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에게 출세란 무엇인가. 팀장이 되고 부서장이 되고 임원이 되어 휘하에 수많은 부하들을 두고 널리 이름을 떨치는 것이 출세인가.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윗사람의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아래 직원들에게는 본인이 했던 말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고 나서는 기억나지 않는 척하는 것이 출세인가.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우리가 할 일도 아니었고 딱히 중요한 일도 아닌 것을 떠맡은 뒤 잔뜩 덩치만 키워서 높으신 분을 한 번 만나 뵐 자리를 만드는 것이, 그러다가 잘 안 풀리면 밑의 실무진이 오버를 했다며 다그치면 그만인 것이 출세인가. 다른 사람들을 달달 볶아서 굳이 그 자리까지 올라가 놓고서는 세상 모든 고민은 마치 자신이 다 짊어진 양 한숨 푹푹 쉬면서, 이제 곧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것 같다고 젊은 너희들이 부럽다고 말하는 것이 출세인가.
그렇다면 나는 안 하련다. 내 회사도 아니고, 똑같이 월급 받고 다니는 사이에 (아, 물론 똑같은 월급은 아니지) 내가 쟤보다 더 위로 올라가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더 올라가 봤자 책임질 것만 많아지는 것 아닌가? 나는 지금 맡은 일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위로 올라가서 담당하는 일이 더 많아지면 나는 버틸 수 있을까? 아니지, 관리자가 되면 내가 직접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밑에 직원들이 하겠지. 근데 나는 애초에 다른 사람을 못 미더워하고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마무리 지어야 마음이 편한데, 내가 다른 사람을 믿고 일을 맡길 수 있을까? 같은 일을 두 번 해야 할 거고, 밑에 녀석들이 싸질러놓은 것을 결국 다 나 혼자 수습해야 하면 어쩌지? 이런 상황에서 나보다 먼저 퇴근하려는 저 사고뭉치에게 미소를 지으며 손 흔들어 줄 수 있을까? 그냥 지금 저 문밖으로 나가서 영영 다시 들어오지 마,라고 나도 모르게 말해 버리면 어쩌지? 나도 이렇게 꼰대가 되어 버리는 건가? 외롭겠다. 이렇게 혼자 남으면 위로 올라가는 것이 무슨 소용이지? 불행할 것 같은데.
위로 끌어올려주겠다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 망상에 빠졌다가 다시 정신을 차린다. 아차, 나 지금 일하는 팀에서 막내였지? 헛된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나는 출세욕과는 거리가 좀 먼 사람인 것 같다.
그렇다고 아무 욕심 없이 회사를 다니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또 그건 아니다. 주임에서 대리로,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할 때 누락되면 진짜 열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은 했으니까. (직급보다는 더 많은 월급이 필요했을 뿐이지만) 최소한 내가 일한 만큼에 대한 인정과 합당한 보상을 받고 싶었다. 당연히 직급이 올라가면서 일의 범위도 넓어지고 책임질 부분은 많아진다. 기대치도 높아지고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부담감도 커진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 높은 수준의 역량을 발휘해야 하고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 하지만 그 부담감보다는 늘어나는 월급이 더 필요했을 뿐이다, 아직은.
결국 회사에서의 출세욕은 내가 얼마나 인정과 보상을 받고 싶으냐와 그것을 받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아부을 수 있느냐의 균형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출세욕이 큰 사람은 내가 더 큰 보상을 받기 위해 기꺼이 시간을 쓸 수 있는 사람인 것이고, 반대의 사람은 보상이 적더라도 회사 밖에서의 삶을 지키고 싶은 사람을 말하는 것은 아닐지. 그럼, 일은 하기 싫으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은 사람은 뭐냐고? 뭐긴 뭐야, 도둑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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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드렁큰에디터의 먼슬리에세이 두 번째 작품으로 '출세욕'을 담았다. 시종일관 유쾌한 문체로 작가의 삶을 이야기하고, 작가가 되기 위한 사람을 위한 팁도 살짝 담아두었다. 에세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을 정도로 술술 읽히면서도 무언가 진득한 것이 남는 책이었다. 이 정도로 글을 써야 작가로 돈 벌어먹을 수 있는 거구나. 작가에게 출세란 직장인의 그것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품어낸 제 자식 같은 작품이 잘 팔리고, 내 이름이 유명해져야만 돈에 얽매이지 않고 쓰고 싶은 글을 계속 쓰며 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그녀의 삶을 바꿔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에게는 의미 있는, 돈값하는 글이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출세라는 거창한 단어는 내 사전에 없었다. 잘 쓰고 싶다, 내가 잘 쓰려고 노력한 글을 욕심 많은 편집자와 감각 있는 디자이너가 멋지게 엮어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만들어진 책이 잘 좀 팔렸으면, 그걸 읽은 독자들이 내 칭찬 좀 해줬으면, 그리하여 인세 좀 두둑하게 받아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징징거린 게 전부였다. 그런데 이 모든 문장이 출세하고 싶다는 욕망을 에둘러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녀가 일깨워주었다.
