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연의 음악 May 30. 2022

희랍어 시간과 Woman

남자와 비(非)남자의 세계  

신학교 2학년 때 희랍어를 배웠다. '헬라어'라고도 하는데, 고대 그리스어를 말한다. 수학에서 기호로 등장하는 α(알파), β(베타),  γ(감마), π(파이), ω(오메가), Σ(시그마) 같은 것이 희랍어 알파벳이다. 신학교에서 희랍어를 배우는 까닭은 <신약성서>가 희랍어로 쓰여 있기 때문이다. 신부라면, 적어도 희랍어로 된 성서 정도는 읽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라는 것이 가톨릭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의 생각이었다.  


의도는 그럴듯했지만 2학점 짜리 희랍어를 1년 동안 배운다고 성서를 읽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1년 동안 제법 '빡세게' 배우다 보면 뜻은 몰라도 뜨덤거리며 '읽을 수 있을 정도'는 된다. 여기에다 <헬라어 낱말 분해 사전>을 끼고 용을 쓰면 시간이 좀 걸리지만 관심 있는 성서 한 두 구절은 번역할 정도다.  


희랍어 시간은 1학년 때의 라틴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롭게 진행되었지만 절대적인 공부량으로 따지면 라틴어에 결코 뛰 떨어지지 않았다. 어쨌거나 우리에게는 너무 낯선 언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업시간마다 쪽지 시험을 쳤고, 그 점수가 성적에 반영되었기 때문에 강의 시간이 곧바로 시험 시간이라 늘 부담스러웠다. 천만 다행히도 희랍어를 가르친 신부님이 무척 종교적이고 인격적인 분이라 라틴어처럼 강의 시간에 '비인간적인 수모'를 당하지는 않았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1년 동안 그렇게 '빡세게' 희랍어를 배웠는데도 지금,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성서를 읽을 수 없는 것도 당연하다. 읽기는커녕 희랍어 알파벳도 '알파, 베타, 감마.... 그 뒤에 뭐더라'수준이다. 


남자와 비(非)남자 


다만, 희랍어 하면 내게 떠오르는 강렬한 기억이 있다. 희랍어를 배웠기 때문에 갖게 된 강렬한 기억이기도 하다. 그 기억은 신학교와 전혀 상관없는, 도올 김용옥 선생의 <여자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으면서 받았던 강렬함이다. 이 책은 1985년에 나왔다. 고려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던 김용옥이 '여자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했던 강의를 책으로 묶은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1992년이나 93년 무렵이다. 신학교 3학년 아니면 4학년 때다. 워낙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한데, 이 책에서 김용옥은 영어 단어 하나로 여자와 서양 문화를 설명했다. 비약적인 일반화란 느낌이 좀 들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그때 사용한 단어가 'Woman(우먼)'이었다.  


이 단어에서 주목할 것이 'Wo(우)'다. 'Wo(우)'는 희랍어 'ουκ(우크)'에서 비롯된 부정 접두어에서 유래했다. 영어의 'not(낫)'과 같다. ουκ(우크) 뒤에 이어지는 철자가 자음이면 k가 사라지면서 'ου(우)가'된다. 곧 'Wo(우)'는 'ου(우)'에 어원을 둔 부정 접두어에서 온 셈이다. 그렇다면 'Woman(우먼)'이란 그 의미를 따지면 'Notman(낫맨)'이 된다.   


Notman의 속뜻을 가진 Woman. 참 의미 심장한 단어다. 그도 그럴 것이 Woman은 'Man'의 상대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말에서 남자(사내)의 상대어가 여자(계집)인 것처럼.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중국이나 한국에서 남자의 상대어로 여자, 계집이란 단어가 있는 반면, 영어에는 Man의 상대어가 없다. Man의 상대어인 Woman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Wo' + Man'이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남자'가 있고, 그 상대어로 '비(非)남자'가 있는 셈이다. 이것은 서양에서 '여자'란, 그 자체로 고유한 독립적 존재가 아니라 '남자가 아닌 어떤 존재'로 인식 된다는 뜻이다. 그런 뜻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단어가 'Woman'이다.  


