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입 밖으로 꺼내었던 적도 없고 마주 앉아 종이에 써가며 논의를 거친 것도 아니지만, 결혼 후 모든 집안일은 아내와 적당히 나뉘어 있다. 그 기준은 명확하지 않지만 누가 더 민감한지에 따라 자연스레 결정되는 듯하다. 깔끔한 성향의 사람이 적당히 참을 수 있는 사람보다 당연히 더 청소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고, 음식의 맛에 민감한 사람이 요리에 보다 더 많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으니까. 한쪽에 지나치게 무리한 수준으로 쏠려있지 않다는 전제 하에서, 그런 생활이 어느 정도 지속되면 자연스레 그 비율이 정해지고 유지되게 되는 것이다.
빨랫감을 적당히 분류하여 세탁기에 넣고 돌리는 것은 아내의 영역이다. 흰색과 아닌 것을 나누고, 수건은 수건끼리 속옷은 속옷끼리 니트나 셔츠 등 의류는 각각의 재질과 종류에 맞춰 각기 다른 수온과 세탁방법으로 세탁기를 작동시킨다. 혼자 살 때의 예전 내 모습을 되돌아보면 나는 빨랫감이 얼마나 쌓였는지만 고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복잡하고 다양한 기능은 쓰지 않았고 전원 버튼과 시작 버튼만 사용했었다. 이렇게 세탁기를 돌리고 나면 건조대를 펼쳐 빨래를 너는 것은 40:60 정도로 아내가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보통의 경우에는 함께 하지만, 조금 늦은 시간에 세탁기를 돌리는 경우에는 내가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경우가 많아서 아내의 일거리가 조금 더 많아지곤 한다. 반면, 빨래를 건조대에서 걷고 개어서 정리하는 것은 보통은 내 몫이다. 아내는 거실 한가운데에 건조대가 떡 하니 놓여있어도 쓰윽- 피해 가면서 잘 다니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특히 평일 오후 먼저 퇴근을 한 뒤 아내를 기다리거나, 주말 오전에 상대적으로 씻는 시간이 긴 아내보다 먼저 외출 준비를 마친 뒤 여유 시간에 빨래를 개는 경우가 많다. 청소기를 빈번하게 돌리는 것은 나다. 바닥에 나뒹구는 먼지나 머리카락이 유독 눈에 거슬리다 보니 좁은 범위라도 청소기를 보통 매일 돌리는 편이고, 2~3일에 한 번 꼴로는 전체적으로 청소를 한다. 요리는 70:30 정도로 아내의 비중이 더 높다. 예전에는 비슷하게 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요즘은 귀찮다는 핑계로 아내의 비중이 훌쩍 높아졌다. 대신 요리를 하지 않는 사람이 설거지를 하는 것은 철칙이다. 그것마저 미뤘다가는 내가 요리도 했는데 설거지도 해야 하냐는 말을 들어야 할 테니까. 그 외 집안일도 비슷하게 분배되어 있다. 욕실 청소는 아내, 쓰레기 분리수거는 나. 다림질은 아내, 공기청정기와 에어컨 필터 청소는 나.
요리할 때 메뉴에서도 각자의 영역이 나뉜다. 찌개나 볶음 같은 대부분 요리는 아내와 내가 각자의 스타일로 만들어 내지만, 온전히 한 사람이 맡고 있는 메뉴도 있다. 나는 커피와 와플, 파전과 떡볶이를 담당하고 있다. 커피는 몇 년 전부터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 마시는데 재미를 붙이면서 내가 전담하고 있고, 와플메이커를 사면서 커피와 함께 먹을 와플도 함께 만들고 있다. 십수 년 전 대학교 축제 때 일일주점 구석에 앉아서 하루 종일 파전만 만들던 것을 계기로 비올 때마다 파전과 김치전을 부치는 역할을 하는 것도 나다. 아내에게 넘겨보려고도 했지만, 파전을 뒤집으려다 수 차례 찢어먹은 것을 본 뒤로는 그냥 내가 맡아서 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전담 메뉴가 바로 떡볶이.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때, 어머니는 동네에서 작은 분식집을 운영했다. 좁은 골목길 한 편에 세워진 1톤 트럭에서 떡볶이와 순대, 튀김을 팔며 시작했는데 학교 근처가 아닌 주택가였음에도 가족 단위의 손님들을 위주로 제법 인기가 있었다. 몇 년 뒤에는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틈을 이용한 가건물 형태이긴 했지만 가게를 낼 수 있었다. 좁지만 앉을 공간을 만들었고 핫도그와 소시지로도 메뉴를 늘리면서 꾸준히 찾는 단골손님들이 꽤 많았다. 탱글한 밀떡에 큼지막한 어묵, 적당히 매콤 달콤하면서도 깔끔한 소스와 아낌없이 들어간 대파.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의 기준은 아마도 그때 어머니가 만들어주셨던 떡볶이, 바로 그 모습이다. 아내는 음식을 크게 가리지 않는다. 떡볶이도 그렇다. 쌀떡과 밀떡을 가리지 않고, 맵거나 달콤하거나 그 자체의 맛을 즐기는 스타일이다. 반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의 명확한 기준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누가 더 민감한 지에 따라 그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 결정된다'는 기준을 고려하면 당연히 떡볶이는 내 영역이다.
