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사람들을 소비를 좋아하는 사람과 저축을 좋아하는 사람, 이렇게 반으로 쪼갠다면 나는 분명히 후자에 속할 것이다. 소비를 좋아하는 사람을 5로, 저축을 선호하는 사람을 1에 놓아 다섯 단계로 구분한다고 하면 대략 1.5에서 2 사이에 놓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 그렇다고 소비를 극단적으로 하지 않는다거나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풍족한 삶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소비를 하는 순간 그 돈을 벌기 위해 고통스러웠던 순간이 떠오르는 것이 첫째 이유요, 돈을 차곡차곡 모아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이 있기 때문이 둘째 이유다. 그렇다 보니 불필요한 소비를 자제하고 조금은 더 현명한 소비를 하고자 할 뿐.
돈을 쓰면 그 즉시 원 단위까지 딱 떨어지는 가계부를 쓰고, 할인과 적립 혜택을 최대한 받을 수 있도록 수시로 신용카드 네 장의 실적을 챙긴다. 예를 들어 커피를 마실 때에는 커피전문점 5% 할인이 되는 A카드를 쓴다. 단, 스타벅스와 투썸플레이스에서 만원 이상 쓸 경우에는 B카드가 10% 할인이 된다. A카드와 B카드 모두 전월에 30만 원 이상 쓰면 할인이 가능하지만, B카드는 할인받은 금액은 실적에서 제외된다. 그러니 각 카드별로 사용금액과 실적 인정금액은 별도로 관리해야 한다. 프랜차이즈는 보통 큰 문제가 없지만 개인 카페의 경우에는 가맹점 분류가 커피전문점이 아닌 일반음식점 같은 다른 분류로 되어 있으면 할인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개인 카페에서 무언가를 사마신 다음에는 가맹점 분류가 어떻게 찍히는 지를 따로 확인해줘야 한다. 다음에 또 올 일이 있으면 그 가맹점 분류에 맞춰 할인이 되는 다른 C카드를 쓰거나, 아니면 아무 데서나 적립이 되는 D카드를 사용한다.
한 달에 한 번씩은 지갑 안의 현금과 생활비 통장뿐만 아니라 모든 대출과 저축, 투자 계좌의 잔고를 맞추는 작업을 한다. 노트북에는 엑셀 파일이 하나 있는데, 돈과 관련된 모든 내역은 여기에 기록되어 있다. 첫 번째 탭은 각 계좌별 잔고를 월 단위로 정리한 것. 전월 대비 대출이 얼마나 줄었는지, 작년 말 대비 총자산은 어떻게 변했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 탭은 투자 내역이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주식이나 펀드 등의 현재 금액을 입력하면, 우리나라와 미국 주가지수와도 비교하여 상대 성과가 어떠한 지를 화려한 그래프로 확인할 수 있다. 세 번째 탭은 개인연금과 퇴직연금 등 노후자산 현황이. 네 번째 탭에는 특정 질병에 걸렸을 경우 어떤 보험에서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를 가로축은 보험사, 세로축은 질병 구분을 기준으로 큰 도표 하나에 정리해뒀다. 매월 마지막 일요일 저녁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이 파일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아내가 뒤로 와서는 우리 돈 얼마 있어? 하며 슬쩍 물어보고는 알아서 잘하겠지 뭐, 라며 대답을 듣는 둥 마는 둥 다시 자리를 떠난다. 얼마 전에는 인터넷 인기 검색어에 '숨은 돈 찾기'라며 잊고 있었던 은행 휴면계좌의 돈을 찾아주는 서비스가 올라왔길래, 기껏 공인인증서까지 연결해서 검색해봤는데 내 명의로 숨어있는 돈은 하나도 없었다. 거참, 뿌듯하면서도 왠지 아쉬운 마음.
