은 승진자 발표가 있는 날이었고, 본가에서 짐을 싣고 이동하는 트럭 안에서 나는 주임에서 대리로 승진했다. 회사 근처 고깃집에서 열린 축하 회식에 참석해 거나하게 취한 상태로 새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직 가구들이 배송되어 오기 전, 옷상자와 노끈으로 묶어놓은 책들을 집 한 구석에 쌓아 놓은 텅 빈 집에서 첫 밤을 맞이했다. 폭신한 매트리스는커녕 깔고 잘 이불 하나 없던 방바닥은 차갑고 딱딱했지만, 그 나름대로 포근한 밤이었다.


모든 가구와 집기들은 내 취향에 맞춰 새로 구입했다. 상수동에 있는 원목가구 공방에서 테이블과 책상, 책장과 수납장을 주문 제작했고, 무인양품에서 침대와 매트리스, 커버를 구입했다. (받아본 뒤에야 알게 되었지만 일본인 체형에 맞춰진 이 침대는 사이즈가 작아서 내 발이 침대 밖으로 삐져나온다.) 해외 구매대행을 전문으로 하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그릇과 수저를 샀고, 회사 복지포인트를 탈탈 털어 전기 블렌더와 무선 청소기, 전기밥솥을 들였다. 그렇게 나만의 공간이 탄생했다. 실내등이 LED로 매립되어 있어 내가 원하던 노르스름한 불빛으로 바꿔달 수 없다는 점만 조금 아쉬웠을 뿐이었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나는 내가 있는 공간의 분위기와 느낌에 많은 영향을 받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가 주방이 예쁘지 않아서였다. 20년은 족히 넘었을 복도식 아파트였는데, 하루 종일 어둑하다가 해 질 녘이 되면 노랗고 끈적한 빛이 창가부터 길게 들어와 집안을 관통하더니 어느 순간 팟- 하고 캄캄해져 버리는 서향집이었다. 이때 나는 집에서 말 그대로 잠만 잤다. 조금이라도 여유 시간이 있을 때에는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몇 정거장 버스를 타고 나가서라도 분위기 좋은 카페에 자리를 잡거나 공원에 앉아있었다. 상업적이거나 공공의 공간이 오히려 내 사적인 공간보다도 편하게 느껴지던 시기였다. 여하튼 이번 새 공간은 마음에 꼭 들었고, 여기서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 평일 퇴근 후에는 책을 읽었고, 주말에는 블라인드를 최대한 내린 후 빔 프로젝트로 영화를 봤다. 수시로 요리 프로그램을 따라 하며 그럴듯한 음식들을 만들어 먹었고, 친구들도 종종 집으로 초대했었다.




두 번째 집은 갓 새로 지어진 빌라의 꼭대기 층이었다. 1층은 필로티 주차공간과 상가가 들어서 있었고, 2층부터 5층까지는 한 층에 네 채씩, 6층에는 세 채의 집이 있었다. 아직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계단 위에는 먼지가 뿌옇게 내려앉아 있었다. 포장도 뜯지 않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신발을 신은 채로 마치 쇼핑을 하듯 서로 다른 구조의 집들을 들락날락하며 구경했다. 큰 결심을 했다는 듯 깊고 긴 들숨 후에 말을 꺼냈다. "603호, 여기로 할게요."


16평 정도의 적당한 공간에 작지 않은 크기의 방 두 개, 길쭉한 주방 겸 거실, 꽤 넓은 다용도실이 알차게 자리 잡고 있었다. 거실과 안방은 동쪽으로 큰 창이 나있었고, 작은 방에서는 창밖으로 롯데월드타워가 보였다. 간의 오르막 모퉁이에 위치했고, 주변 다른 건물들보다 조금 더 높았던 터라 개방감이 들어 좋았다. 모아둔 돈을 모두 끌어 모으고도 억 단위가 넘는 은행 대출을 받아야 했지만, 그래도 매월 빠져나가는 이자가 이전에 내던 월세보다는 훨씬 적었기에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부동산 아저씨의 차를 타고 둘러보던 것보다 동네 분위기는 훨씬 좋았다. 예전 집처럼 편의시설이 가까이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걸어서 15분쯤 거리에 호수공원이 있어 잠깐 시간을 내어 산책하기에 좋았다. 어느 때에는 호수를 빙 둘러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또 다른 어느 날에는 귀엽고 커다란 풍선이 호수 가운데에 자리를 잡아 사진 배경이 되어 주었다. 집 1층의 상가에는 정육점이 들어왔는데 종종 두 근에 만 원짜리 돼지 앞다리살을 사다가 제육볶음도 하고 얼큰한 찌개를 끓이기도 했다. 가끔씩은 아저씨가 가게 앞에 커다란 들통을 가져다 놓고 하루 종일 수육을 삶으시기도 했는데 지나치면서 그 냄새를 참는 것이 쉽지 않았다. 집 바로 맞은편 건물 1층에는 자그마한 의상 수선실이 있었는데, 인상 좋은 할머니께서 재빠른 손놀림으로 뜯어진 바지를 꼬매 주시 기도, 허리를 줄여주시기도, 단추를 달아주시기도 했다. 이건 간단한 거라며 자꾸 돈 받으시는 걸 거절하셔서 TV 프로그램을 보고 따라 시킨 김부각을 가져다 드리기도, 아버지께서 농사지어 보내주신 고구마와 감자를 쪄서 나누어 먹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근처 세탁소를 찾아 와이셔츠를 맡기고는 했는데, 높은 선반에 올려진 TV에서는 항상 프로야구 중계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하루는 용기 내어 세탁소 아저씨께 응원하는 팀을 물었다가 나와 같은 팀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그다음부터는 매번 세탁물을 맡기러 갈 때마다 잘하는 선수를 칭찬하고 감독을 욕하며 팀의 전략에 대한 깊은 토론을 하기도 했다. 계란말이김밥이 맛있는 분식집도 있었는데, 주인아주머니의 손이 느려서 김밥을 한 번 먹으려면 다른 손님들이 없는데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자그마한 김밥을 둘러싼 얇고 따끈한 달걀지단의 맛을 잊을 수 없어, 음식 하기 귀찮은 날에는 발길이 꼭 그곳을 향했었다.