Man의 상대어인 Woman은 'notman'이란 뜻을 갖고 있다. 남자의 상대어로 '여자'가 있는 우리와 달리 영어로 대표되는 서양에서는 남자의 상대어로'비(非)남자'가 있었다.



이야기를 좀 더 진척시켜보자. Man은 '남자'라는 의미로도 사용하지만 '인간'이란 의미로도 사용한다. 그렇다면 Woman은 자동적으로 '비(非)인간'이 된다. 역사적으로 여자가 서양에서 어떤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잘 나타내 주는 단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중세 시대까지만 해도 서양에서 여자와 어린아이는 '인간'의 범주에 들지 않았다. 이런 사실은 여러 역사적 문헌을 통해 익히 알려진 바다. 


한편, Not은 '아니다'라는 뜻도 있지만 '없다'라는 뜻도 있다. 그렇다면 Wo-man은 'Man이 없는'이란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 'Man'이 무엇일까? 눈치 빠른 사람은 짐작했을 것이다. 맞다. 남성의 '성기'를 뜻한다. 결국 서양에서 여성이란 'Man'이 없는, 곧 '성기가 없는 어떤 존재'란 뜻이다.  


교육과 법


서양의 시각에서 여자는 '성기가 결핍된' 존재다. '결핍'이란, 기준이 되는 것을 중심에 두었을 때 그것보다 모자라는 어떤 상태를 설명하는 말이다. 당연히 기준이 되는 '그것'과 결핍된 '그것'이 동등할 리 없다. 결국 여자는 존재론적으로 남자와 동등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것이 여성을 바라보는 서양의 기본적인 시각이라 할 수 있다(모르긴 해도 이런 식의 여성관은 성서의 창세기에서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다'라는 말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 않을까?)  


그런데 오늘날, 서양 세계는 동양 세계에 비해 여성 차별이 훨씬 덜하다. 여성이라는 고유 단어조차 없는 문화권이 어떻게 해서 겨우 몇 백년 사이에 그런 장족의 발전을 보일 수 있었을까? 사회학자들은 그 이유를 '교육'과 '법률적 뒷받침'으로 이해하고 있다. 


나는 그런 이해에 동의하는 바다. 남성과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다르다. 서로 다르다 보니 인위적인 개입이 없으면 차이가 발생한다. 그 '차이'가 세월이 흘러 일정 형태로 굳어지게 되면 '차별'이란 색을 띠게 된다. 성의 역사는 그렇게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차별'로 굳어져 온 역사라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인류는 엄청난 부작용을 경험했다. 물론 한편으로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남녀차별'로 발전하지 않도록 인류는 집단적으로 부단히 노력했다. 그 노력의 일환 가운데 하나가 교육과 법률이 아닐까?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차별로 발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여성과 남성의 물리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존재론적으로 동등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교육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법으로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 오늘날 이런 작동 원리가 잘 기능하고 있는 곳이 서양 선진국이 아닐까?   


남자의 상대어로 여자, 사내의 상대어로 계집이란 고유한 단어가 있는 것이 우리 문화권이다. 이뿐이 아니다. 남자를 '바깥양반'이라 했다면 여성을 '안주인'이라 했다. 또 한 집안의 권위와 힘을 상징하던 '안방'과 안방 앞의 '대청마루'같은 곳은 모두 여성의 주 주거공간이었다. 이런 말들을 보면 우리 문화권에서 여성들이 누렸던 권한과 지위가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언어는 언제나 현실을 뒤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어떨까? 여성을 표현하는 고유한 단어도 없는 서양에 비해 우리 문화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 차별이 덜 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글쎄... 그런 의미에서 교육은 좀 더 체계적으로, 법률 제정은 좀 더 촘촘 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