꼭 펑펑 써야만 돈지랄인가. 이쯤 되면 돈을 관리하는 이런 정반대의 태도도 돈지랄이라 부를만하다. 하긴 돌이켜보면 남의 돈을 관리해주는 일이 한 때 직업이기도 했는데, 돈지랄이라는 자극적인 표현보다는 직업병에 시달리는 걸로 포장하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그러면 좀 덜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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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인 드렁큰에디터는 '먼슬리 에세이'라는 시리즈로 매월 한 권씩 총 열 권의 에세이를 펴낼 예정이다.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은 그중 올해 6월에 출시된 첫 편. 신예희 작가 특유의 거침없고 솔직하고 유쾌한 문체 덕분에 출퇴근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단순히 소비를 찬양한다거나 값비싼 물건 자랑만 가득하다면 혹 불편해질 수도 있겠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으면서도 조금은 깊게 생각해 볼만한 주제를 살짝 던져주기에 끝까지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만했다. 푼돈에 벌벌 떨고, 좋은 것을 아끼려다가 누리지 못하고 버리고, 1+1이나 대용량 할인에 눈이 멀어 후회할 소비를 하던 그녀는 제한된 돈 내에서 소비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저렴하면서도 질 좋은 물건을 권하고, 전념해야 할 일을 위해 시간과 체력을 아끼는 소비를 한다. 오히려 책을 모두 읽고 나면, 현명하고 건강한 그녀의 소비를 응원하게 된다.
그나저나 책에서 추천하는 콘텐츠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추천하는 물건들을 사고 싶어 지는데... 어쩌지?
절대 뭐뭐는 하지 않을 거라든가, 절대 뭐뭐는 싫다는 말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나이 먹을수록 더 자주 실감한다. 세상에 '절대'라는 게 어디 있겠습니까. 자기도 모르게 서서히 바뀌거나 혹은 조금 머쓱해하며 과거에 뱉었던 절대를 주워 담곤 하죠.
단 음식은 절대 싫다던 사람이 언제부턴가 달달한 것에 푹 빠져 찾아다니며 먹기도 하고, 아메리카노만 마시던 사람이 카페라테 마니아가 되기도 한다. 책도 영화도 여행 스타일도 돌고 돈다. 이런 변덕은 싫지 않다. 취향이란 게 영영 바뀌지도 꺾이지도 않는다면 사는 게 좀 재미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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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으로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남의 SNS를 구경하다가 오, 이거 괜찮다 싶은 게 있으면 즐겨찾기에 추가하거나 화면을 캡처한다. 당장 필요한 거면 그 자리에서 주문하지만, 꼭 그렇지 않을 땐 일단 요렇게 저장만 해둔다. 그러고는 이런저런 다른 일을 하는 사이 까맣게 잊어버렸다가 한참 나중에 휴대폰 사진 갤러리를 보곤, 아 맞다 이런 게 있었지 한다. 길고 긴 즐겨찾기 목록을 하나씩 눌러보며 다시 들여다보기도 하고. 많기도 많네. 그런데 어라, 내가 이런 걸 왜 찜했지 싶은 것도 꽤 있다. 과거의 나, 무슨 생각이었어?
그사이 내가 업데이트된 모양이다. 업데이트는 중요하다. 가끔은 나와 내 주변을 홱 뒤집어 탈탈 털어본다. 문제없나? 더 나아질 수도 있지 않나? 그동안은 별 불평불만 없이 쓴 물건이지만, 공예품이 아닌 이상 분명 구형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차곡차곡 나이를 먹었고 이제 중년이 되었다. 오늘의 나를 더 쾌적하고 안전하게 해 줄, 더 좋은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전엔 몰랐던 새로운 선택지가 있다면 너무 오래 머뭇거리지 않고 시도하고 싶다.
... 중략 ...
업데이트에는 생각보다 용기가 많이 필요하다. 오늘의 내가 구버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만 지금까지 하던 대로 계속해도 되지 않느냐고, 쓰던 물건을 그냥 쭉 써도 문제없지 않으냐고 스스로 합리화하고 싶어 진다.
하지만 나는 용기를 낼 것이고 주기적으로 나를 탈탈 털어 재정비할 것이다. 그걸 못한다면 과거의 영광 속에 묻혀 살아갈 뿐. 아 물론, 영광이란 게 있다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