이 집에서 양가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여자 친구와 1년 정도 함께 살았고, 결혼을 했다. 나는 회사에서 직무가 바뀌어 본사로 들어가게 되었고, 아내는 길지 않은 계약직 근무를 마치고 준비하던 시험에 합격하여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세 번째 집은 첫 번째 집과 같은 건물이었다. 500세대 가까이 되는 오피스텔의 대부분은 예전 내 첫 집이었던 9평짜리 원룸 형태였고, 일부 고층 세대는 15평 정도로 거실과 방이 분리된 구조였는데 이번에는 이 곳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이전에 빌라에 살면서 쓰레기나 재활용품을 버리거나 하는 과정이 불편하기도 했고 맞벌이를 하는 상황에서 관리사무소가 아쉬웠던 적이 몇 차례 있었는데, 아직 아파트로 이사 갈 여유가 있는 정도는 아니어서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이 전에 이 곳에 살았을 때의 기억이 너무나 좋았어서 다시 여기를 선택한 것이기도 했다.


비록 북향이었지만 20층에 위치해 어둡지 않았고, 창 밖으로 내려다보이는 나지막한 건물들과 저 멀리 백련산과 안산이 보이는 전망이 좋았다. 창문에 바짝 다가서 붙으면 구석으로는 여의도와 손톱만 한 한강이, 그 뒤로 남산타워까지 빼꼼-히 내다 보였다. 미세먼지가 한창 많은 날은 저 멀리 산이 잘 보이지 않아서, 딱히 휴대폰으로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지 않아도 마스크를 챙겨 집을 나설 수 있었다. 밤이 되면 인근 청과시장의 노란 조명이 길 양쪽을 훤히 밝혔는데, 비록 바로 옆 모텔 간판이 눈을 어지럽혀도 얼핏 볼 때에는 제법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주말만 되면 바로 옆 대형 쇼핑몰을 찾는 차들이 집 앞 도로를 빙- 둘러서는데, 긴 대기 시간 없이도 편한 옷차림에 슬리퍼를 끌고서 그 시설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늦은 밤에 대형마트에 들러서 마감 세일에 들어선 식재료를 쓸어 담을 수 있다는 것도, 주전부리와 담요를 챙겨 와 심야영화를 즐긴 후 총총 걸어서 집으로 곧장 돌아와 바로 잠을 청할 수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다. 아참, 가장 최근에 발견한 이 집의 장점은 얇은 카디건을 걸치고 동네 산책을 하다 보면 애교 많은 고양이들이 어디선가 나타나 냐옹-거리며 내 다리에 부드러운 몸을 부벼댄다는 점이다. 그럴 때에는 아내가 고양이와 놀아주는 동안 헐레벌떡 근처 편의점을 찾아 고양이 간식을 사 올 수밖에 없다. 요즘은 아예 건식 사료를 사놓고 조금씩 가지고 다녀야 하나 싶을 정도다.




몇 번의 이사를 거치다 보니, 새로운 집에 적응하고 정을 붙인다는 말은 그 집과 동네의 매력을 수집하는 과정과 같은 말인 듯하다. 집안을 닦고 쓸고 꾸미는 것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맛집을 발굴하며 밤 산책 코스를 짜는 모든 순간들. 내 영역을 만들고, 나만의 루틴을 정하는 그 모든 과정 말이다.


아마도 내년 봄에는 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할 것 같다. 몇몇 대략적후보군은 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놓은 곳은 없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실 그것이 뭐가 중요할까 싶기도 하다. 어차피 미리 생각한 바와 다른 삶이 그곳에서 펼쳐질 것이고, 또 새로운 경험과 매력이 나타나 나를 휘어잡을 텐데.


벌써부터 살짝 두근거린다.

작가의 이전글 이름 없는 죽음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