떡볶이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이 책을 읽고 나니 떡볶이와 얽힌 옛 추억들이 떠올랐다. 누군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다고 했던가, 이 떡볶이의 나라에서 올곧은 나만의 기준을 간직하고 유지하는 것은 꽤나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다음 달쯤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에 잠깐 올라올 예정이었는데, 두툼한 용돈을 찔러드리면서 오랜만에 떡볶이를 한 번 해달라고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세상에서 제일 비싼 떡볶이가 될지 모르겠지만. 내 남은 인생 동안 먹을 수백 그릇의 떡볶이를 생각하면 어머니의 레시피를 되짚는 것은 충분히 적당한 투자가 되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옛날 '미미네 떡볶이'에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것을 이제 영원히 먹을 수 없다. '분위기' 말이다. 홀로 카페에서 커피나 차를 마시거나, 홀로 책방에서 시집을 고를 때, 혹은 홀로 술집에서 생맥주 혹은 싱글몰트 따위를 홀짝일 때,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분위기' 하나를 같이 먹는다. 그 '분위기'를 먹으면서 간단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이런저런 생각이라는 것을 하거나 혹은 그 어떤 생각도 필사적으로 하지 않으며 얼마간이 시간을 보내고, 그러고 나면 우리는 어찌 됐든 결국 더욱 자신다움으로 단단해진 채 거리로 나오게 된다. 그런 경험이 과연 떡볶이집에서도 가능할까. 나는 옛날 조그맣던 '미미네 떡볶이'에서 유일하게 경험해보았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못하고 있다. 나는 정말이지 그때의 가게가 그립다. 큼지막하고 붉은 오늘날의 '미미네 떡볶이' 건물에 들어설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대표 부부를 모시고 건물에 들어서면서도 나는 "정말이지 그때의 가게가 그리워요" 하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대신 다른 말을 했다.
"마늘종 튀김이 맛있어요, 대표님. 그거 주문해서 한번 드셔 보세요."
(p. 14)
맛없는 떡볶이집이라도 존재하는 것이 나는 좋다. 대체로 모든 게 그렇다. 뭐가 되었든 그다지 훌륭하지 않더라도 어쩌다 존재하게 되었으면 가능한 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이 세상에 사십 년 가까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안심이다. 그것은 내가 나를 너무 사랑해서라거나 내가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존재라고 여겨서가 아니라 어쨌거나 백기녀와 신중택의 젊은 날 뜨거운 밤을 통해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내가 존재하게 되어버렸으니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래오래 살아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p. 62)
"요조 씨는 어떤 떡볶이를 좋아하세요?"
여러 번 질문을 받았다. 그럼 나는 대답했다.
"다 좋아해요!"
밀떡도, 쌀떡도, 매워도, 달아도, 불어도, 짜도.
떡볶이뿐만이 아니다.
"요조 씨는 어떤 음악을 좋아하세요?"
그럼 나는 대답했다.
"다 좋아해요!"
"요조 씨는 어떤 책을 좋아하세요?"
그럼 나는 대답했다.
"다 좋아해요!"
다 좋아한다는 말의 평화로움은 지루하다. 다 좋아한다는 말은 그 빈틈없는 선의에도 불구하고 듣는 사람을 자주 짜증 나게 한다. 또한 다 좋아한다는 말은 하나하나 대조하고 비교해가며 기어이 베스트를 가려내는 일이 사실은 귀찮다는 속내가 은은하게 드러나는 제법 게으른 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오만 없는 좋아함에 그다지 불만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다 좋아한다'라는 말에 진심으로 임하지 않았다면 이 책도 이렇게 묶이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