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연의 음악 Jun 22. 2022

철학이란 무엇일까?

100점과 7점

신학교 3학년 때 '형이상학'을 배웠다. 사실 서양 철학과 서양 신학의 경계가 애매해, 신학교 교과과정을 보면 일반 대학의 철학과와 비슷하다. 그만큼 학부 때는 철학 과목의 비중이 컸다. 그중에서도 '형이상학'은 철학의 핵심 과목이라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형- 이상학'을 다루었기 때문에 강의 내용 자체는 상당히 복잡하고 어려웠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철학이 결코 어려울 이유가 없다. 오히려 전문 지식이 '전문적'으로 필요한 자연 과학 분야가 어렵다면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왜 '철학'하면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게다가 '형이상학'이라 하면 어려운데다가 거창하다고 생각해 지식인이나 관심을 가지는 분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형이상학은 사람이라면 늘 고민하고 현실에서 늘 부대끼며 살아가는 주제를 다루는 철학이다.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보여주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에 실망하고, 때로 분노하고,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내 모습을 내일은 볼 수 있을까, 뭐 이런 고민들 모두 형이상학적 주제들이다. 이런 것에 무슨 대단한 해석이 필요하고, 대단한 이론이 필요할까? 기껏 해 봐야 '나는 누구일까?', 정도가 조금 심오한 형이상학적 질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형이상학적 세계 속에서 살고 있고, 늘 형이상학적 고민을 하며 산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철학이 다른 학문에 비해 좀 고상한 대접을 받는 것은, 음 내 생각에는 순전히 과대평가되어 있고, 별것 없는데 있는 것처럼 어려운 말로 이른바 '처발처발'했기 때문이 아닐까?  


천만 다행히도 신학교에서 형이상학을 강의했던 신부님은 철학을 아주 쉽게 가르쳤다. 그러다 보니 강의는 명쾌했고 강의시간이 지루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중간고사    


중간고사 기간이 시작되었다. 형이상학 신부님은 시험장에 감독을 하러 온 적이 한 번도 없는 것으로 소문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신부님은 교학과에 시험 문제와 답안 용지를 맡겨 놓았다. 학년장이 찾아와 칠판에 시험 문제를 적는 것으로 시험이 진행되었다. 


시험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울렸다. 학년장이 노란 봉투에서 답안지를 꺼냈다. 맨 앞에 앉은 학생들에게 숫자에 맞춰 답안 용지를 나눠주었다. 답안 용지가 막 뒤로 넘어가고 있을 때, 학년장은 하얀 봉투에서 시험 문제가 적힌 종이를 꺼내 펼쳐 보았다. 얼굴에 의미심장한 표정이 서렸다. 우리 모두는 무척 궁금했다. 과연 시험 문제가 무엇일까? 학년장이 돌아서서 칠판에 문제를 적었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여기저기서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안도의 한 숨을 쉬는 신학생들도 있었다. 나도 안도의 한숨을 쉬는 쪽에 속했다. 시험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이 '썰' 풀기 아주 최적화된 시험 문제였다. 웅성거리는 소리도 잠시. 모두들 고개를 쳐 박고 답안지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한 신학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답안지를 소리 나게 낚아채 손에 들더니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편의상 K라고 하자. K는 답안지를 교탁 위에 탁 소리 나게 뒤집어 올려놓은 뒤 곧바로 강의실을 나갔다. 


답안지를 다 쓴 사람은 자유롭게 강의실을 나갈 수 있었다. 따라서 K가 딱히 잘못한 것은 없다. 다만 시점이 문제였다. 시험 시작하고 5분도 되지 않았을 때다. 시험장에 남은 우리는 놀란 토끼 눈을 하고 K의 뒤통수를 노려 보았다. 내 답안지에 썰 풀기 바빴던 나는 오랫동안 노려 볼 여유가 없어 금방 고개를 쳐 박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 명 두 명 강의실을 나갔다. 나는 10명 남짓 신학생들이 남았을 무렵 '썰'을 끝냈다. 내가 봐도 무척 창의적이고 철학적인 '썰'이었다. 


일반 대학의 시험 답안지가 교수님에게 보내는 개인적 서간문이나 소설인 경우가 있다면 신학교에서는 개인의 신앙 고백문이 될 때가 있다.


일반 대학은 어떤지 모르지만 신학교에서는 하루에 한 과목이나 두 과목만 시험을 쳤다. 그러다 보니 다음 시간에 이어지는 다른 시험이 없는 경우 시간제한 없이 답안지를 쓸 수 있었다(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감독하는 사람도 없고, 맨 마지막에 답안을 쓴 사람이 답안지를 거둬 교학과에 가져다주는 것으로 시험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험 기간이 끝나고 과목별로 성적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나는 시험 시작 5분 만에 시험장을 박차고 나간 K의 형이상학 성적이 궁금했다. K와 대조적으로 혼자 시험장에 남아 무려 2시간에 걸쳐 7장의 답안지를 썼다는 J의 성적도 궁금했다. J가 7장의 답안지를 썼다는 것은 그가 스스로 떠벌이고 다녔기 때문이다. 


형이상학 신부님은 성적을 아주 정직하게 주는 분이었다. 거품도 없었고, 필요 이상으로 짜게 주지도 않았다. 그런 신부님이, 강의 시간에 K의 답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연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100점을 줬다고 고백했다. 자신이 그때까지 준 최고 점수는 99점이라는 말도 했다. 우리는 궁금했다. 도대체 어떻게 썼길래 100점을 받았을까? 그것도 그 짧은 시간에. 


나중에 알았다. K는 답안지에 딱 한 줄을 썼다고 했다. 기억을 상기하는 의미에서 시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다시 적어 보자.  


문제 : 철학이란 무엇인가?

K의 답 : 철학이란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려 답안지 7장을 쓴 J는 몇 점을 받았을까? 소문에 따르면 장당 1점씩 계산해 7점을 받았다나 어쨌다나. 형이상학 신부님은 J를 불러 '니 생각을 쓰야지 강의 내용을 요약해 놓으면 어쩌냐?'라고 했다나 어쨌다나.  


생각하는데 특별한 지식이나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물론 생각만 한다고 철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생각이 철학의 시작인 것은 사실이다. 다만 좀 깊이 생각하고, 좀 더 다양하게 생각하고, 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고... 그러는 성의가 필요할 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K의 답안은 100점이 맞는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