(p. 11)
이 작가는 어쩜 이리 다작을 하는가. 한 인간의 머릿속에서 이다지도 많은 말이 쏟아져 나오는 게 정녕 가능한 일인가. 혹시 허언증은 아닌가. 글 두 줄로 한 페이지를 채우는 이 구성은 뭔가. 이 책을 사는 사람은 글을 사는 것인가 공백을 사는 것인가. 그러니까 이건 읽기 위한 책인가 인스타그램 업로드를 위한 책인가. 이 캐릭터 에세이는 또 뭔가. 사람이 아닌 캐릭터가 화자인 이 상황을 아무래도 납득하기가 어려운데, 어 그러니까 이건 뭐랄까. 개를 산책시키다가 마주오는 누군가가 "아이고 예뻐라. 너 몇 살이니?"하고 개에게 물으면 "세 짤이에영!"하면서 개의 말을 대신하는 주인처럼 말 못 하는 캐릭터의 속마음을 저자가 대변하는 것인가. 허이구야, 하다 하다 고길동에 마이콜까지. 그렇다면 꼴뚜기 왕자를 주인공으로 한 책은 왜 나오지 않는가. <꼴뚜기 왕자, 변기에 빠져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라는 책도 나와야 마땅한 것 아닌가. 지금 꼴뚜기 왕자를 무시하는가. 오자와 탈자 범벅인 이 문장은 뭔가. 이다지도 무책임한 문장을 쓰는 인간을 작가라 칭해도 되는가. 아니, 작가는 그렇다 치고 이 책의 편집자는 뭐 하는 사람인가. 말도 안 되는 문장을 손보 지도 않고 그대로 낸 이 편집자는 일을 하는 것인가 마는 것인가. 어머머머, 근데 이 잘생긴 작가는 뭔가. 혹시 글을 잘 쓰는가. 에라이, 얼굴만 믿고 책을 냈는가. 냉정하게 말해 작가치고 잘생긴 거지 그리 대단한 얼굴은 아니지 않은가. 뭐 어찌 됐든, 왜 반듯한 얼굴에 스스로 먹을 칠하는가.
(p. 87)
제목이 한 번에 꽂히지 않을지라도, 카피가 민망할지라도, 표지가 말도 못 하게 촌스러울지라도, 편견 없이 일단은 펼쳐보겠다. 왜냐하면 그건 책의 내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까.
우연히 집어 든 책에 저명인사의 추천사가 떡하니 박혀 있다 해도, 책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의 지적 수준을 의심하기보다 과감히 덮어버리는 쪽을 택하겠다. 찬사 일색인 추천사들은 그저 구색 맞추기용에 불과하거니와, 생각이나 취향이 맞지 않는 사람이 쓴 책을 꾸역꾸역 읽을 필요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자주 들러서 최대한 많은 책을 펼쳤다 덮었다 반복하다 보면은 나와 주파수가 맞는 책을 발견할 수 있겠지. 그렇게 만난 책을 서점에서 한 권 사는 일도 잊지 않겠다. 당신의 책이 베스트셀러는 아닐지라도 나에게는 의미 있는 책이라는 사실을,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주었으면 하는 나의 바람을, 저자가 알아채기를 희망하는 마음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