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랜맨 Jul 31. 2020

채식인은 아니지만, 궁금하긴 한데

<채식, 뭐 좀 물어봐도 돼?>, 송기영 | 헬로인디북스

나는 채식인이 아니고, 채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적도 없다. 하지만 쏟아지는 장대비를 뚫고 연남동까지 가서 이 책을 사 온 것은 채식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그에 상응하는 음식점이나 식재료들도 이전보다 확연히 눈에 띄는 요즘이다. 채식이 단지 유행처럼 흘러가 버리는 단순한 사회현상이 아니라 개인이 신념을 가지고 애써 행동하는 것인 만큼, 그것이 무엇인지 공부하고 이해하고 싶었다.


이 책은 독자가 채식인이라는 전제 하에 질문 하나를 던진다. 당신은 더 많은 사람들이 채식하는 세상을 원하나요?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사람이 주요 독자로 상정되며, 잡식인을 설득해야 하는 입장에 위치하게 된다. 채식인이 잡식인의 신념이나 취향의 영역으로 들어와 본인이 추구하는 바를 권유하고자 한다면, 기존의 것을 무너뜨릴 수 있는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렇기에 설득을 하기 위한 주장을 펼치고 반박하기 위한 준비는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주체인 채식인이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설득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이 책에서는 대화를 권고한다. 가장 효과가 좋을 수 있는 도살장 견학과 같은 체험의 경우에는 당장 채식에 관심이 없는 잡식인을 그곳까지 이끄는 것이 힘들고 오히려 반감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최소한의 노력으로 다수에게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온라인 매체의 경우에는 얼굴을 가린 채 공격성이 표출되는 곳이라는 점에서 설득의 난도가 높다고 본 것이다. 그렇기에 일상생활에서의 대화가 가장 자연스러우면서도 공감을 이끌어내기 용이하다고 주장하는데, 충분히 그럴듯하다고 생각되는 논리였다.


그 이후부터는 잡식인의 질문에 채식인이 답하는 구성으로 진행된다. 고기는 맛있는데 왜 먹지 말라는 것이냐? 채식은 건강에 해롭지 않느냐? 채식을 강권하는 것은 잡식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아니냐?처럼 맛과 건강, 자유라는 키워드를 기준으로 하는 질문과 거기서 파생되는 대화를 다룬다. 잡식인의 질문에 대해 저자가 단순히 모범답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채식인들의 논리가 빈약하거나 잘못된 답변도 함께 보여주며 그것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펼쳐나간다.


이 책은 객관적인 관점에서 잡식과 채식 양측을 동등하게 두고 출발하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먼저, 고기가 맛있다는 전제에 공감한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통상 육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맛있다고 여긴다는 점에 동의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식을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지면을 할애한다. 고기를 선호하는 잡식인을 설득하기에는 이러한 전개가 훨씬 더 타당하게 느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과 관련해서 역시 최대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잡식이 건강에 좋을 수도, 채식이 건강에 좋을 수도 있다는 근거를 모두 열어두고 개인에게 그 선택의 길을 열어둔다. 대신 이는 각자의 체질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잡식만을 한 사람이 무조건적으로 채식이 건강에 안 좋을 것이라고 단정 짓는다거나, 채식인이 상대의 체질을 모르는 상황에서 채식이 건강에 좋다고 강요하는 것을 경계한다. 자유에 대한 논증 또한 유사하다. 잡식인들이 본인의 식단으로 고기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그 고기가 식탁에 올라오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비판한다. 이에 따라, 다양하고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잡식인의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라는 논리를 펼친다.


전체적으로는 설득과 논증을 주제로 한 철학서적을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기본적으로 주요 독자층이 채식인이라는 전제로 쓰이다 보니 잡식인을 상대로 설득하기 위한 과정에만 집중되어 있어, 내가 알고자 했던 채식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은 기대했던 것에 비해 다소 부족했다. 개인적으로는 책 중간중간 채식인들끼리의 강한 유대와 잡식인에 대한 반감이 묻어나는 장면이 엿보여 불편한 순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채식인의 입장에서 잡식인의 무분별한 공격적 언행으로 상처를 받은 적이 많겠지만, 잡식인 역시 다른 생명체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야만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편견을 깔고 쳐다보는 듯한 채식인의 시선이 불하게 느껴졌던 적이 분명 존재한다) 또, 가상의 대화를 주고받는 구성의 특성상 아니 왜 대화가 이렇게 흘러가지? 난 이 부분이 이해가 안 되는데 왜 그냥 넘어가는 거지? 싶은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의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나 또한 현재의 공장식 축산업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육류를 소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동물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공장식 축산업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사육 과정에서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고 도축 시에 고통이 없는 방식을 택하는 동물복지농장으로의 전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론 이 또한 동물을 인간을 위한 식재료로 간주한다는 점에서는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은 작물 재배 또는 양식장을 활용한 어업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닌지. 소나 돼지를 키우는 과정에서 소비되는 막대한 자원과 온실가스 발생 등에 대한 이슈는 엄청난 양의 물을 사용하는 아보카도 농장이나 수차례 농약을 써야 하는 작물 재배 과정과 비슷해 보이는데, 단순히 동물 대신 식물을 섭취하는 것보다는 인간을 위해 소비되는 동물과 식물을 길러내는 과정에서 최대한 환경 파괴를 줄일 수 있도록 방향 설정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여전히 채식에 대해 궁금한 부분들이 남아있다. 조금 더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채식인은 잡식인의 불친절한 질문을 합리적으로 비판하고 설득력 있게 답변해야 한다. 그 힘든 길을 걸어가는 것이 채식을 점점 더 메이저로 이끌어가는 방식이다. 아직 말끔하게 다져지지 않은 마이너의 길을 걸어갈 때는 메이저의 길을 걸을 때보다 다리가 아플 수밖에 없다. 그러나 메이저의 입장에서는 굳이 불편한 길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 메이저의 입장에선 마이너의 불편한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수용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p. 39)


나는 채식인뿐만 아니라 잡식인 역시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대화의 기반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문제의식을 포착하는 것이다. 채식인끼리만 공감하는 문제의식은 잡식인의 관점에서 이해되지 않는다. 그리고 채식인과 잡식인이 서로 공유하는 대화의 기반이 없을 때 이들 간의 대화는 더욱 공격적이고 적대적으로 흐를 위험에 빠지기 쉽다. 메이저인 잡식인은 마이너인 채식인에게 기본적으로 불편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화의 기반을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대화를 이끌어 가야 할 채식인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다음과 같이 동의할 수 있는 대화의 기반이 있어야 한다.

"아 그렇네... 그건 좀 뭔가 이상하네..."

(p. 55)


그러나 잡식인은 질문을 멈췄다. 자신이 먹는 고기가 어떤 환경에서 길러졌는지. 그와 관련된 윤리적 문제는 없는지. 축산업이 우리 환경을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묻지 않고 있다. 사람들은 낮은 정도의 자유에 적당히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들을 지속적으로 교육하는 이유는 그들의 성숙한 선택을 보장할 자유를 위해서인 것처럼, 잡식인은 자신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 채식과 육식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야만 한다.

(p. 177)


매거진의 이전글 출세란 무엇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